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 일자 서둘러 출판 정황… “일본의 조선인 암살 대상 제1호” 주장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정교과서의 친일 독재 미화 우려가 쏟아지고 동시에 부친의 친일 전력 논란이 일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권의 책을 기자들에게 뿌렸다. 그리고 부친이 세운 초등학교를 찾아 부친의 동상 앞에도 같은 책을 바쳤다. ‘해촌 김용주 광복70주년 기획, 새로운 역사인물찾기’라는 부제가 붙은 “강을 건너는 산”이라는 책이다.
책은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 전 의원이 경제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일생을 엮어 ‘애국자’ 김용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책을 들여다보면 김무성 대표가 ‘아버지는 친일이 아닌 극일을 실천하신 애국자’라고 항변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권주자인 김무성 대표에게 부친의 친일 전력 논란은 언젠가 털어내야 하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뒤 부친의 친일 전력이 발목을 잡는다면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때마침 국정교과서 논란이 일고 부친의 친일 전력 문제가 제기됐다. 김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국정교과서 찬반 논쟁의 ‘희생양’인 듯 부친의 친일 전력을 전면 부인하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게 바로 ‘강을 건너는 산’이라는 책이다.
김무성 대표 측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면 부친의 친일 전력이 논란이 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애국자로 그린 아버지에 관한 책을 펴내기 위해 준비했다.
올해 초 김무성 대표 측은 ‘조카’가 나서 저자를 섭외한 뒤 ‘강을 건너는 산’을 일사천리로 만들었다. 국정교과서가 추진이 되기 전인 지난 8월 15일 책이 나온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김용주 평전은 김현진 소설가와 이성춘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썼다. 공동 편저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196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와 기자협회 회장, 고려대 석좌 교수를 지냈다. 언론인이 평전을 쓰는 건 이례적이다.
특히 이 전 회장이 책의 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경위를 따져보면 김무성 대표 측이 부랴부랴 부친의 평전을 만든 정황이 포착된다.
이 전 회장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김무성 대표의) 가족들이 연락이 와서 자신의 아버지가 쓴 ‘풍설시대 80년'(회고록)을 보완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참의원 당시 행적을 썼던 (이성춘 회장의)글이 보이길래 그것을 가지고 보완해도 괜찮냐고 자기네들이 만든 다음 나한테 이름을 넣어도 괜찮냐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평전은 90% 이상 풍설시대 80년이라는 김용주의 회고록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이라며 “김무성 대표가 나한테 전화를 한 적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언론사 시절 김용주 전 의원이 6. 25 전쟁 당시 주일공사에 부임해 일본에서 우리나라 돈을 찍은 일화 등을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이를 인연으로 해서 김 대표의 가족이 연락을 해와 평전 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김무성 대표와 인연에 대해 “김 대표와 5~6년 동안 본 적이 없다. 세대차가 있다. 언론계를 떠날 때 초선 의원인가를 했다”며 “그런데 언젠가 어디 자리에서 만났더니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봄 한 모임에 갔더니 잠깐 들러서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악수 한번 하고 끝난 것”이라며 “사람을 시켜서 정치적으로 이렇게 써라고 하고 쓰는 것은 내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전 회장은 “20년 전 관훈클럽 지방 세미나 휴식 시간 중 누군가 날 보자고 해서 가보니 김창성이라는 김무성 대표의 큰 형님이 우리 아버지에 대한 글도 쓰고 했는데 일찍 인사 못해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한 정도는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김용주 전 의원에 대해서도 “김용주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한국근현대사 건국 이전 정치사와 45년 해방 이후 정치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20~30년 전 이런 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읽어보다가 김용주 의원이 주일공사 부임시절 한국전쟁 때 돈을 찍었다는 걸 알고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여기 저기 잡지에 토막글을 쓴 게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김용주 전 의원의 친일 전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조선 청년들에게 징병제 참가를 독려하는 광고를 냈다. 대구국체명징관에 기부금을 헌납하고 군용기 헌납운동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제에 무기를 공급한 것은 친일 중에서도 중죄에 해당된다는 것이 역사계의 평가이다.
