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경기 파주 탄현면 헤이리마을 자택에서 만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100권이 넘는 역사책을 저술한 그는 대통령과 여당,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없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목적의 ‘공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역사학자 이이화
“입맛대로 다져진 역사책을 보고 싶지 않아요.”
“사실과 다른 답을 적게 하지 마세요.”
“대통령이 교과서를 바꾸면 국민은 대통령을 바꿉니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울먹임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는 아이도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교복 차림의 중고생들이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습니다’란 현수막을 펼치고 인사동에서 거리행진을 벌이던 날이었다. 장년 남성 하나가 “니들이 교과서를 알아?” 외치더니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달려가 아이들이 든 현수막을 발로 걷어찼다. 아이들은 물끄러미 사내를 바라볼 뿐, 대항하지 않았다. 못난 어른에, 의연한 아이들이었다.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논쟁은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아집과 광기, 무지와 굴종으로 범벅된 퇴행의 역사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이들의 현수막을 발로 걷어찬 사내가 던진 말을, 기성세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니들이 역사를 알아?”
지난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이이화(79)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평생 10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한 한국 역사학계의 원로로, 특히 그가 10년에 걸쳐 집필한 <한국사 이야기>(한길사)는 5천년 우리 역사를 총 22권 분량의 방대한 민중사, 생활사로 담아낸 전무후무한 역작으로 손꼽힌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그의 눈에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뜨거운 대립은 망국의 전조일까, 희망의 조짐일까? 이 부끄러운 역사에서 무엇이 강한 것이고 무엇이 살아남을 것인가?
유례없는 역사전쟁, 대통령의 패착수
– 엊그제도 비 오는 주말에, 시내 곳곳에서 국정화 반대 시위가 열렸습니다. 요즘 집회 현장에 가보셨나요?
“가보다 뿐인가? 강연하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지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이번만큼 격렬하게 논쟁이 펼쳐진 적이 있었나요?
“거의 없죠. 아주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해방 후 70년 동안 처음이 아닐까.”
-역사가로서, 이번 현장을 기록한다면 뭐라고 이름 붙이는 게 적당할까요?
“오늘날 이걸 ‘역사전쟁’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은데, 상당히 걸맞은 이름이라고 봐요. 역사전쟁이란 말은 우파고 좌파고, 진보고 보수고 다 쓰고 있다고요.(웃음) 대외적으로도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이 근현대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독재와 친일문제가 내재해 있었는데, 이게 시대적으로 다 맞물려 있는 걸 딱 터뜨린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지. 박 대통령은 발상 자체도 나쁘지만 시간을 참 잘못 잡았어요. 내가 보기엔 정치적으로도 계산성이 없어. 자기 생각만 하지.”
-대통령의 패착이라고 보시나요?
“패착이지. 패착도 아주 큰 패착이야. 현실정치에서도 패착이고 긴 역사로 봐서도 패착이고.”
-국정화 확정고시가 되고 강행 방침이 선포되었지만 청소년들까지 나서서 저지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역설적이지만 이 사건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아주 중요한 학습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보면, 19세기 지배세력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언제든 반작용이 일어났어요. 대한제국이 성립하고 많은 국민들은 나라에서 뭔가 개선책을 낼 줄 알았어요. 외래문물도 들어오고 러시아나 미국, 일본 같은 외세 문제도 있고 하니… 근데 그걸 제대로 못한 거지. 그때 처음으로 거리데모가 시작되었어요. 종로 일대에서 만명이 모여서 고종황제가 있는 덕수궁까지 거리 행진을 벌인 거지. 덕수궁 앞에서 밤새 농성하고, 임금한테 ‘러시아한테 이권 주지 마시오!’ 호소하고, 아줌마들은 물이랑 주먹밥 해서 날라다 주고….”
-그 당시 서울인구가 20만명쯤 되었다는데, 만명이면 엄청난 숫자네요.
“그런 얘기가 당시 독립신문에 다 나와요. 우리한테 그런 전통이 있거든요. 그래서 3·1운동도 있었던 거고… 내가 이번에 감탄한 게, 중학생들이 나왔다는 거예요. ‘전교조 선생님들이 선동해서 나왔다’고 그러는데 전부 거짓말이고, 애들이 자발적으로 나온 거야. 지난번 집회 가보니까 대구에서 온 여중생이 얘길 하는데, ‘우리가 왜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가, 민주주의 때문이다. 정권이 학문과 교육에 간섭해선 안 된다!’ 이게 기본으로 딱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저도 들었습니다.
