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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자 19면 팔면경 `아버지와 아들` 중 박헌영의 아들이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2016-01-27> 경북매일

☞기사원문: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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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매일: 아버지와 아들



1940년대는 소련 공산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한반도에도 `사회주의 실천가`들이 설쳤는데, `남한 담당 총책`이 박헌영(朴憲永)이었다. 그는 점쟁이나 벽돌공으로 위장해 노동현장을 다니면서 `남조선 노동당`을 조직했다. 1941년 그는 청주에서 한 처녀의 몸에서 아들 박병삼을 얻었다. 그 후 6·25가 터지고, 인천상륙작전 후 박헌영은 10살 된 아들과 같이 지리산에 숨어 들었다.


그는 얼마후 월북하면서 아들을 한 스님에게 맡겼고, 아들은 절간으로 흘러다니며 불경공부를 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는 친구의 이름으로 해군 특수부대에 지원 입대해 3년 복무를 마친 후 스님이 됐고, 현재 조계종 원로 의원으로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원수는 갚지 말고, 은혜는 반드시 갚아라”란 좌우명을 써붙이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박헌영은 1956년 `미제국주의와 내통한 간첩죄`를 쓰고 처형됐다.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아버지의 얼굴을 못 봤다. 아버지 정원모는 아들이 태어날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본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사회주의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해방이 될 무렵 그는 서울에 오지 않고 북으로 가버렸다. 당시 아들 정진석은 서울공대 화공과 학생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에 건너간 후 소식이 없다”고만 했다. 아버지는 북으로 가 공업성 부상(상공부 차관)을 지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통해 길을 찾으려 한 아버지가 안타깝다”고 했다.


1988년 8월 밀입북해서 김일성을 만나 공작금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10년 복역한 서경원(79) 전 의원의 아들 서명훈(39)씨는 새누리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아빠 휴직운동 본부` 대표다.


아버지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아들도 있지만, 부모에게 맞아 죽는 자식들이 많은 현실이 한심하다.


/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1-25> 경북매일

☞기사원문: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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