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14일만인 지난해 6월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시퇴의사를 밝히고 인사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이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검찰이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67)의 친일 발언 의혹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당한 KBS 기자를 1년5개월만에 무혐의 처분했다. 문씨는 지난해 6월 첫 기자 출신 총리 후보로 ‘깜작 발탁’됐다가 14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문씨의 낙마는 안대희 전 대법관에 연이은 총리 후보의 중도 하차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까지 포함하면 3번째여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질질 끌다 17개월만에 무혐의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송강 부장검사)는 지난해 6월11일 KBS <9시 뉴스>에서 문씨의 교회 강연 내용을 왜곡·보도한 혐의(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로 피소당한 홍성희 기자를 무혐의 처분했다고 29일 밝혔다. 홍 기자는 뉴스에서 총리 자질 논란을 보도하면서 ‘일본지배 하나님 뜻 발언 파문’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라는 제목으로 문씨의 발언 장면을 방송했다.
당시 문씨가 중앙일보 재직 중 쓴 강경 보수칼럼에 이어 친일 발언 의혹이 새롭게 불거지면서 자격 시비가 정점에 달했다. 문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론이 돌아서지 않자 지난해 6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문씨는 ‘친정격’인 언론에 대해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인데 발언 몇 구절을 따내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8일 한 보수단체는 홍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 내용은 강연 중 일부 내용만 발췌해 보도함으로써 문씨가 친일 사관을 가진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홍 기자뿐 아니라 KBS 보도국 간부까지 순차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종국 처분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17개월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성립이 안되는 사건”이라면서도 “일반 형사사건 보다 약간 오래 걸렸다고 볼 수 있지만 통상적인 사건처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사책 출간으로 명예회복 나선 문창극
문씨는 지난 2월 <문창극의 역사 읽기-그들이 꿈구던 나라>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나는 개인적으로 시련을 겪었다. (중략) 그 사건의 밑바탕에는 잘못된 국가관과 역사관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고치지 않고는 이 나라의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 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승만·안중근·김구·안창호·윤치호 등 건국 주역들, 6·25 전쟁, 4·19, 5·16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루고 있다.
이 중 논란이 된 대목은 ‘혁명가 박정희’라는 제목을 단 책의 마지막장이다. “만일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 나라가 지금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가? 이 나라를 구 정치인들이 집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감히 말하건대 필리핀 수준의 나라도 못되지 않았을까? 혹시 베트남전 이후 공산화되지는 않았을까? 박정희로 인해 민주주의는 일보 후퇴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경제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 경제적 기적을 위해서 민주주의의 일보 후퇴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던가?”
문씨는 “그는 혁명가였다”고 밝힌 김종필 전 총리의 말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했다. 문씨는 대학 시절 민주주의의 잣대만 앞세워 박 전 대통령을 적대시했던 과거의 자신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또 “그 시절 박정희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를 이끌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보훈처 독립유공자 손자 ‘뒷북’ 확인
앞서 국가보훈처는 문씨에 대한 심사 착수 1년4개월 만에 “독립유공자의 손자가 맞다”고 확정지었다. 보훈처는 지난해 6월 문씨에 대한 사퇴 여론이 거세지자 뜬금없이 ‘문 후보자의 조부는 독립유공자’라는 주장을 외부에 공개해 빈축을 샀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섣부르게 공표했던 보훈처가 16개월간 공조직을 동원해 문씨의 ‘조부찾기’에 나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보훈처는 지난 9월30일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과 문씨의 조부가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족보·회고록·제적등본 및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친 결과 ‘유족에 해당한다’고 의결했다. 지난 3월 보훈처는 독립운동 학자와 족보 전문가들을 불러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자문회의에서는 “문남규 선생이 소속돼 활동했던 대한독립단 자료와 문씨 조부의 원적지인 평북 삭주 기독교 독립운동 자료의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급기야 보훈처는 1870~1956년, 1995년 이후 간행된 남평 문씨 족보 257권과 1904~1998년 만들어진 처갓집(신안 주씨) 족보 108권을 전수 조사했다. 문남규 선생의 사위 김길순 목사와 관련된 풍기 김씨 족보 1권, 김길순 목사 회고록과 제적등본까지 검토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주변에 “대한민국에 있는 문씨 족보를 전부 다 뒤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교형·백철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2015-12-29>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