“아주 감탄했어요! 아, 이게 그렇구나! 그때 건너편에 모자 쓰고 군복 입고 돌아다니는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하는 얘기라니… (한숨) 저렇게 세대만큼 차이가 있구나. 우리 세대는 희망이 없고 빨리 죽어야 해. 그래야 민주주의가 잘되겠구나, 난 그렇게 느꼈어요.”
주역 연구 권위자 이달 선생의
서자로 태어나 엄격한 훈육
그의 공식 학력은 고졸
아이스케키·군밤 장사 등 하다
100권 넘는 책 낸 역사학자로
“거리 나온 중학생들에 감탄
전교조 선생들이 선동했다?
그건 전부 거짓말일 거예요
우리 세대는 빨리 죽어야 해
그래야 민주주의가 잘되겠구나”
▲ 이이화 선생이 10년에 걸쳐 집필한 <한국사 이야기>(한길사)는 우리 역사를 총 22권 분량의 방대한 민중사, 생활사로 담아낸 전무후무한 역작으로 손꼽힌다. 우리 나이 여든 살의 고령인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파주/강재훈 선임기자 |
박정희 사진 한 장, 김일성 사진 세 장?
-그런데 지금 정부 여당에서는 ‘검인정교과서가 친북 좌파’라는 프레임을 계속 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고요. 이 국정화 옹호론자들이 문제 삼는 검인정교과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뭡니까?
“한마디로, 대통령부터 교육부, 새누리당 의원들 말하는 거 보면 99%가 거짓말이야. 난 딱 세 가지로 요약을 할게요. 먼저, 검인정교과서를 총 관리한 사람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진이야. 서울대 교수 출신. 그 사람이 우파예요. 그 사람이 엊그제 그랬어요. ‘현재 좌파 교과서는 없다’고. 현재 8종 중에서 한 종은 극우고….”
-교학사 거요?
“그렇지. 나머지 중에서 4종은 우파, 3종은 우파 중간. 그러니 좌파 책은 없다고 얘길 했어요. 그 사람은 현장을 직접 지휘하고 담당했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맞는 거예요. 나도 동의해요.”
-두번째는 뭡니까?
“내가 이런 말을 인용하는 것조차도 저급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국무총리 말을 빌릴게요. ‘검인정교과서에서,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하지 않고 정부 수립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은 건국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대목이 있습니까?
“다 그런 게 아니고 딱 한 종에서, 그것도 현행 교과서가 아니고 수정하기 전 판본을 놓고 하는 말이지. 그러니까 기가 막힌 인간들이야. 묵은 것 갖다놓고 뻥튀기를 하는 거야. 근데, (1948년을 건국이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하는 게 맞아요. 왜냐하면, 우리 헌법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1948년 헌법 제정하고 정부 수립했다고 나와 있다고요. 국무총리가 헌법에 기초해서 말을 해야지. 이건 헌법 위반이라고.”
-세번째 쟁점은 뭡니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말이, ‘(검인정교과서에) 박정희 사진은 하나밖에 없고. 김일성 사진은 세 개가 있다’고, 그래서 김일성을 찬양했다고 그러는데….”
-하하하….
“김일성 사진이 세 개 나온 건 맞아요. 하나는 6·25 전쟁 터지기 전에 스탈린 찾아가서 지원해달라고 부탁하는 회담 사진이야. 그게 김일성 찬양 사진인가? 기록 사진이지! 그 뒤에 나온 김일성 사진은, 주체사상을 비판하고 영구집권을 비판하는 내용 중에 사진이 나와요. 그게 찬양이냐고? 그이들이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어, 그런가?” 할 거 아니겠어? 내 친구도 전화 왔더라고. 그게 사실이냐고. 학생들한테 직접 물어보면 증거가 되잖겠어요? 애들이 뭐라고 하냐면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러잖아. 애들이 더 먼저 아는 거지.”
-총리나 당대표가 정말로 몰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요? 일부러 이념대립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일까요?
