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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외국인 교수들도 “국정화 반대는 학자로서의 보편적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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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반대 선언’ 동참한 미·일 교수


지난 22일 서울대 역사전공 교수 36명의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에는 3명의 외국인 교수도 참여했다. “바람직한 역사교육은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가능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5개 학과(국사·동양사·서양사·고고미술사·역사교육과) 교수들의 선언에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역사를 배우고 연구한 나라는 달랐지만, 저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고개를 젓는 시각과 몸짓은 단호했다.


▲ 데이비드 라이트 교수 | 이케 스스무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라이트 교수(42·미국)와 역사교육학과 정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케 스스무(池享·일본·65) 교수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라이트 교수는 집필 거부 선언에 동참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강하게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미국의 역사 서술도 과거 정치권력에 좌우된 경험이 있는데, 이런 실수로부터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트 교수는 국정화가 될 경우 정부가 역사 해석에 있어 특정한 이념을 강제하고 남용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그는 “역사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역사엔 다양한 목소리가 있고,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정치적 주류의 목소리가 역사에 반영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내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학자로서의 보편적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트 교수는 “일단 정부의 의지대로 국정화가 된다면, 단지 이 정부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게 된다”며 “그 다음에 올 차기 정부에서도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교과서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생긴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케 교수는 “특정 시각만 반영하는 역사란 불행한 것”이라며 “역사 서술과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국정화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도 패전 전까지는 군국주의와 천황제를 칭송하는 국정교과서 체제가 지속됐다”며 “한국은 오랫동안 국정 체제가 지속돼오다 검정체제로 바뀐 지 수년 만에 다시 정치적 문제로 국정제로 돌아가는 분위기여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패전 이전 국정교과서 체제하에서는, 서술이 상당히 국가주의적이고 배외(排外)적인 기술들이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국가가 역사 서술을 주도할 경우 (교과 내용이) 국가주의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케 교수는 “역사교과서는 공교육을 통해 시민을 양성할 때 필요한 지식과 역사를 대하는 인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며 “민주주의·인권 등 헌법상 가치들이 어떻게 발전·유지돼올 수 있었는지 등이 중심이 돼야 하고, 교과서 선택 과정에 있어선 현장 교사의 의견이 가장 중심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2015-10-24> 경향신문

☞기사원문: [사면초가 국정교과서]서울대 외국인 교수들도 “국정화 반대는 학자로서의 보편적 양심”


ㆍ한국사 연구자 도널드 베이커 교수가 본 ‘교과서 국정화’

해외의 한국사 전공자들에게도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큰 관심사다.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 교수(70)도 그중 한 명이다. 일본 교토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베이커 교수는 지난 22일 전화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가 답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역사에 대해 좀 더 종합적인 견해를 갖도록 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바람이라면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베이커 교수는 연구자로서 1971~1974년과 1980년 광주에서 지내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정부가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 명령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박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 명령해서는 안된다. 현재 교과서가 너무 좌파적이지 않으냐는 논쟁에 대한 양측의 논지를 모두 경청해봤다. 양측 모두 역사를 과도하게 정치화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현대사 해석을 약화시키는 팩트는 배제하고 싶어한다. 나는 학생들이 역사에 대한 좀 더 종합적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 현행 교과서들이 너무 좌파적이라는 인식에 동의하나.

“교과서들에서 주체사상을 칭찬한다는 공세는 사실에 기반해 있지 않다. 학계가 일반인에 비해 좀 더 진보적일 수는 있다. 따라서 교과서들이 학계 밖에서 쓰여질 때보다는 대체로 진보적 색채를 띨 수 있다. 박근혜의 관점에서 보기에 지금의 교과서가 좌파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근혜의 관점일 뿐이다.”

– 박 대통령이 이런 논쟁을 촉발하는 것이 적절한가.

“그는 객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박정희의 딸이다. 아직도 박정희에 의해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살아있다. 그 사람들에게 박근혜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면 믿겠는가. 객관적인 역사를 얘기하려고 한다면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쓰도록 해야 한다. 역사는 본디 어지러운 것이다. 하나의 교과서만 있다면 깨끗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역사는 그런 게 아니다.”

– 국정교과서를 만들 경우 어떤 부분이 가장 우려되나.

“그들이 제주, 광주에 대해 뭐라고 쓸지 모르겠다. 아마 별로 기술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 광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나머지 한국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만약 두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다루지 않은 교과서가 나오면 정부로부터 소외감을 더 느낄 것이다.”

– 당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나는 미국·캐나다 이중국적자인데, 캐나다에서는 신민주당에 투표했고 미국에서는 민주당에 투표했다. 그렇다고 아주 왼쪽에 있지는 않다. 가령 나는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다소 왼쪽에 있지만 좌파 역사가들의 편견에 대해서도 인식한다. 광주에 대해 좌파 학자들이 기록한 방식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광주 사람들이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기술이다. 일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를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항거한 것은 정부군에 의한 동료 시민들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싸웠다.”

– 스스로 객관적인 역사학자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박정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참 어렵다. 나도 그 시대를 살았다. 인권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도 있고, 경제적 성취에 대해 얘기할 것도 있다. 둘 다 실제적인 것이었다. ‘전체적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경제는 잘했고 정치나 민주주의는 못했다. 박정희라는 사람 자체가 매우 복잡해서 하나만 확정해 얘기할 수 없다. 내가 비록 왼쪽에 있고 박정희에게 탄압받은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글에서나 강의에서는 두 가지 다 제시하려고 한다. 교수로서 내 일은 어느 한쪽 시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 보여주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첫 강의 때 나는 ‘여러분들이 이 강의실을 떠날 때, 이곳에 처음 들어올 때보다 더 혼란을 느끼면서 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2015-10-24> 경향신문

기사원문: [사면초가 국정교과서]“박근혜 대통령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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