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참여 동의했으나 국편이 사상 검증해 탈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전공 교수 인터뷰
[한겨레21] 집필 참여 동의했으나 국편이 사상 검증해 탈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전공 교수 인터뷰
*이번주 발행된 <한겨레21> 1091호 지면용 기사에는 한규철 명예교수를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인터넷 기사에는 실명으로 바꿔 공개합니다. 지난 12월12일 한국고대사학회에서 한 교수가 발표한 글에 기사의 내용이 일부 반영돼 있고, <한겨레>에서 12월14일치 신문에서 실명으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뉴시스 |
‘국정 역사 교과서’ 제작을 총괄하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서 집필진 참여에 동의한 대학교수를 상대로 사실상 ‘사상 검증’을 한 뒤 위촉 대상에서 탈락시켰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거 시국선언 참여 이력을 확인한 뒤 집필진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국편 위원을 지냈고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한규철(65) 경성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아직까지 사상 검증을 하는 게 (이 정권은) 덜됐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겨레21>이 12월11일 한 교수와 전화 통화한 내용이다.
“1987 호헌 철폐 반대 서명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참여를 언제, 어떻게 제안받았나.
김정배 국편 위원장이 내 은사다(고려대 한국사학과). 김 위원장이 집필진에 참여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길래, 좀 망설이다가 하겠다고 구두로 답했다. 참여를 제안받은 건 (김정배 위원장 부임 이후) 국편 위원들 회의 때였다.
이후 따로 연락이 없었나.
국편에서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국편이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수를 발표하기(11월23일) 며칠 전이었다. (과거에) 시국선언을 했는지 나한테 물어봤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호헌 철폐 반대 서명을 했던 적이 있다. 이후 국편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위촉을 한다는 연락이 없었다. 국편에서 (집필진으로) 올렸는데, 위에서 잘린 거라고 본다.
집필진 참여 뜻을 밝혔는데도 제외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내가 조금 안타까운 건… 사상 검증이라고 할까, 요즘에 신원 조회를 하지 않나. 내가 (설령) 좌익 생각을 하더라도 고대사 쓰는 데 그렇게까지 하겠나. 나는 국편 위원뿐 아니라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도 했다. (그런데) 문서상으로 국편에서 (위촉) 요청을 안 했다. 정식으로 위촉하지 않은 거다. (그러나 집필진에서 빠진 것이)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집필진에 참여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내 전공은 고대사 가운데 발해사다.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지난번 교학사 채택본을 인민재판식으로 못하게 막은 건 지식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채택하라고 놔두는 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아닌가. 지식인들이 좀 비겁했다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전에 시국선언에도 참여했지만,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나라에 사는 게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정부가) 사상 검증을 하는 게 (수준이) 덜됐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과거 국정교과서 시절)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학사 교과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에서 고대사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일회용일지라도,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순수하게 학술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던 거다. 예를 들면, 신라와 당 연합군을 ‘나당 연합군’이라고 하는데 나는 ‘신당 연합군’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역사 교과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대사가 교과서에 너무 비중이 많다. 현대 100년은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관심이 매우 많다. (왜냐하면) 중·고등학생들이 예비 유권자 아닌가. 5·16 이런 것을 규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다루면 몰라도, 역사라면 평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지 않은가. 아주 편년체나 연표 중심으로, 기본적인 사실 중심으로 하는 게 맞지 않나 본다. 현실 부분이 교과서에 많이 섞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편 “시국선언 질문 모른다”
한규철 교수의 ‘사상 검증 뒤 집필진 제외’ 주장에 대해 국편 박한남 기획협력실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한 교수가 그렇게 말씀하신 건 존중해드려야 하지 않겠나. 교과서를 집필할 의사가 있는지는 여쭤봤다. 그러나 시국선언 질문 부분은 모른다”고 해명했다.
인물난 겪는 국편 집필진 억지 임명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또 당황스럽다. 이번엔 세 번째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드러났다. 국편이 첩보작전 하듯 집필진을 감추고 있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 역사 교과서’의 민낯을 감추지 못하는 셈이다. 12월10일 교육전문지<교육희망>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한 상업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교사는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임명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털어놨다. 그는 “내년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 교과서를 쓰게 됐다. (집필진이) 모이면 (국편이)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는 취지의 글을 동료 교사들에게 보내면서 정체가 드러나게 됐다. 앞서 국편은 지난 11월4일 처음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계획을 밝히면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를 대표 집필진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 둘을 제외하면 국편이 의도적으로 숨겨온 교과서 집필진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관련 보도가 번지자 김 교사는 집필진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국편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편도 “김 교사의 의견을 존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국편이 실제 집필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집필진으로 공개된 3명 가운데 2명이 사퇴하게 됐기 때문이다. 최 명예교수도 집필진으로 공개된 첫날 ‘여기자 성희롱’ 논란을 빚은 뒤 곧바로 사퇴했다. 김 교사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교과서 집필진의 전반적인 역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 교사의 역사 수업 경력은 9개월에 불과했다. 이전에는 9년간 상업 교과를 가르쳤다. 국편은 교과서 집필진을 공모하면서 ‘교육 경력 5년 이상 중등학교 교원 또는 교육전문직’이란 자격 조건을 걸었다. 교과목을 특정하지 않은 탓에 경력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다른 과목을 가르쳤던 교사가 역사 교과서 집필진에 들어온 것이다. 국편은 “공모 기준(5년 이상 경력)을 어긴 것은 아니다. 서류상 하자는 없다”고 했다. 국편이 어느 정도 인물난을 겪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애초 중학교용 26명, 고등학교용 21명이었던 집필진 구성도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 집필진 명단 공개 여부와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국편은 최근까지도 “집필진이 외부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집필에 전념할 환경을 만들 것이며, 명단 공개는 당사자들과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편찬심의위원회 명단도 비밀에 부쳐졌다. 전문가·교사·학부모 등 16명으로 구성된 편찬심의위원회가 집필 기준을 검토하고 있지만, 그 면면은 공개되지 않았다. 강은희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간사는 지난 12월10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에게 “편찬 기준이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재 미화 논란과 관련해서는 ‘5·16 군사정변’이란 용어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5·16이 일어난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다. (경제 여건이 안 좋았다는 등)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
<2015-12-14> 한겨레21
☞기사원문: “국편에서 시국선언 했는지 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