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후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며 행사장인 대강당쪽으로 이동하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시정연설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정상의 정상화’로 규정하면서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높이 평가한 뉴라이트 진영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의 역사관을 살펴보면, 평화와 인권 및 상생과 공존이 강조되는 ‘미래 지향적인 올바른 역사관’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성장을 내세워 식민지배와 군부 독재를 정당화하고,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기술할 때는 소수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한다. 역사 발전의 근본 동력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입장도 뚜렷하다.
■ 일제 덕에 근대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의 핵심 집필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족사 대신 문명사를 제기한다. 박귀미 수원외고 역사 교사는 이에 대해 “1876년 개항부터 1945년 해방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서양 문명에 기원을 둔 근대 문명이 이식되고 정착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이런 관점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를 일본에서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고 시장경제가 발전했던 시기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제 시기 ‘쌀 수탈’을 ‘쌀 수출’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98쪽을 보면 “쌀은 일본에 수탈된 것이 아니라 경제논리에 따라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인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소득은 증가하였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일제 때 조선 농민들은 산미증식계획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수리조합 반대 투쟁을 벌였고, 조선의 1인당 쌀소비량이 급감해 보리와 조 등 잡곡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식민지 한국은 서양 제국주의가 지배한 다른 식민지와 달리 농업 식민지로 고착되지 않고 1920년대 이후 공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는 특징을 보였다. (…) 일본의 과잉자본이 한국으로 건너와 공업에 투자되었기 때문이다”(97쪽)라며 식민지 시기 근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일제 지배 근대화 기여”
쌀 증산·수출로 한반도 소득 증대
수리조합·토지조사 등 큰 의미 부여
“이기심은 발전 원동력”
남북한 대조적 현실 비교해보라며
자유와 이기심 중요성 강조
“엘리트가 역사 주역”
건국은 개화파 계승한 이승만 주도
동학혁명은 농민봉기로 격하
북한역사는 대한민국사 ‘보론’에
북한정권엔 노골적인 적대감
■ 이기심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자 역사 발전의 동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남한과 북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차별적이고 대조적인 현실이 생겼는지 캐물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인 자유와 이기심이 인간 역사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17쪽), “모두가 골고루 잘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148쪽) 등에서 잘 보여진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본성이기 때문에 친일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은 (…)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면 이제까지의 차별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하여 과거 민족주의 활동으로 이름 높던 많은 지도적 인사가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협력자가 되었다”(132쪽)며 사회지도층의 친일 행위를 차별에 대응한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행동 정도로 축소한다.
박귀미 교사는 “근·현대사 연구에서 민족이라는 관점을 배제하면 친일파는 반민족 행위자가 아니다. 단지 식민지 시대에 두 문명의 융합 과정에서 차별과 원심력보다 동화와 구심력의 논리를 조금 더 많이 적용한 사람들일 뿐”이라며 이런 역사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 역사 발전의 주역은 엘리트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우리는 이 책에서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누그러뜨리려고 애썼다.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설정하였다”(5쪽)고 밝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설정된 ‘한국인’은 주로 지도자와 소수 엘리트 계층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 개화파를 계승하였다. (…) 대한민국의 건국은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개화파에 의해 주도되었다”(149쪽)거나 “집권 세력의 무능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는 제반 근대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 성장하고 있었다. (…) 1950년대 한국 경제의 발전은 상당 부분 이들 관료 집단의 능력과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168쪽)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반면 민중들의 저항운동은 의도적으로 무시된다. 가령 역사학계가 동학농민혁명 또는 동학농민전쟁이라 평가하고, 이에 부정적인 교육부 교육과정마저 동학농민운동으로 규정한 변혁운동을 ‘동학농민봉기’(43~45쪽)로 격하해 표현하는 것이 한 예다. “동학농민봉기는 기존 체제를 부정한 급진적인 혁명이었다기보다 유교적인 근왕주의에 입각하여 서민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복고적인 개혁의 성격이 강하였다”(43~45쪽)는 서술도 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일방적인 주장으로 농민전쟁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극단적 반북주의
