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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부는 국정교과서 ‘복면집필진’을 즉각 공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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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정교과서 ‘복면집필진’을 즉각 공개하라


1. 지난 10일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친 경력이 채 1년도 안 되는 상업교사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선정되어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에는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가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되어 집필진에서 배제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 한규철 경성대 명예교수는 스승인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으로부터 국정교과서 집필진 참여 제안을 받고, “은사인 김 위원장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고, 전공인 고대사를 제대로 기록해보고 싶은 뜻이 있어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2012년부터 3년간 제17대 국편 위원으로 활동했으므로, 국편에서 책임 편찬하는 국정교과서 집필에 어떤 하자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한 교수는 부산경남사학회장, 한국고대사학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학계에서 손꼽히는 발해사연구권위자이기도 하다.


3. 그러나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책임 편찬기관의 수장이 추천하였으며 게다가 학계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고대사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집필진에서 탈락하였다. 구체적인 결격사유는 듣지 못했지만, 김정배 위원장이 “시국선언에 서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때에 호헌 철폐 반대 서명을 했던 게 탈락사유인 셈이다. 1987년 ‘호헌철폐’ 서명은 전두환정권의 독재에 저항하여 직선제를 쟁취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던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비로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고, 정권의 단일한 역사관은 강요하던 국정 역사교과서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검정교과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정말 호헌 철폐 반대 서명이 문제가 된 게 맞는다면 박근혜 정권은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입만 열면 반 헌법 세력 척결을 외치는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가장 반 헌법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4. 전문성은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면서 내건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다. 교육부는 “학계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는 우수한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균형 있고 질 높은 교과서를 개발”할 것이라고 약속하였으며, 국편은 “집필진은 학계에 명망이 높은 원로를 초빙하여 최종적으로 구성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역사를 가르친 지 채 1년도 안 된 교사는 면접도 보지 않고 ‘묻지마’ 선발한 반면, 학계의 명망 높은 전문가는 신원조회를 통해 탈락시켰다. 교과서 발행 책임을 맡은 교육부와 책임편찬 기관으로 지정 위탁된 국편 모두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5.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게 탈락사유가 된다면 사상검증을 통과한 ‘복면 집필진’ 또한 국민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은 국정교과서 집필진이 누구인지, 집필진 구성이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등을 알권리가 있다. 특히 사상검증을 국정원이 했는지 아니면 다른 기관에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권 차원의 사상검증을 통과한 근현대사 집필진을 하루빨리 공개하기 바란다. 그리고 집필진 전원은 물론, 교과서 내용을 검토하는 연구위원과 검증위원들의 명단도 즉각 공개해야 할 것이다.<끝>

2015년 12월 14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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