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실록·조선총독부 관보·지역신문·향토사지 등 참고
日 황실서 훈장 수훈 기록 불구 친일인명사전 등재 안돼
동경대 유학·조선총독부 차관 역임 소문 사실 아냐
이달 중 발간 ‘울산지역문화연구’ 제3호에 논문 수록
▲ 박중훈씨 |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친 송태관이 경제식민화에 앞장서는 친일활동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의사의 증손인 박중훈(59)씨는 논문을 통해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친 송태관의 친일행적을 밝혔다.
송태관은 학계나 울산지역에 ‘김홍조 집에서 심부름을 하다 김홍조의 후원으로 1899년 일본으로 유학’, ‘일제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관’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친일활동과 관련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일본 황실로부터 훈3등 욱일장을 받은 사실이 적시돼 있지만, 친일파로는 결정하지 않았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한 「친일파인명사전」에도 친일파로 등재되지 않았다.
박중훈씨는 오래전부터 근대인물의 친일행각에 대해 조사연구를 해왔으며, 울산과 관련한 근대인물의 친일활동 연구조사는 정인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울산문화원연합회가 이달 중으로 발간하는 「울산지역문화연구」 제3호에 실릴 ‘송태관(宋台觀)의 삶과 활동’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송태관의 친일행적의 가장 큰 근거로 당시 재정고문이었던 메가타와의 깊은 관계에 주목했다.
박씨는 “대한제국의 재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장악한 이토 히로부미가 메가타를 추천했고, 메가타가 송태관을 등용했으니,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 수직으로 연결된 직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송태관은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를 4년여에 걸쳐 6번이나 만났다”면서 “일반 군수도 조선 총독을 1년에 한 번이상은 못 만나던 때였다. 송태관은 메가타와 이토 히로부미의 수족 노릇을 한 끝에 벼락출세를 하면서 일제가 우리나라를 정치적으로 국권을 침탈하기 이전에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데 첨병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 송태관의 별장 또는 재실로 알려진 울산 울주군 상북면 양등마을에 있는 건물. 마치 왜성을 연상시킨다. |
박씨는 송태관의 친일 행적을 밝히기 위해 송태관의 토지와 관련한 관찬기록, 경남은행, 부산일보 등 송태관의 경영활동 자료, 왕조실록과 대한제국과 조선총독부의 관보 등과 지역에서 발행된 신문과 향토사지를 참고했다. 인터넷 자료는 역사학자 개인 블로그나 학회 운영 블로그를 살폈다.
이를 통해 박 씨는 송태관이 유학한 학교는 ‘동경대’가 아닌 ‘동경상업고등학교’라는 사실과 ‘조선총독부 협판(協辦, 현 차관급)을 지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그는 “송태관은 탁지부(재정부)에 근무하면서 메가타의 행동대장으로서 제일선에서 경제 식민화에 앞장서, 우리나라 경제를 골병들인 원흉이다”면서 “그의 친일행위는 대한제국기에 정치적인 친일보다는 경제적인 친일에 가담했기에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내용 면에서는 결코 가벼운 친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에 앞서 지역사에 관심을 가진 학자적인 입장에서 ‘역사 바로 알기’의 일환으로 울산에서 이미 발표된 글에서 문제점을 인식해 친일파들의 행적을 연구, 조사를 했다”면서 “개인을 흠집 내려는 의도는 아닌 만큼 친일파 관련 조사를 학문적 활동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2016-01-05> 울산매일
☞기사원문: 박상진 의사 증손 박중훈씨 “송석하 부친 송태관 친일활동” “이토 히로부미·메가타 수족 노릇…경제식민지화 앞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