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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근혜 정권의 막장 역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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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박근혜 연출 김무성 주연의 ‘역사쿠데타’라는 전대미문의 막장 드라마가 끝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오만가지 궤변에 흑색선전에 색깔론도 모자라 급기야 ‘박정희 비밀독립군’이란 기상천외한 ‘창작소설’까지 복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며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조경한의 오류)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강조했다. 또 “야당이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고수하기 위해 10여 년 전과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새누리당은 현존하는 그 어떤 정당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존중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우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최종보고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등재하지 않은 사실이 그의 친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성대경 당시 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혈서를 작성했다는 만주신문 기사도 사전 발간 직전에 알게 돼 다시 거론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한국일보」 2009.11.28.) 즉 진상규명특별법이 규정하는 증거자료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정희 비밀독립군설’은 더욱 가관이다. 이 대변인이 근거로 삼은 자료는 일제시기의 원사료가 아님은 물론 신문기사도 아닌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독자투고에 지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일제시대 일본군 중좌 계급장을 달고 만주땅에서 복무했다. 일제가 채용한 공직자가 모두 친일파라면 박 대통령도 친일파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일본 군복을 입었지만, 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왔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필자는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며 마지막 임정요인이었던 백강 조경환 선생을 자주 뵈었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을 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다. 그 백강 선생이 하루는 내게 박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이십니다” 하기에 보니 박정희였다. 박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하는데,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웠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 중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 (☞ [독자페이지] “친일파 청산, 옥석 가려야”, 「세계일보」 2004.7.24.) 

이 글은 2004년 당시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으로 있던 이기청 씨의 기고문으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의혹을 반박하는 자료로 활용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씨의 주장을 믿기에는 허점이 너무나 많다. 백강 선생의 이름은 조경한이지 조경환이 아니다. 박정희는 일본군 중좌(중령)가 아니라 만주군 중위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상해가 아니라 중경에 있었다. ‘독립군 보충으로 유명했다는 다카키 마사오’에 관한 기록은 그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 만주에 있던 박정희가 중국 남서부의 임시정부로 조선인 병사를 빼돌렸다는 말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일이다. 혹시 팔로군이라면 모를까.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1979년 발간된 『백강 회고록』에도 박정희의 임시정부 지원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찾아 볼 수 없다. 결정적인 증언은 따로 있다.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사 연구와 사료편찬에 바쳐온 심정섭 씨의 회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할아버지를 찾아 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보도와 같은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 없다.”

어떻게 집권 여당의 대변인이라는 자가 최소한의 검증도 거치지 않고 ‘카더라’식의 유언비어를 서슴지 않고 유포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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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일제말 친일행적을 미화한 아동용 도서 『환타지아 한국 위인 31 – 박정희』, 학원출판공사, 2001.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하기야 박정희 비밀광복군설의 역사가 일천하지만은 않다. 조작의 원전이라 할 박영만의 소설 『광복군』(1967)을 비롯해, 육군본부가 간행한 『창군전사』(1980), 합참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장창국의 『육사 졸업생』(1984) 등에서 박정희를 비롯한 만주군 장교들은 ‘비밀광복군’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극우세력의 대부 조갑제 씨는 과거 민완 기자 시절, “박 대통령 시절에는 아부꾼들이 박승환(필자 주 : 만주군 장교,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동맹의 비밀조직원)과 박정희의 관계를 과장하고 조작하여 박정희가 ‘비밀 독립군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책들을 펴냈다”고 비판했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998)

아부의 대상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만주군 출신인 자신을 비밀광복군으로 포장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이 된 김승곤 전 광복회장은 2006년 “박영만은 청와대에서 돈을 받을 줄 알고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훑어본 박 대통령은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며 화를 냈고, 결국 박영만은 돈 한푼 못 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세계일보」 2006.8.11.)