“두 가지 다일 거야. 국무총리나 김무성 대표 같은 이들이 잘 모르기도 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말했으니까 일단 논리를 개발해야 될 것 아냐? 교육부나 국사편찬위원회에다가 반대논리를 개발하라고 시키는 거지. 근데 내용이 없으니까 거짓말하고 과대 포장하고… 다 정치적인 목적이지.”
-정치 목적으로 그런다?
“없는 논리를 만드는 거니까, ‘공작’ 차원이라고 보면 돼요. 난 분명히 ‘공작’이라고 말했어요! 언론에 이런 얘길 하면 아주 점잖은 말로 바꿔놓아서 내가 불만이 많아요.”
-말씀하신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리얼하게 쓰세요. 이렇게 뻥튀기 왜곡, 거짓말 하는 게 공작 차원이라면 두 번째는 진짜로 우리 사회에 극우들이 있어요. 이 극우들 못 말릴 사람이잖아. 툭하면 종북 좌파로 몰아가고. 이승만 때는 평화통일이라는 말도 못했어요. 그 잔재들이 여전히 있는 거지.”
-그래도 이번에 역사학계 전반이 국정화에 우려를 표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한 건 반가운 소식입니다. 정견의 차이를 넘어서서 사학자들이 이렇게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죠?
“옛날 유신 때, 전두환 때 다들 겪어 봤거든. 유신 때 정부에 붙어서 역사 기술했던 놈들 다 욕먹고 실패했잖아. 출세도 변변히 못했어요. 여당에서도 인간 취급 안 해주고.”
-아, 그런 학습효과가 있군요.
“그렇게 끝난 사람이 한둘인가? 제자들한테도 왕따당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는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나이 여든살의 고령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몇시간째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2005년 한차례 위암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하는 현역 연구자다.
곧 책 두 권이 더 나올 거라고 했다. 19세기 역사에 대해 한 권, 현대사를 대폭 보강한 원고지 1700장 분량의 개설서 한 권. “안 쓰면 근질근질해서”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사 이야기> 총서를 쓰던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두문불출하고 칩거해서 어깨를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했을 만큼, 그의 역사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결기는 각별하다.
주역의 대가, 이달(李達)의 팔삭둥이 서자
이이화 선생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서원대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2012년 원광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그의 공식 학력은 고졸이다. 1958년 지역 명문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천승세, 김주영 등과 동문수학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밥벌이를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 군밤 장사, 보험 외판원, 술집 웨이터 등 밑바닥 삶을 전전하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가 1989년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이 되어 계간지 <역사비평>을 간행하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그의 탁월한 고전 해석력과 하층민의 삶 속에서 체득한 역사에 대한 안목 덕분이었다.
1968년 신동아 별책부록인 <한국고전백선> 작업을 하며 사료 검토와 번역 작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민족문화추진회와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문헌 해제(解題) 작업을 하며 당대의 역사학자들과 교유했다. 원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제 때 쓰인 일본어 논문을 베끼는 데 급급했던 일부 사학자들에 비해, 그의 사료에 대한 독보적 해석능력은 단연 돋보이는 자산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주역>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한학자 야산 이달(李達) 선생의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속에 성장했다. 팔삭둥이에 병약하고 왜소했지만, 야산 선생은 그의 남다른 총명함을 귀하게 여겨 외딴 산채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학하도록 했다. 열다섯살 때 이이화가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는 그의 유소년기 교육을 전담한 엄한 스승이자 사회개혁적 사상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롤모델이었다.
-야산 선생은 <주역>의 대가로 꼽히시는 분인데, <주역>이라고 하면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어요. <주역>은 어떤 책입니까?
“기본적으로 <주역>은 통치철학이에요. 하늘, 땅 이치를 캐면서도 인간 중심적인 인문학이지요. 중국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이다 보니 해석이 다양해요. 아버님이 평생 연구하신 <주역>의 주요 사상은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입니다. 선천은 인간이 싸우고 불평등한 세상이지만, 후천의 시대에는 평화스럽고 평등하게 남녀, 귀천의 차별이 없어진다고 보셨지요.”
-‘후천개벽’이라고 할 때 그 후천이군요.
