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0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을 위한 일반예비비 사용신청서’라는 제목의 답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 자료를 보면, 예비비 ‘신청 사유’에 ‘대국민 집중홍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별도의 각주로 적혀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8개 역사학회 ‘제작 불참’ 선언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다. 후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30일 전국역사학대회 현장에서 터져 나온 28개 역사학 관련 학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은 사실상 역사학계의 ‘총의’라고 할 수 있다. 현안에 목소리를 낸 적 없는 학회뿐 아니라 보수 성향 학자들이 다수를 이룬 학회까지 뜻을 모은 까닭이다.
이번 성명에는 역사학계의 대표기구로 꼽히는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13개 학회를 비롯해 외부 학회까지 모두 28개 학회가 참여했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대회 조직위원회에 들어와 있지 않은 학회들도 역사학계 전체 차원에서 이름을 넣겠다고 해서 들어간 것”이라며 “한국의 거의 모든 역사 관련 학회의 총의를 표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학사 파동 때 침묵했던
보수 경제사학회도 동참
정부 설립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29명 철회 촉구 입장문 발표
국정화 찬성 우익단체 10여명
한때 대회장에 난입 소동벌여
참여 학회의 면면을 보면 ‘진영 논리’를 넘어선 역사학계의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확인할 수 있다. 목간·금석문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목간학회는 그동안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어온 학회가 아니지만 성명에 동참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이자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집필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회장을 맡은 바 있는 보수 성향의 경제사학회도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경제사학회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 당시엔 성명서에 연명하길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지금 항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과, 앞으로 국민으로서 학자로서 이보다 더한 모욕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판단이 작동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학술대회 현장에서도 정부의 국정 교과서 도입 방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회장을 맡은 양호환 서울대 교수는 개회사에서 “국내 역사학자들의 인식이 매우 다양하고 또다른 역사인식이 역사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역사학자의 몇프로가 좌파다’라는 발언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사 교육과 역사학의 거리’를 주제로 발표한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는 “(역사 교육의)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다수 학자가 인정한 서술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국정화는) 다양한 연구가 질식되는 사태를 초래하기에 재고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회는 한때 보수단체 회원들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대회가 열린 서울대 정문 앞에는 오전부터 고엽제전우회·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200여명이 모여 역사학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회원 10여명은 대회장인 문화관 중강당 안에 들어가 ‘교육 망친 주범, 좌편향 교수들 학부모가 용서하지 않는다’, ‘역사 교육 망친 자들이 올바른 교과서를 반대해?’ 등의 글이 쓰여 있는 손현수막을 편 채로 10여분간 국정 교과서에 찬성한다는 시위를 벌였다. 이와 관련해 한 역사 전공 교수는 “전체 역사학계의 반대 속에서 폭력배의 엄호를 받으며 강행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결과가 어떨지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부가 만든 한국학 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사 관련 전공과 타전공 교수 29명도 입장문을 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촉구했다.
엄지원 최우리 고한솔 기자 umkija@hani.co.kr
<2015-10-30> 한겨레
☞기사원문: “국정화 반대는 보수·진보 모든 역사학계의 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