이 책은 북한의 역사를 아예 대한민국사의 ‘보론’으로 따로 떼어 서술하고 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필진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사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역사는 미국 체제 중심의 자본주의 발달사의 보론에 불과하며, 북한사는 대한민국사의 보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론의 내용도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그런 태도는 (…) 개인의 권력 강화를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는 김일성이 공산당과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공산주의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284쪽)고 서술한다. 또 오늘날 북한의 현실을 “이 같은 대규모 기근과 아사는 오로지 북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96쪽)고 단정적으로 서술한다.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거친 비판도 많다. “1997년 주체사상을 정립한 황장엽이 한국으로 망명하자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북한은 어떠한 통합적 정치이념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군에만 의존하는 폭력국가로 변질하였다”(298쪽)거나 “현재 북한체제를 떠받치는 유일한 힘은 선군정치의 폭력이다”(301쪽) 등이 그 예다. 이신철 교수는 이에 대해 “평화통일 방안이 부재하고, 인도주의와 평화주의적 시각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2015-10-29> 한겨레
☞기사원문: 뉴라이트 교과서 전면해부② 일제 ‘쌀 수탈’을 ’쌀 수출’ 강변
※관련기사
☞ 한겨레: 뉴라이트 교과서 전면해부① “김구, 항일테러…”
☞ 경향신문: [커버스토리] 뉴라이트 계열, 실세로 자리매김 (2008.10.14)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8년 5월26일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뉴라이트 교과서) 출판기념회에서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인 2013년 나온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이하 교학사 교과서)는 애초 2261건의 오류가 발견됐고 이후 오류 수정에도 문제점이 많았지만, 교육부는 검정을 통과시키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두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새로 나올 국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미화’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기 힘들다.
박정희, ‘공’ 부풀리고 ‘과’ 합리화
“측근 부정부패에 엄격…근면·검소”
5·16 쿠데타를 “일대 변혁” 평가
군부세력은 “가장 유능한 집단”
유신은 ‘주변정세 이유’로 정당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일명 ‘뉴라이트 교과서’)에 나오는 박정희 서술
■ 박정희 전 대통령 ‘공’ 부풀리고 ‘과’는 합리화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서술이다. 특히 300여쪽에 걸쳐 근·현대사만 상세히 다룬 뉴라이트 교과서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의 ‘공’을 부풀리고 ‘과’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186쪽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그의 집권기에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와 같은 서술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쿠데타’로 정리가 끝난 5·16에 대한 설명도 위태롭다. 뉴라이트 교과서 180쪽을 보면,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세력을 6·25 전쟁 이후 “가장 유능하고 잘 조직된 집단”과 “‘조국 근대화’의 강렬한 포부를 지닌 젊은 장교들”로 묘사한다. 쿠데타의 핵심인 박 전 대통령은 “군부에서 청렴한 이미지로 명망을 얻고 있던” 인물로 서술한다.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해 “5·16은 일부 군부 세력이 (…) 정부를 불법적으로 전복한 쿠데타”라는 정의가 나온다. 언뜻 5·16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초안에서 ‘5·16 혁명’으로 표기했다가 역사학계의 거센 반발로 마지못해 수정한 표현이다. 특히 이어지는 서술을 보면 5·16에 대한 평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정치기능 면에서 5·16 쿠데타는 근대화라는 국민적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결여된 구정치 세력과 그에 도전한 급진이념의 정치 세력 모두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국가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 일대 변혁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반헌법적 조처들은 주변 정세를 이유로 합리화한다. 