“이론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이분이 혼자서 방 안에서만 공부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돈이 생기는 족족 집에 가져오는 대신, 제자들을 먹여 살렸지요. 강원도 철원에 20~30가구 들어가는 땅을 사서 거기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 시대에 공동체 마을을요?
“중국 고대에 정전법이라고 있는데, 토지구획을 우물 정(井)자로 해서 공동소유하고 공동노동하고 공동분배하는 거지. 정약용의 여전론이 그거예요. 이런 헤이리만한 마을에 집을 짓고 가운데 창고를 만들고, 땅 나눠주고 농사짓게 해서 호박이 열리면 창고에 넣고 쌀도 필요한 만큼 퍼 가라 했는데… 한 3년 하다 망했지.”
-이상주의자셨군요.(웃음)
“쌀도 필요 이상으로 훔쳐가고 호박도 덜 익은 거 따 가고….(웃음) 우리는 웃으면서 저게 실험정신이다, 그랬어요.”
뜻을 품으면 어떻게든 실행으로 옮겨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은, 아버지의 대물림이었을까? 아버지는 신식학교에 가면 일본식, 서양식으로 세뇌된다며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지만, 이이화는 아버지 몰래 가출을 해서 제 발로 고아원으로 들어갈 만큼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열망이 컸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학에 대한 이해와, 광주고 문예반장을 하며 싹튼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후 그가 100권이 넘는 역사책을 저술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태정태세문단세 외워 뭐할 거야
왕 중에 걸레 같은 인간도 많은데
세종 정조 몇사람만 알면 되지”
‘한국사 이야기’ 쓰면서
민족사·민중사·생활사 표방
“박 대통령은 역사 무식한 사람
대통령이 ‘환단고기’ 좋아한다니
고대사 대폭 늘리고 근현대사
쫙 줄인다고 하잖아
환단고기? 책값도 아까워”
▲ 이이화 선생과 이진순(오른쪽)씨가 이 선생의 서재에서 옛 광주고 시절 선생의 글이 담긴 교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파주/강재훈 선임기자 |
역사는 과거를 비춰보는 현재의 거울
-한학을 하셨지만 한자어보다 우리말을 제대로 잘 써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역사책은 누가 읽어도 술술 잘 읽히지요.
“역사 대중화를 하려면 우리말을 쉽고 재밌게 잘 써야 해요. 내가 역사문제연구소에 있을 때도 보면, 다들 박사과정 하고 있는 놈들인데 말이야, 난 아주 답답해 죽겠어요. 한자도 나보다 못하는 놈들이 무슨 말을 그렇게 딱딱하게 쓰냐고? ‘즉자적’(卽自的)이니 뭐 이런 말들을 갖다 쓰고. 대중들이 모르는 말을 쓰면, 책 읽을 때 사전 두고 읽으란 말인가? 내가 제일 먼저 고쳐놓은 게, ‘본서는~’ 이런 말! 그냥 ‘이 책이~’ 하면 되지. 본서가 뭐야, 본서가? 전두환이 연설할 때 잘 쓰던 투로 ‘본인은~’ 이런 말… 이거 뭐! 다 일본식 말투.”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뿐 아니라,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습니까?
“내가 <한국사 이야기>를 쓰면서 표방한 것이 세가지예요. 민족사, 민중사, 생활사를 쓰겠다고요. 침략적 우월적 민족주의 말고 외세 침탈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생존적 민족주의, 대다수 평범한 상놈과 종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민중사, 그리고 뭘 먹고 뭘 입고 어디서 살았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그 생활을 조명하는 생활사. 역사라는 게 태정태세문단세… 그딴 거나 외고 연도나 외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 왕들 이름 다 외워서 뭐할 거야? 왕 중에 걸레 같은 인간도 얼마나 많은데. 세종, 정조… 몇 사람만 알면 되지.”
-그럼 선생님에게 역사란 뭡니까?
“역사는 현재라는 거울로 과거를 비춰보는 거예요. 과거의 묵은 얘기, 지나간 얘기가 아니라고. 오늘날 우리가 과거에서 뭔가 교훈을 얻을 것은 얻고 반성을 할 것은 반성해야 돼. 그렇지 않아요? 나쁜 짓을 했으면 반성해야지. 그게 미래세대에게 주는 교훈이 되어야 하고.”
-그럼 역사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틀린 거네요. 어차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니깐.
