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감 대비해 정부 입장 정리
ㆍ‘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문건
국무총리실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작성한 내부문건에서 국정교과서를 발행 중인 해외사례로 북한·스리랑카·몽골·베트남 등을 열거하면서 이들 나라를 ‘후진국’으로 규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리실은 정부의 역사 해석권 독점에 따른 교과서 이슈의 정치쟁점화를 국정화의 단점으로 꼽기도 했다. 정부가 후진적 방식인 국정화를 채택할 경우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해질 것이라는 점을 익히 예견하고도 국정화를 밀어붙인 것이다. 5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총리실의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문건은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문건에는 국정교과서의 단점으로 ‘정부의 역사 해석권 독점 비판’ ‘교과서 개발단계의 정치 쟁점화 우려’ ‘학습자의 교과서 선택권 제한’ 등이 적시돼 있다.
문건은 검정교과서의 장점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 개발’ ‘시장 경쟁을 통한 교과서 질 제고’ ‘역사해석의 다양성 보장’ 등을 나열했다. 국정교과서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획일적인 역사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문건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총리실 교육문화여성정책관실이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의 답변을 돕기 위해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문건은 또한 ‘미국·영국·프랑스·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은 자유발행제를, 인근 국가인 일본과 중국은 각각 검정과 국·검정 혼용을, ‘북한·스리랑카·몽골·베트남 등 후진국’은 국정을 채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건은 ‘주요쟁점 및 답변기조’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에 대한 입장으로 “학생들의 올바르고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위해 역사교육이 매우 중요하므로 현행 검정 체계가 바람직한지, 국정 체계로 전환해야 하는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명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따른 문제점은 지난해 교육부 의뢰로 한국교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적시돼 있다. 보고서는 국정화의 단점으로 ‘국가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배층 위주의 서술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나열했다. 용역 보고서는 이어 “특정 역사관을 국가가 옹호, 제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면서 “실제로 국가발행제로 전환될 경우 집필진 구성에 따라서는 이른바 ‘이념논쟁’이 더 확산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연구보고서 작성에는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 ‘비밀 태스크포스(TF)’에서 일하고 있는 유상범 연구관이 연구협력관으로 참여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2015-11-06> 경향신문
☞기사원문: [국정화 불복종 확산]총리실, 작년 내부문건에선 “북한·몽골…국정화 나라들은 후진국”
ㆍ25년간 사라졌다 1987년 복원
ㆍ새 교과서로 다시 훼손 우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법통 계승이 1962년 5차 개헌부터 헌법 전문에서 25년간 사라졌다 1987년 9차 개헌에서 복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국정화한 역사교과서의 새 집필기준에 ‘1948년 건국’ 개념을 넣으려는 출발점이 오래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셈이다.
임시정부 법통은 광복 후 처음 제정된 1947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전문에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하여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법통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 전문은 1960년 11월 개정된 4차 개헌 헌법까지 변동 없이 이어져왔다.
임시정부 법통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헌법 전문에서 처음 지워졌다. 박정희 의장이 이끈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주도해 1962년 12월 개정한 5차 개헌 헌법 전문에는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문장 대신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로 바뀌었다. 임시정부 법통은 그 후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해 만든 6차 개헌(1969년), 7차 유신 개헌(1972년), 전두환 정권 출범 후 탄생시킨 8차 개헌(1980년)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헌법 전문에서 사라진 임시정부 법통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현행 9차 개헌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로 환생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5일 “과거 박정희 정권이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 법통을 지운 것처럼 이제는 역사교과서에서 임시정부 법통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며 “새로 나올 국정교과서에 1948년 건국론이 반영되면 이승만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던 친일 세력이 ‘건국 유공자’ ‘근대화 유공자’로 둔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2015-11-06>
☞기사원문: [국정화 불복종 확산]제헌헌법에 명시 ‘임시정부 법통’… 박정희가 5차 개헌 때 삭제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사진)가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을 두고 “한국이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5일 서울대에서 열린 초청강연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에 한·일관계를 다시 바라본다’에 참가해 이같이 말했다. | 관련기사 23면
하토야마 전 총리는 강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도 교과서 검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국가가 그런 방식으로 교과서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국가의 개입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유발행제’를 지지한다는 취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검정교과서 체제도 국가가 교과서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한국이 하는 것은 그런 방향에서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교과서는 사실에 입각해서 교과서를 만드는 학자들이 가장 좋은, 가장 맞는 교과서를 만들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소속으로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재임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아베 담화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8월13일 서울에서 ‘동아시아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선언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는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 화제를 모았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2015-11-05> 경향신문
☞기사원문: [국정화 불복종 확산]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도 ‘국정화’에 쓴소리 “역행하는 한국, 솔직히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