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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억지, 탐욕과 광기, 그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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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2016년부터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를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함께 발행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3월 창간되었으며 2015년 겨울호까지 통권 61호가 나왔습니다. 그간 『내일을 여는 역사』는 대중 역사 잡지를 표방하며 유익한 내용으로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생각만큼 널리 읽히지는 못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내일을 여는 역사』를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하면서 연구소의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시민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기존의 『역사와 책임』은 반년간 근현대 과거사청산 전문학술지로 계속 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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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보내며 무지와 억지가 난무하고, 탐욕과 광기가 온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본다. 사실을 거짓이라 하고, 정상을 비정상이라 하고, 불법을 합법이라 하고, 분열을 통합이라고 강변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있었던 저급한 정치가 21세기 10대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온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가 문제라고 억지를 부린다. 역사 교과서 어디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대통령이 무당이 아닐진데, 이것은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무지를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비정상’이 된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교육부장관과 국사편찬위원장 그리고 여당 대표는 하루아침에 소신을 바꾸어 국정화의 총대를 멨다. 이처럼 무지와 광기가 배타적으로 정치를 지배한 일은 조선 왕조 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그들은 역사학자의 90%, 현행 역사 교과서의 99.9%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지지하는 국민이 극소수라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으니,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내란음모에 버금가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고력이 있는 국민이라면 어떻게 국정화에 찬성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이처럼 국민의 분열을 조장하고도 국민 통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역사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걸까? 혹시 이것은 현재 한국 경제의 난맥상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한국 경제는 어렵다. 경제학자 가운데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가 이미 1930년대 세계경제공황과 유사한 공황 상태에 들어갔다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 자본주의가 경제공황과 유사한 위기에 처하자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에서 수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터무니없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수출 주도 불균형 성장전략은 20세기의 유물이 되었다. 그러한 낡은 경제정책으로는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현재 한국경제의 난맥상은 12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700조가 넘는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부자 감세와 고환율로 재벌들에게 이익을 몰아주어 조성된 것이 700조가 넘는 막대한 규모의 사내유보금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을 투자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의 현 집권세력은 수출과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성장률이 떨어지자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자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노동개혁’이다. 한국경제가 나빠진 데에는 정부와 재벌 대기업 경영진의 책임은 없는가? 그런데도 이들 가운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서 문제고, 비정규직을 더 유연하게 해고하지 못해서 기업을 못하겠단다. 그들은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무지와 억지의 전형이고 극소수 특권 세력의 탐욕과 광기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취하는 경제정책이나 노동‘개악’이 철지난 20세기식 수출과 성장 신화를 재현하려는 무지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복지정책을 공약했던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이제 21세기 한국 자본주의는 20세기식 수출과 성장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전국민적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면서 복지정책을 공약하고 당선된 현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공약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다시 소수 독점 대기업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법안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맥락이 존재한다. 수출 주도의 불균형 성장 전략은 박정희 정권에서 추진한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단순히 비명에 간 자기 부친의 업적을 선양한다는 효도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박정희처럼 재벌 중심의 수출 주도 불균형 성장 전략을 경제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서 극소수 특권 세력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장해 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 정책은 이명박 정권에서 이미 실패하였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부자 감세와 고환율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 위주 성장 전략은 성공하여 수출은 획기적으로 증가되었지만 고용은 오히려 감소하고,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만 증가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입증된 것이다. 이로 인해 소득 양극화는 심화되고, 청년 실업은 폭발적으로 증가되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널리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좋아보였던 한국 경제는 다시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오직하면 IMF와 OECD 같은 국제기구조차 한국 정부에 ‘내수 창출’을 주문하였겠는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정책이 화두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것은 20세기적인 성장 전략으로부터 21세기적인 성장 전략으로 경제를 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국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과학적 인식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수출마저도 감소하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현 정권은 복지정책에 대해서 좌편향이니, 포퓰리즘이니, 퍼주기니 하면서 선전을 강화하고 여론 조작에 골몰하고 있다. 복지정책은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나온 것인데 이것을 좌편향,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 개념에 대한 이해조차 결여한 무지가 아닐 수 없다. 복지정책을 퍼주기라고 하는 것은 경제 순환에 대한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억지 주장이다.


