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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역사의 현장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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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 뜻 가슴에 새겨…의열단·조선의용대 발자취 따라


지난 7~12일 (사)석정 윤세주(1901~1942) 열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밀양지역 고등학교 14명, 14~19일 의열단 약산 김원봉(1898~1958) 장군 장학회 주관으로 전국 대학생영화감독·도예가·전통음악가 등 여러분들과 중국을 다녀왔다. <암살> 영화로 더욱 관심이 더해진 의열단과 조선의용대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역사의 현장을 2차에 걸쳐 다녀왔다.


밀양전자고등학교 최필숙 선생님과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홍보실장님이 현장 곳곳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북경~석가장~호가장~황북평촌~한단~섭현~십자령~장자령~흑룡동~마전~운두저촌~오지산~남장촌~중원촌~석문촌~진기로예열사능원~북경시내 이원대 이육사 순국지 참배~만리장성~자금성~왕부정거리~팔보산 애국열사능원의 정율성·정설송 열사 참배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 단장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하신 약산, 그의 고향 후배 동지인 석정과 이름 없이 중국 땅에서 일제와 싸우다 돌아가신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직접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진기로예열사능원은 산서성·하북성·산동성·하남성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팔로군 유격전적지에서 항일투쟁을 하다 숨진 열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의 국립묘지 급이다. 이곳에 1942년 5월 ‘반소탕전’ 당시 태항산에서 전사한 조선의용대 윤세주와 진광화(원명 김창화·평양출신)의 묘가 있다.


석정은 1982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으며 천안 독립기념관 어록비공원에 탄생 110주년을 맞아 2011년 6월24일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와서 김구와 정율성(1914∼1976)을 한중우호 인물로 이야기했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2기로 졸업하고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하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였다.


겨울철에는 길이 험하여 갈 수 없는 십자령(1200m)에도 무사히 갈 수 있어 더욱더 뜻있는 기행이었다. 태항산(太行山)은 아름다우면서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런 험한 태항산에서 일본군은 비행기 6대와 4만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마전의 팔로군 사령부를 공격하는데 그 일본군을 이끈 사람이 바로 한국인 홍사익이었다. 이는 팔로군에 대한 소탕전(참빗작전)이었다. 이에 맞선 전투가 반소탕전이다. 대규모 병력에 밀린 팔로군은 후퇴를 하게 된다. 태항산의 십자령 지역에서 고전할 때 퇴로를 뚫고 팔로군을 안전하게 후퇴시킬 수 있게 역할 한 것이 조선의용대였다. 이 전투에서 중국 부참모장이었던 좌권 장군이 전사한다. 이 전투에서 진광화는 총탄을 맞고 바로 목숨을 잃었고 윤세주는 다리의 총상으로 과다 출혈을 겪으며 며칠간을 홀로 산중에서 버티다 흑룡동 굴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이번 제사에 옥재 선생님께서 차를 올리고, 무형문화재 45호이신 박용섭 선생님이 대금 연주를 하며 한국에서 가지고간 제물로 엄숙히 영혼을 달랬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친일청산, 청산친일” 구호를 외쳤고 윤세주 열사가 지은 ‘최후의 결전’과 ‘밀양아리랑’을 목청 높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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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장군이 국가에서 인정하는 훈장을 받고 조국통일이 되는 날 약산, 석정열사, 무명용사의 영혼이 조국의 가슴에 나란히 묻히는 그날까지 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동참하기를 가슴에 새기는 뜻있는 역사기행이었다.


김수곤 밀양동명고 교사 <a href="mailto:webmaster@idomin.com


<2016-01-26>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기고]<암살>영화 역사의 현장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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