박정희의 쿠데타 동지인 박창암 전 혁명검찰부장도 비밀광복군설을 부인하는 유사한 증언을 남겼다.(정운현, 『실록 군인 박정희』 2004)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박정희 비밀독립군설’과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의 헛발질은 한번 잘못 기록된 역사의 후과가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심각함을 넘어 끔찍하다 해야 할 만큼 문제가 많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있다”든지 “한국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음해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권력이 조직적으로 역사와 교육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의 부끄러운 이력을 감추고 조작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딸은 학계와 교육계의 압도적인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함으로써 유신독재시대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한다. ‘역사쿠데타’라는 빗나간 효도는 이제 전국민을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찬반논란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며 정치적 이해관계와도 관계없다. 상식과 비상식, 이성과 우상, 객관적 진실과 맹목적 신념 사이의 충돌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얼마 전까지 보수세력이 보여주었던 국정제에 부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조선 중앙 동아 등 이른바 보수 일간지들은 한결 같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의 유영렬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 윤병석 전 인하대 교수 등 보수 성향의 한국사학자들도 국정제를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주무부처인 교육부의 황우여 장관도 내심 국정화를 주저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자유발행제가 맞다고 본다. 최근 경질된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국정제는 ‘독재국가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논문에 썼다. 국정제 관철에 소극적이어서 교체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유영익 직전 국사편찬위원장에 이어 취임한 김정배 현 국사편찬위원장조차 한 때는 국정제 반대가 소신이었다. 헌법재판소와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국정제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름 소신을 지닌 남경필 유승민 정두언 김용태 정병국 등 새누리당 정치인들까지 부정적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국민들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펴 달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도대체 국론분열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답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의 사태가 친일과 독재라는 선대의 과오를 세탁하려는 집권세력 최고권력자들의 정치적 타산과 적대적 야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불행하게도 ‘집권의 목표가 독재자인 선친의 명예회복’이라는 딸의 통치를 받으면서, 친일파인 선친을 애국자로 둔갑시키려다 실패한 아들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가 남긴 교훈이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일으켜 조부인 세조의 정통성을 훼손한 사림들을 도륙하였지만, 끝내는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위정자는 개인의 인연보다는 대의를 좇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권력자의 비뚤어진 효심이나 정치적 야욕이 역사와 교육, 나아가 민주주의와 궁극적으로는 나라까지 망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을 떠올리며 ‘위기의 시대’를 다시 실감하게 된다.

베트남까지 검정제를 채택하는 개혁조치를 취한 마당에, 정부 여당은 시대착오적인 국정제를 밀어붙여 더 이상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고, 이장우 대변인의 호언장담처럼 제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존중’하는 길을 선택하기 바란다. 확산되고 있는 시민불복종운동을 가벼이 여기다가는 큰 코 다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작 동영상> 역사쿠데타 – 빗나간 효도


<필자소개>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를 진행했다. 친일문제와 한일관계 등 근현대 과거사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법정에 선 역사정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 「74년 조직(세칭 ‘인혁재건위’)사건의 운동사적 의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의 의미와 쟁점」 등의 글이 있고, 『일제협력단체사전』,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 경희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2015-10-21> 통일뉴스

☞기사원문: 박근혜 정권의 막장 역사 드라마

※관련기사

☞노컷뉴스: “박정희 비밀광복군?…허무맹랑한 소설 이야기”

☞GO발뉴스: 비밀 독립군’ 주장에 백강 외손자 “박정희, 외조부 찾아와 친일행적 고백”

☞신문고: 이장우“박정희 비밀광복군” 정운현 “어불성설”

☞한겨레: 임정요인 외손자 “박정희, 오히려 외조부께 친일행적 고백”

☞한겨레: 2001년 국편 공식자료엔 “국정 교과서 탓 역사교육 황폐”

☞한국일보: 與 “박정희, 독립군 도와” 강변 ‘논란’

☞팩트TV: 새누리 “박정희는 ‘비밀 독립군’이었다고 한다”

☞폴리뉴스: 새누리당 “박정희 친일은 억지,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았다”


※ 참고 자료:  종북 놀음과박정희 혈서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항목 전문(PDF내려받기)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만주신문MF”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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