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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나서면 되는데 왜 유족들이 고생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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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다 게이시. 사진 길윤형 특파원


 
[짬]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지원 모임 우에다 게이시

“한국 정부로부터 요청이 없으면 일본 정부가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정부가 있는데 유족들이 왜 이렇게 발로 뛰어야 하는 거죠?”

지난 9일 오전 9시15분, 일본 도쿄 지요다구 참의원 회관.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우에다 게이시(57)가 멀리서부터 반갑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이다. 그는 <한겨레 일본어판>의 대표 메일을 통해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된 ‘한국인(조선인) 유골’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며 여러 차례 간곡한 취재 요청을 해왔다. 그는 이날도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아버지들의 영혼을 옮겨 달라는 소송(‘No합사’ 소송)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유족들이 재판 출석을 위해 도쿄를 찾은 기회를 활용해 일본 의원들을 상대로 한 청원운동을 기획했다. 그는 지난 8~9일 이틀간의 활동을 위해 거주지인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해 여러 준비를 해왔다.


태평양전쟁 해외 전몰자 유골 수습

방치해온 일본 정부 ‘DNA 추출’ 전환

새해부터 데이터베이스로 유족 확인

유골만으로 국적 구분 못해 모두 추출

조선인도 유족 유전자 대조로 ‘가능’

“한국 정부가 먼저 요구해 협상해야”


일본에선 지금 ‘해외 전몰자 유골 반환’ 문제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정책 변화가 이뤄지는 중이다. 일본은 전후 70년 동안 국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침략전쟁에 동원돼 숨진 수백만명의 유골을 찾아 유족들에게 반환하는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있었다. 유골 근처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품’ 등이 나올 때만 유족 확인의 실마리가 되는 디엔에이(DNA) 검사를 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1999년부터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옛소련 등 일본이 침략했던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2만8000여구의 유골이 확인됐지만, 가족을 찾은 유골은 단 11구에 불과했다. 당연히 국가의 책임 방기라는 사회적 비판이 이어져 왔다.


우에다가 한국인 유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90년대 중반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유족들의 사죄·보상 소송에 참여하면서 친분을 쌓게 된 유족 남영주(76)씨로부터 “아버지가 숨진 파푸아뉴기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부탁을 받은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우에다는 2012년 남씨 등 한국인 유족들과 함께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했다. 그가 현장에서 목도한 것은 섬 곳곳에 방치돼 있는 옛 일본군의 유골이었다. 그는 “처음엔 위령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현지에서 옛 일본군들의 유골을 보고 이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국민의 유골 문제에 대해서도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인만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에다는 “지난 5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쿠 신쿤(백진훈, 민주당) 참의원 등이 일본 국회에서 유골 반환 문제를 집중 추궁한 것을 계기로 일본 정부의 태도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후생노동상은 이후 앞으로 발굴되는 모든 유골의 디엔에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유골 발견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던 부대의 유족을 찾아내 디엔에이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 이런 내용을 담은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에 관한 법률안’이 만들어져 중의원을 통과했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새해 1월 열리는 정기국회 때 참의원 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 유족들이다. 법안의 큰 문제는 ‘전몰자 유골 수집’의 대상을 “일본 본토 또는 그 외 지역에서 사망한 ‘우리나라(일본) 전몰자’의 유골”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에다는 “‘우리나라의 전몰자’라는 표현은 사실상 일본인 이외의 한국인이나 대만인 등을 제외하기 위한 ‘국적 조항’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후생노동성 사회원호국은 10월9일 한반도 출신 유골들의 처리 방안을 묻는 유족들의 질의에 대한 회신에서 “유류품 등에 의해 조선반도 출신자라고 생각되는 유골이 있을 땐 이를 수용하지 않고 현지 정부기관에 통보한 뒤 적절히 처리할 것”이라고 회신했다. 한국인들의 유골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발굴이 되어도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70여년 만에 발굴된 유골은 한국인-일본인의 구별이 불가능해, 일단 전체 유골을 수집해 디엔에이를 추출한 뒤 한국인 유족들의 디엔에이와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우에다가 정작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그는 “이 문제는 한국 정부가 나서 일본 정부에 유골의 공평한 처리를 요구하면 금방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한국 정부는 유골의 디엔에이 감정 문제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삼가고 있다. 그는 “한-일 양국이 협의해 한국인 유족들의 디엔에이를 추출해 일본 정부가 현지에서 발굴한 유골과 대조해볼 수 있도록 하면 끝나는 일이다. 예산 등 자세한 얘기는 양국이 협상을 통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지 않는데, 일본 정부가 먼저 나서 움직이겠습니까?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나이 드신 유족들이 고생을 하고 있네요.”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2015-12-16>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 정부가 나서면 되는데 왜 유족들이 고생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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