“인간이라면 세상을 보는 게 조금씩 다르잖아요. 역사가도 마찬가지지. 감나무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감나무의 감에 관심을 두고, 어떤 사람은 가지가 어떻게 크는지 관심을 두고… 보는 눈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져요. 그게 민주주의 사회지. 국정화를 하면 하나밖에 안 나온단 말야. 왕조시대나 전제국가에서나 하는 일이지.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들한테 역사를 맞춰나가는 거. 역사를 도구로 삼으려고 해선 안 돼요.”
-그럼 어떤 정부냐에 상관없이 국정화 자체에 반대하시는 건가요?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주도를 했더라도 국정화에 반대하셨을까요?
“물론이지. 국정화는 절차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거예요. 민주주의 국가에선 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사상, 학문,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으니까. 지금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에서는 ‘검인정교과서도 통제’라고 해서 거의 다 ‘자유채택제’로 가고 있어요. 학교 교사가 교장한테 ‘역사책 좋은 거 있으니 검토해 보자’고 하면 같이 상의해서 결정하는 거예요. 국정화 교과서는 지금 북한하고 스리랑카, 일부 이슬람 국가밖에 없어요. 소련이랑 중국도 검인정으로 바꿨고, 베트남도 한달 전엔가 검인정으로 바꿨으니까.”
-우리만 거꾸로 가는 거네요.
“박 대통령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역사에 대해 무식한 사람이에요.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말을 분석해 보면 뉴라이트 교과서를 칭찬하고 일제, 친일파, 근대화론 이걸 옹호하는 사람이지. 자기 목적은 딱 자기 아버지한테 있다니깐. 5·16, 유신 이런 걸 합리화하는 것! 거기다가, 대통령이 어디서 고대사에 대해서 좀 들은 모양이에요. 석기시대에 단군조선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환단고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걸 좋아한대요.”
-환단고기는 정사(正史)로 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환단고기를 읽을 수가 없어. 한번 읽어보세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정말 구역질 나는 일
-전 못 읽어봤습니다.
“사서 읽지 마세요. 책값도 아까워! 어디 헌책방 같은 데서 한번 뒤져보라고. 완전 거짓말이야. <삼국유사>에도 허황된 얘기는 나오지만 어떤 민중적 사유라든가 그런 걸 담고 있죠. 단군신화는 그냥 신화로 해석해야지. 고대에 천조대신이 어쩌고저쩌고… 이게 말이 되냐고? 석기시대에 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긴 부족국가 시대예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놓고 대통령이 환단고기 좋아한다니까 고대사 대폭 늘리고 근현대사 쫙 줄인다고 하잖아요.”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실 저도 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발행한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근현대사 비중이 작고 유신과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만 비중 있게 다룬 역사책…. 근데 그런 책으로 공부한다고 꼭 세뇌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미래세대한테 제대로 된 교육을 못 시키면 대학에 들어가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잖아. 유신이고 한국전쟁이고 다 틀리니까… 운동권으로 빠지고 이념에 빠지고 말야. 그래 놓고 그걸 또 빨갱이라고 욕하지. 우리가 그 과정을 이미 다 겪었어요. 다시 반복하면 안 되죠.”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한 일의 의미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하려고 할 때,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고 합니다. 역사가 판단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게 무슨 소리냔 말이야? 지들 나쁜 짓 다 해놓고. 역사가 쓰레기통이냐고? 김종필이니 뭐 이런 이들, 퇴직하고는 유신 얘기하면서, ‘뭐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 이딴 소리 하는데. 그럼 이완용이 말이야, ‘나 죽고서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다’ 이딴 소리를 하는 거나 똑같지. 자기가 바른 행동을 해놓고 역사가 판단한다고 그래야지. 정치하는 놈들이 이런 말 쓰는 건 정말 구역질 나잖아.”
어떤 이는 역사를 빙자하고, 어떤 이는 역사를 희롱하고, 어떤 이는 역사를 무시한다. “좌파를 일소하고 역사를 올바르게 세운다”는 나치의 교육강령이 되살아난 시대, 우리가 공존과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폭압과 독선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녹취 이돈섭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2015-11-20> 한겨레
☞기사원문: “역사의 판단에 맡겨? 역사가 쓰레기통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