‘복지 정책을 통한 내수 창출’이야말로 작금의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국내외의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현 정권과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낡은 주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였다. 여기에는 한국 경제와 국가의 미래는 어찌 되든 소수 특권 세력의 이익만 확보하면 된다는 단순 논리가 깔려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박정희식 수출 주도 성장 전략으로는 이제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없게 된 21세기의 변화된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적 독선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국정화 반대 세력을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몰아가고 있으니, 무지와 억지가 이제 그 정도를 넘어서 탐욕에 가득찬 광기로 전환되기에 이른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2015년의 이러한 참담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내일을 여는 역사』 이번호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한국 경제의 현실과 함께 점검해 보려 하였다. ‘시론’에서는 한국사를 전공한 교수와 일선 학교에서 직접 역사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의 시각에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현대사 전공 교수인 정용욱은 기존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인식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정치 민주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던 ‘역사바로세우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고 보았다. 중학교 역사 교사인 김태우는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과목을 다시 암기 과목으로 전락시켜 역사교육을 퇴행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특집’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경제 문제를 점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 하였다. 강수돌은 20세기 성장 담론의 문제점을 짚고, 자본의 관점을 버리고 사람의 관점을 회복해야 전쟁을 막고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노광표는 작금에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5대 노동법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들의 주장이 왜곡된 통계와 잘못된 논리에 기초한 것임을 보인 뒤, 진정한 노동개혁은 대기업의 고통분담과 솔선수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승일은 우리나라 전체 세대에서 45%를 차지하는 세입자들과 대학생 및 청년들의 주거 실태를 점검하고, 이러한 어려운 주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토지 임대부 주택 공급을 그 대안으로서 실증적으로 검토하면서 주택복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태수는 노인 문제를 진단하고 다양한 연금제도의 실태를 살펴본 뒤 진정한 연금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여러 필자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한국 경제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는 복지 정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시론’과 ‘특집’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 그 경제적 배경에 대한 분석과 대안 모색이라고 한다면 ‘예술과 현실의 소통’과 ‘역사마당’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전개된 시민운동을 살폈다. 김진령은 최근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설립 열기를 전하고 그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하였고, 김승은은 유네스코를 무대로 전개된 일제 전범기업 시설의 세계유산 지정 책동 현황을 고발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치다 마사토시는 안보법제를 둘러싼 일본 시민운동의 전개 양상과 향후 전망을 정리하였고, 이나바 마이는 일본에서 전개된 야스쿠니 관련 시민운동과 이에 참여한 홍성담의 연작 미술전을 소개하였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책동의 뿌리를 제거하려면 바로 이러한 활동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필자들은 보여주었다.

‘역사 확대경’ 코너에서는 우리 역사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여 역사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켜 보고자 하였다. 문경호는 충청도 마도 해협에서 출토된 해저 유물선 발굴 현황을 보고하였고, 정애영은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인 낭인들의 활동 양상과 조직 형태 및 그들의 실천을 뒷받침한 사상에 대해 소개하였다. 김보영은 정전 상태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평화 협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색하였다.

각종 연재 코너 또한 변함없이 우리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해준다. ‘예인 열전’코너에서 최열은 그간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윤색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삶을 사실에 입각하여 재인식하려 하였다. ‘조선의 사상가 열전’ 코너에서 김용흠은 17세기 윤선거(尹宣擧)라는, 독자들에게 낯선 인물을 들고 나와 17세기 북벌론과 18세기 탕평론의 연관성을 드러내어 당쟁망국론의 문제점을 보여주려 하였다. ‘역사를 만든 여성’ 코너에서 이숙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여성 실학자 이사주당(李師朱堂)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19세기 여성 실학자의 존재 형태를 탐색하려 하였다. ‘역사마당’ 코너에서 정요근은 거제도를 답사하고 조선시기 거제현 관아 관련 유적과 한국전쟁 이후의 포로수용소 등을 살피면서 시기마다 중심지가 이동한 것을 드러내고 그 역사적 의미를 음미하고자 하였다. 이들 다양한 연재 코너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현재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이기도 하다.

2015년 한 해 동안 현 집권세력이 보여준 무지와 억지, 탐욕과 광기는 이제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면서 추진하는 정책은 결국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서 이 정권의 속셈을 꿰뚫어 보는 국민들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은 파국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 정권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내일을 여는 역사』는 이처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짓과 위선, 탐욕과 광기를 제거하는 일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2015년 12월
편집위원장 김용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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