교학사 교과서 325쪽은 북한의 군사공세 강화와 미국의 닉슨독트린을 설명한 뒤 “이 같은 긴박한 분위기에서 박정희는 1971년 12월 국가 비상 사태를 선언하였다. 또한, 통제와 동원을 쉽게 하기 위하여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고 말한다. 심지어 뉴라이트 교과서는 10월 유신에 대해 “개인의 권력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며 “한국을 둘러싼 국가안보와 국제정세의 중대한 변화를 맞아 (…) 자신에게 집중된 행정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205쪽)고 서술한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군인이 되고 싶은 평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40년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했다”(186쪽)며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꿈의 실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교사직마저 그만두고 일본 관동군이 만든 만주국의 장교로 복무했다는 것은 일제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이승만, 300여쪽 중 41쪽 할애
“임시정부 승인 획득운동의 주역
대한민국 기틀 잡는 데
어느 누구보다 커다란 공훈”
김구, 300여쪽 중 달랑 5쪽뿐
“한인애국단 조직, 항일 테러활동”
“통일정부 교섭 벌였으나 실패” 등
부정적인 서술이 주를 이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일명 ‘뉴라이트 교과서’)에 나오는 이승만·김구 서술
■ 이승만은 부각, 김구는 무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에 관련한 서술에서도 뉴라이트 교과서의 ‘편향성’은 잘 나타난다. 뉴라이트 교과서의 경우 이승만과 관련된 소개가 나오는 부분은 전체 본문 300여쪽 가운데 41쪽으로 6·25 전쟁(38쪽)보다도 많다. 반면 김구의 이름은 5쪽에 걸쳐 간단하게만 등장하고, 그나마도 부정적인 서술이 주를 이룬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고려공산당 당원과 반이승만 세력(…)에 의해 탄핵, 면직되었다”(58쪽)고 설명한다. 그러나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임정의 임시의정원은 이승만이 미주에 머물면서 임정을 돌보지 않았고, 임시의정원이 박은식을 대통령 대리로 임명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주 동포들로부터 거두는 인구세를 임정에 보내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승만을 탄핵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을 영웅화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는 “임시정부 승인 획득 운동의 주역은 이승만이었다”(293쪽)며 독립운동의 공을 이승만 개인에게 돌린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이승만의 삶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158쪽)고 요약한다.
독재와 친일파 척결 실패 등 이 전 대통령의 과오는 합리화된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 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였다”(145쪽)고 친일파 청산을 위해 설치됐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실패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또 “노쇠한 대통령의 후계를 노리는 자유당 강경파의 집권욕은 국내 정치의 혼란을 부채질하였다. (…) 그들은 유권자를 조작하거나 개표결과를 조작하는 등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173쪽)며 부정선거의 책임을 자유당에 전가한다.
김구 선생은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가장 홀대받는 인물 중 하나다. 이 교과서는 김구 선생에 대해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129쪽)고 설명한다. 역사학계가 ‘의열투쟁’으로 부르고 일반인들이 ‘독립운동’이라고 여기는 김구의 활동을 ‘테러’라고 표현한 것이다. 129쪽을 보면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를 반대하고, 북한에 들어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박찬승 교수는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키고, 분단 정부 수립에 반대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불참했다는 점을 외면한 서술”이라고 지적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2015-10-29> 한겨레
☞기사원문: 뉴라이트 교과서 전면해부① “김구, 항일테러…”
뉴라이트전국연합·시대정신·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두각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보수우파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함에 따라 우파 진영의 시민단체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보수단체 중 뉴라이트국민연합 등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층까지 결집시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 멤버가 청와대와 국회, 정부기관 연구소 등에 속속 진입하는 등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과거 정권에서 편성한 예산 때문에 이들 우파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등 금전적 수혜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년부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책의 수용성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이미 이들 시민단체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어 실세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와 관련해 “우파 사회단체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좌편향 척결이 아닌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가 국민과 교감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우파 시민단체들이 정치단체로 인식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성호·이석연씨 등 정부에 진출
