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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김무성 선친, ‘친일이냐 애국이냐’ 논란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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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계속해서 여당 40초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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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친 민족운동했다”…반박 자료 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이 민족운동을 하다 치안유지법으로 일제에 검거됐고 학교도 세웠다고 김무성 대표가 반박자료를 냈습니다.


▶ “KF-X는 국민 속이는 이야기”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JTBC “위험한 초대” 인터뷰에서 KFX는 국민 속이는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미국서 핵심기술 받아 올 것 같이 이야기했다가 안 준다니까 다음엔 우리가 몇 년을 앞당겨 개발할 수 있는 것 같이 이야기했다”고 밝혔습니다.


▶ ‘포스코 비리’ 이상득 불구속 기소


포스코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이상득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5일 소환해놓고 20일 넘게 영장청구 소식이 없었는데, 결국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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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친의 친일 논란에 대해 오히려 ‘애국 활동’을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상황이어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게 친일 활동도 나름대로 한국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는 식의 ‘친일 미화 시도’를 하려는 게 아니냐. 의심을 사니까 이런 반박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김 대표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며 ‘애국 활동’의 근거가 있다고 밝혔고, 논란을 키울 생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당 발제에서는 친일이냐 애국이냐 180도 다른 두 주장의 충돌 상황을 정리하고 객관적 근거들이 있는지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인 김용주 전 의원의 또 다른 이름은 가네다 류슈였습니다.


창씨개명을 통해 얻은 이름인데 성과 이름 사이에 ‘밭 전(田)’자를 넣었습니다.


이같은 창씨개명 전력은 야당이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 중 하나입니다.


[오영식 최고위원/새정치연합 (어제) : 애국자라고 적반하장으로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 대통령. 가네다 류슈의 아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용주 전 의원은 1925년 영일군의 ‘청년연맹’에 참여해 집행위원을 맡았습니다.


군 단위의 청년연맹은 추후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게 보편적 해석입니다.


1927년 김 전 의원은 좌우익이 합쳐 만든 항일단체 ‘신간회’의 영일군 지회에도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정치부 간사로 일했던 정황도 당시 언론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해촌 김용주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기록 (출처 유튜브) : 1926년 김용주를 비롯한 동지 전원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돼 고생 끝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김 전 의원은 포항영흥학교를 인수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 민족교육에도 신경을 썼던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선친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김무성 대표/새누리당 (8월 14일) : 우리가 좋은 점을 높이 평가하고 부각하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우리 국민이, 국가가 다 대통합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친일파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넘어서 “선친이 애국자였다”고 말합니다. 친일파가 아닌 것과 애국자는 천지차이죠. 그 근거로 2가지를 추가로 내세웠습니다.


첫째, “아버지가 일제 몰래 독립군에 활동 자금도 주곤 했다”는 것, 즉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고 주장합니다.


김 전 의원이 일제시대 때 큰돈을 벌어 자금이 풍부했다는 점, 폭넓은 사회활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없진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증명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독립운동 자금에 영수증이 남아있진 않을 테니 말이죠.


결국 ‘확인 불가’의 일방 주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아버지가 일제의 제거 1순위였다”라는 겁니다.


김용주 전 의원의 평전 154페이지에 보면 패망이 짙었던 일제는 조선인 3천명을 총살하려 했고, 포항 지역의 1순위 대상자가 김용주 전 의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그 어떤 객관적 물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얘기를 일본 요정에서 일본 기생에게 들었다고 서술한 점에서 신빙성에 의문이 듭니다.


김 전 의원은 해방 이후인 1950년 ‘주일공사’로 부임합니다.


주일공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그레망’, 다시 말해 일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제거 1순위였던 인물을, 자신의 나라에 대사관으로 오는 걸 일본이 허락했을까요?

정리하면 1920~30년대 김용주 전 의원에게 친일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 전 의원의 친일 의혹이 짙은 전력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940년 2월 23일,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한다”

1941년 12월 7일,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

1943년 9월 8일,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같은해 10월 1일, “귀여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셔질 영광을 인식하자”

10월 2일,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정신문화의 양양”


그리고 2차대전이 절정이던 1944년 7월 9일,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라며 일제에 비행기 헌납을 독려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김용주 전 의원을 우리 역사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요?


[김무성 대표/새누리당 (8월 14일) : 사관에 대해서는 생각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좋은 점만 생각하자… 제가 그 운동을 펼치고 있으니까… 사람이란 게 다 인생 살다 보면 공과 과가 다… 개인도 있는데, 국가 지도자도 마찬가지인데…]


오늘 여당 기사는 <김무성 선친, 친일과 애국 논란 대해부> 이렇게 제목 정해보겠습니다.


Q. 김무성 “아버지는 애국자” 보도자료


Q. 야 김용주 친일 근거로 창씨개명 들어


Q. 일본 압박에 79.3%가 창씨개명


Q. 김용주, 독립운동 지원하다 친일파로?


Q. “도의원 된 뒤 친일로 전향” 추측도


Q. 당시 도의원은 현재의 국회의원 격


Q. 김무성 “일제에 저항하려 도의원 돼”


Q. 진주만 공습 후 독립운동가 변절 많아


Q. 김무성 ‘애국 부각’ 오해 불러올수도


Q. 김무성 ‘선친 문제’ 왜 들고 나왔나?


Q. ‘대선 전 선친 문제 미리 정리’ 의지


[앵커]

일제치하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일생을 무 자르듯 규정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특히 일제치하라면, 사회지도층이든 일반인이든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고 고민이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극단적인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단정적으로 낙인을 찍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감정은 또 다른 차원이죠. 김무성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냉정하고 균형감 있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여당의 기사는 <김무성 선친, 친일-애국 논란 대해부> 이렇게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2015-10-27> JTBC

기사원문: [여당] 김무성 선친, ‘친일이냐 애국이냐’ 논란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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