▲ 김무성 대표 측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김용주 평전과 관련 자료. 사진=조윤호 기자
이 전 회장은 김용주 전 의원의 친일 전력에 대해 “김 전 의원이 참의원 시절 친일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국가 재정이 없어 한일 정상 회담 수교를 해야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자민당 중진급 10여명을 사절단으로 보낸다고 하니까 현역 의원들 중 경제쪽 전문가였던 김용주 의원이 주도한 것이 있다. 친일 논쟁은 잘 모른다. 사실인지 아닌지 관심 밖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과거에 쓴 기고글을 바탕으로 김용주 전 의원의 일화를 보완했을 뿐 친일 논쟁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평전 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김용주 평전이 친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만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춘 전 회장은 책 머리말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일제의 차별과 핍박에 맞서 다니던 은행을 뛰쳐나와 3. 1 정신을 담은 삼일상회를 개업해 당당하게 극일의 길을 걷는가 하면 힘없는 조선 민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재산도 아낌없이 내놓는 애족 애민의 삶을 살았다”라고 썼다.
또한 이 전 회장은 김용주 회고록을 바탕으로 평전을 쓴 것에 대해서도 “처음 김용주 선생에 대해 글쓰기를 많이 망설였다. 자기 스스로 서술한 회고록 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면서 회고록이 신문에 시리즈로 실렸다는 점을 들어 “회고록 내용이 신문독자들은 물론 저자의 동시대 인물들로부터 나름대로 검증과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평전을 보면 김용주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을 거의 대부분 인용하고 있다.
평전은 “극일로 이겨낸 망국의 한”이라는 장에서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청년회가 잇따라 조직되고 치열한 민족의식은…(중략)…나도 그러한 시대적 조류에 민감했다. 나의 젊은 피는 내 나름대로 끓었다”라는 내용의 김용주의 회고록을 인용한 다음 “청년 김용주의 가슴 속에는 민족 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고 썼다. 김용주가 삼일상회로 이름을 짓고 사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평전은 “김용주의 삼일상회 상호 작명은 실로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고 논평했다.
김용주가 일본의 조선인 암살 대상 제1호였다는 믿기 힘든 내용도 나온다. 해방 전인 1944년 미군이 조선지역에 폭격을 시작하면 계엄령을 발포하게 돼 있는데 특정 조선인 8명을 체포 총살하라는 지시가 일본의 한 군인에게 떨어졌고 체포 총살 명단에 김용주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 우파들이 대한민국 건국일 표기를 강조하며 건국대통령으로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김용주가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억압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국민은 4. 19 혁명을 거쳐 비로소 억압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술한 것도 훙미로운 대목이다.
평전에서는 5. 16 쿠데타에 대해 “총칼을 앞세운 5. 16 군사혁명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가치의 질서를 일시에 뒤집어 놓았고 모든 분야의 핵심인물들을 그들이 만든 그들의 심판대에 세워놓고 그들 멋대로 유무죄의 판결을 내렸다”면서 “오로지 그들의 말이 법이고 윤리고 최고의 선이었다. 그동안 이승만 독재에 숨죽이고 있던 민주주의가 4. 19로 인해 겨우 싹이 트려는 순간 다시 정치군인들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히고 만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평전은 특별히 “김용주가 말하는 이 사람”이라는 장에서 윤치호에 대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옥고도 치를 대로 치르고 많은 공헌의 기록도 남길대로 남긴 그만한 역사적 인물이라면 시종 양심과 절조를 지켜 나가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항거의 햇불을 들어야 옳을 텐데 아쉽게도 말년에 가서 친일파에 이름이 오른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라고도 썼다.
또한 평전은 이봉창 의사의 일본 천황 수류탄 투척에 대해 “불경한 범인 조선인이라서 송구스럽다”라고 했던 친일파 박춘금이 주일공사로 있던 김용주에게 면회 알선 청탁을 했지만 거부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친일파와 김용주 자신의 행보가 뚜렷히 대비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기록의 힘이 무서운 것은 기록된 내용이 객관적이라고 믿게 만들고 진실인양 포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용주 평전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애국자’ 김용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친의 친일 문제가 제기되면 김무성 대표는 또다시 김용주 평전을 들어보일 것이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2015-11-06>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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