뉴라이트계열 시민단체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시대정신(뉴라이트재단과 자유주의연대) 그리고 바른사회시민회의 등으로 분류된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우파가 만든 최초의 자생적 시민단체로 평가받는다. 뉴라이트국민연합은 이명박 대통령과 절친한 김진홍 목사의 주도로 2005년 6월에 창립했다. 김 목사는 1980년대 기독교 관련 모임에서 이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만난 뒤 20여 년 동안 동갑내기 우정을 나눠왔다. 그는 2007년 8월 이명박-박근혜 간의 한나라당 내 경선에서 이 대통령 편에 섰으며, 이후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로 보수 세력이 분열로 치닫던 11월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해 큰 힘을 보탰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자원봉사자로 뛰는 등 전국 조직을 총동원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변철환 대변인은 “김진홍 목사가 원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은 허물이 없다” 면서 “20년 이상 친구로서 최근 2~3년 동안에는 기독교실업인기도회에서 자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출범 2년 만에 회원을 17만 명으로 늘렸다. 이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1만여 명이며, 사무처에는 20여 명이 상근하고 있다. 특히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전국 230여 개 지역에 산하조직을 두고 있으며, 직능조직도 갖췄다. 종교·교사·기업인·문화체육·노동·의사·학부모·대학생 등 16개 직능별 조직을 두고 있다. 또 산하의 방송통신정책센터·문화예술정책센터·규제개혁센터 등을 중심으로 정책을 생산하고, 진보·좌파 진영의 시민단체에 맞서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전국대표자회의를 1년에 세 번 개최하며, 매달 공동대표단 회의를 개최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직도
현재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김진홍 상임의장을 비롯해 임헌조 사무총장과 변철환 대변인 등이 활동하고 있다. 변철환 대변인은 “사무처 직원들이 우파를 대표해서 욕을 먹을 때도 많지만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최초의 조직적인 우파 시민단체라는 자긍심을 갖고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선에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지난 총선에서는 공천을 많이 받지 못했다. 40여 명이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이 중 8명만 통과했으며, 2명만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김성회 뉴라이트경기안보연합 상임대표와 장제원 뉴라이트부산연합 공동대표가 경기 화성 갑과 부산 사상구에서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권용범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대구 달서 을), 정재량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공동대표(비례대표) 등 6명은 금배지를 손에 넣지 못했다. 정부에 진출한 인사로는 제성호 인권대사, 이석연 법제처장, 박영모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등이 꼽힌다
이재교·심용식 ‘시대정신’ 주요 멤버
시대정신 조직도
또 다른 뉴라이트계열인 ‘시대정신’은 뉴라이트재단이 10월부터 명칭을 바꾼 단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뉴라이트재단에 자유주의연대가 흡수 통합된 바 있다. 자유주의연대는 2004년 11월 출범했으며, 2006년 6월에 뉴라이트재단이 만들어졌다. 최초로 뉴라이트 이념을 들고 나온 자유주의연대는 극좌, 극우를 모두 배격하면서 중도우파를 지향했다. 당시 자유주의연대 창립 멤버는 신지호(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국회의원), 홍진표(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최홍재(자유주의연대 전 조직위원장) 등 ‘전향 386 3인방’이 중심이다. 여기에 교과서포럼(박효종 서울대 교수), 뉴라이트싱크넷(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북한민주화네트워크(한기홍 대표),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조전혁 인천대 교수·국회의원) 등과 함께 뉴라이트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신지호 교수는 과거 노동운동을 하다 1992년 월간 ‘길’에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제목의 사상전향서를 발표한 바 있다. 국회에 입성한 신 교수는 최근 시위 관련 불법 행위에 연루된 민간 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의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6월 11일 뉴라이트재단과 통합했으며, 뉴라이트재단은 이후 이름을 ‘시대정신’으로 바꿨다. 이와 관련해 ‘시대정신’의 허현준 사무국장은 “자유주의연대는 1차적으로 정권교체라는 목적을 이뤄냈고, 정권교체 이후 단순한 비판세력 차원을 넘어 국정 대안을 모색하고자 자연스럽게 두 단체가 합쳐졌다”고 밝혔다.
