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소식을 접한 소감
기미지마 가즈히코 도쿄학예대학교 명예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추진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화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여당 지도부의 입에서 나왔다. 국정화에 반대할 거면 북한에 가서 살라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단골 레파토리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박 대통령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일부 삭제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임기 2년 조금 넘게 남긴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있다. 8년 가까이 집권한 보수 정권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학생들의 ‘마음’에 수정을 가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교과서 문제는, 그래서 예민한 주제가 된다.
<프레시안>은 서울대학교에서 역사교육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도쿄학예대학 명예교수를 맡고 있는 기미지마 가즈히코 명예교수가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보내온 기고글을 싣는다. 한국학 전문가인 일본인 원로 역사 교수가 바라보는 국정화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기미지마 명예교수는 1945년생이다. 도쿄학예대학 명예교수, 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현재 일본학술회의 연휴회원, 일본역사학협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1960년대~1990년대 ‘교과서검정소송을 지원하는 역사학 관계자들의 모임’의 중심인물로 교과서 검정제를 반대해 왔고, 스스로도 일본의 교과서 집필자로 국정화는 물론 검정제에 맞서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한일역사공통교재’ 제작을 추진했고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번역하여 일본에 알리기도 했다.(편집자)
2015년 10월 12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중학교·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고 한국 역사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한 사람으로서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근년의 한국 역사교육은 심한 혼미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2007년에 정한 개정교육과정을 실시하지 않은 채 미래형 교육과정을 임의로 제정했으며, 또 2009년에 개정함에 따라 한국에서는 수시 개정을 통해 거의 매년 교육과정을 바꾸게 된 것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이 큰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2007년 개정교육과정 고시까지 한국의 교육과정은 5~10년 간격으로 개정되어 왔다. 이것은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교육과정 개정에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민주개혁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 방식은 답습되었다. 1991년 제6차 교육과정 고시 때부터 7년이 지난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제7차 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이 조치는 허용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고등학교 역사의 경우 제7차 교육과정은 2002년도부터 적용하게 되었으나, 같은 해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국사’교과서에는 제7차 교육과정에 없던 근현대사가 기술되어 있었다.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근현대사를 고등학교 2, 3학년용 선택 과목 ‘한국 근·현대사’에서 배우게 되었다. 근현대사가 갑자기 기술된 주원인은 일본에서 중학교용 우익적 교과서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소샤)가 검정에 합격한 것 때문이었다. 이 사태를 초래한 것에 대해 필자는 크게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한일관계가 아니라, 근현대사를 기술하게 한 방침 전환에 수많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근현대사를 배우는 것과 교과서에 근현대사를 기술하는 것에 있지, 어떤 근현대사를 배울까는 문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자국사 교과서(<한국 근·현대사>) 검정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검정제 경험이 십년 조금 더 되었을 뿐이다.
▲기미지마 가즈히코 도쿄학예대 명예교수ⓒ역사정의실천연대 제공 |
부실한 교육 행정과 보수 정권의 ‘입맛’ 뒤엉켜…한국의 역사 교과서, 길을 잃다
제7차 교육과정(1997년 고시)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에 ‘2007년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자세하게 언급할 여유는 없지만, 역사교육에서는 획기적인 개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취임한 보수파 이명박 대통령은 이 교육과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에 2007년 개정교육과정과는 다른 자신만의 교육 방침을 실현시키려 한 것이다. 그 출발이 신자유주의적 교육을 한층 더 추진하려는 미래형 교육과정의 발표였다.
이 교육과정은 ‘총론’뿐 교과의 각론은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자유주의 이념을 교육제도에 강하게 반영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교육과정은 많은 국민들에게서 비판을 받아 일찌감치 사라졌고, 2009년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그러나 각 교과의 내용은 2007년 개정교육과정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라이트의 역사공격이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쳐 역사교육만 문제 삼아 자국사의 교육과정을 개정하였다. 자국사를 강조하고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부추기는 교육과정이었다. 국수주의라는 비판에 따라 ‘국사’라는 명칭을 버리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함께 배우는 ‘역사’를 신설한 2007년 개정교육과정의 과목을 ‘한국사’로 개칭하여 내셔널리즘을 강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사로 개칭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 내용에도 개입하여 교육과정을 개정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는 정부의 의도대로 집필되지 않았다.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는 분류사를 쓰지 않고 계통적 서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이 ‘한국사’ 교과서 때부터 검정제가 채용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연구의 성과를 반영하여 사실을 근거로 했으며, 사료나 사진, 삽화, 지도, 연표 등을 많이 활용하여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과서로 되었다. 제6차 교육과정 당시 ‘국사’ 교과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경험에서 볼 때, 그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검정 교과서의 본령을 발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교육과정 변경이 너무 단기간에 실시되어 교과서 편집에 지장이 생겼다. 2012년부터 사용된 교과서는 당시 고시된 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 제2011-361호, 2011년 8월 9일 고시)에 준거하여 기술되지 못하였고, 실질적으로는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정에 합격한 ‘한국사’ 교과서만 신교육과정에 준거해서 기술을 수정한다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것은 근현대사 부분의 보충이었다. 역사교과서는 길을 잃었다.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를 담은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3년간이 하나의 학년군으로 편성되고 모든 과목이 선택 과목으로 되었다. 따라서 ‘한국사’라고 이름 지은 자국사도 선택 과목으로 되었다. 이 조치에 대해 수많은 역사연구자와 교육자, 그리고 학부모회가 자국사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반대하여 한국사는 필수 과목이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모든 과목이 선택 과목이라는 제도 하에서 한국사만 필수 과목으로 된다는 비정상적 상태가 된 것이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제도가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된 것도 ‘한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하면 자국사를 배우지 않는 고등학생들이 생긴다는 주장이었고, 어떤 한국사를 배울 것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 보수 세력이 문제로 삼은 것은 교과서 제도가 아니라 교과서 내용이었다. 2004년부터 본격화된 <한국 근·현대사>(금성사) 교과서를 향한 공격은 교과서 내용에 대한, 역사 해석에 대한 공격이었다. 2005년에 발족된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와 2013년 검정에 합격한 <한국사>(교학사)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이용한 다른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도 교육 내용과 역사 기술에 대한 공격이었다.
일관되게 교육 내용에 대한 비판을 전개해 온 보수 세력으로서는 민주적 검정제도 하에서 교과서의 기술과 역사 평가를 둘러싼 비판적인 국민들의 목소리를 고려하면, ‘국정 교과서’ 제도가 훨씬 더 쉬운 해결책일 것이다. 국론 통일이라는 명분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정당성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더 좋은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할지, 좀 더 시간을 들여 토론하자
이렇게 보면, 한국의 많은 국민들이 왜 고등학생들이 역사를, 특히 자국사를 특별 취급을 해서라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중국의 동북공정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글로벌화된 세계 속에서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어떤 한국사를 배울 필요가 있는지 좀더 시간을 들여 차분하게 토론해 보는 게 어떨까. 이 점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역사교육을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고등학생 역사 인식의 통일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교과서는 하나고 거기에 쓰여 있는 사실만이 ‘올바르다’고 합의할 필요는 없다. 여러 의견과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도 좋다는 합의를 할 수 있다면 교과서는 국정으로 할 필요가 없다. 검정, 더 나아가서는 자유발행도 좋지 않을까? 다만 거기서는 누군가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할 교과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고등학생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역사 인식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국의 역사교육을 우려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일깨우며 조심스레 발언하였다.
<2015-11-09> 프레시안
☞기사원문: 우익 망령 살아나는 일본도 ‘국정 교과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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