‘시대정신’의 전신인 뉴라이트재단은 2006년 6월에 설립됐으며,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뉴라이트운동의 대부인 안병직 이사장은 과거에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였으나 이후 보수로 전향한 학자로 이영훈 서울대 교수,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 등이 이른바 ‘안병직 사단’의 핵심 멤버다
김성희 의원, 장제원 의원, 신지호 의원. (위 왼쪽부터) 나성린 의원, 이군현 의원, 조전혁 의원. (가운데 왼쪽부터) 박영아 의원, 사공일 위원장, 이석연 법제처장. (아래 왼쪽부터)
‘시대정신’의 주요 멤버는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 심용식 전주삼성병원장, 송근존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뉴라이트재단은 뉴라이트전국연합과는 달리 시위, 저항, 투쟁을 통해 아스팔트로 나오는 것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이념과 사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계간 ‘시대정신’을 통해 주요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시대정신’은 보수우파의 ‘싱크탱크’로서 선진화 아젠다를 제시하기도 했다. ‘시대정신’은 산하에 전문가그룹인 선진화위원회와 북한 붕괴에 대비하는 북한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교과서포럼, 자유교원조합 등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대정신’에서는 재단 이사장인 안병직 교수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으며, 정치권에 진입한 사람도 몇 명 있다. 신지호 전 자유주의연대 대표(서울 도봉 갑), 조전혁 전 자유주의교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인천 남동 을), 박영아 전 자유주의교육연합 정책위원장(서울 송파 갑) 등 3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최홍재·박상헌 뉴라이트재단 운영위원, 정승윤 뉴라이트재단 이사 등은 공천에서 밀렸다.
‘시대정신’의 전신인 뉴라이트재단은 지난 대선과 총선 기간 중에 중립을 표방했다. ‘시대정신’의 허현준 사무국장은 “정권교체로 인해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것은 전혀 없었다”면서 “오히려 지난 촛불집회 정국에서 뉴라이트재단이 많은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우파 시민단체 중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단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002년 3월에 설립된 중도우파 시민단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한국이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의 큰 기틀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민사회 방향이 좌쪽으로 기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서 “중도의 시각으로 보자는 취지에서 설립했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주요 현안에 대한 논평과 성명 발표, 이슈별 토론회, 대학생 아카데미 등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시작해온 대학생아카데미는 수료생이 2600명에 이른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교원평가, 과거사 문제, 한·미FTA. 종부세 문제 등 주요 현안마다 진보 사회단체와 정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격월간지 ‘바른사회’도 발행하고 있다. 전체 회원은 2만여 명이며,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은 5000명 정도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순수 회비만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박세일·나성린 교수 등 싱크탱크로
제성호 대사, 안병직 소장, 윤창현 교수, 박세일 교수, 서경석 목사. (위 왼쪽부터) 한기홍 대표, 최홍재 전 조직위원장, 홍진표 전 사무총장, 변철환 대변인, 임헌조 사무처장. (아래 왼쪽부터)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권력 지형이 바뀌었을지라도 시민단체 본연의 임무에충실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전희경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 때는 비판거리가 많아서 활발히 활동했다”면서 “정권이 바뀌었어도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은 변함없이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화국민회의는 9월 22일 선진화시민행동으로 재창립했다. 선진화시민행동은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이던 서경석 목사가 광우병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면서 행동하는 보수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선진화국민행동으로 재편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공동 대표체제다. 김성기 법무법인 신우 대표 변호사, 김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노부호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공동 대표다. 또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공동대표였던 이군현 의원(경남 통영·고성)과 고문이던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바른사회시민회 출신이다.
이외에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이사장으로 한 중도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로 발돋움하고 있다. 나성린 교수(한나라당 의원)와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산하에는 기획위원회, 정책위원회, 선진화아카데미 등을 두고 정기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있다.
선진화국민회의는 9월 22일 선진화시민행동으로 재창립했다. 선진화시민행동은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이던 서경석 목사가 광우병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면서 행동하는 보수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선진화국민행동으로 재편했다.
선진화시민행동의 공동대표는 구본태 서울여대 객원교수, 맹원재 건국대 전 총장, 박건우 전 한국토요타자동차 회장, 오인탁 전 연세대 교수 등이다. 선진화시민행동은 장기 과제로 ▲바른 선진화 정책대안 모색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 ▲분야별 시민단체 조직 ▲범보수 세력과 연대 강화 등을 설정하고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2008.10.14> 위클리경향 795호
☞기사원문: [커버스토리]뉴라이트 계열, 실세로 자리매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