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2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비밀의 탄생

“일상 속에 위치한
죽음의 현장들

저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요한 연구 분야는 한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사 청산 및 유해 발굴에 관한 것입니다. 몇 년 전 영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에게 경산 코발트 광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1950년 7월부터 9월 사이, 한국 국군과 정보부대, 경찰에 의해 민간인 약 3,500여 명(추정인원)이 학살당한 사건으로서, 2009년 대한민국의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사건의 실체가 일부 규명된 바 있으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유해 발굴이 실시되어 약 500여 구의 유해가 수습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산 코발트 광산에는 아직까지 1,500구 이상의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수업시간 중에 그 어떤 학생도 코발트 광산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제게 관심 있는 사안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영남대학교와 경산 코발트 광산의 위치는 자동차로 10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몇 년 전 유해 발굴을 할 때 지역 언론이나 신문에 제법 큰 기사들이 났던 것을 감안해 볼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은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07년 코발트광산 유해발굴 현장설명회 당시 발굴된 유해를 바라보고 있는 유족들

▲ 2007년 충북 청원 분터골 유해 발굴 현장. 충북 청원 분터골은 2007년 당시 진실화해위원회의 사전조사 유해 매장 추정지 154개소에 속해 있었다.

▲ 2007년 충북 청원군 분터골 유해발굴 현장. 발굴 결과, 손이 뒤로 묶인 채 결박되어 학살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대구광역시로부터 불과 3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경산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중심부에 무려 1,500여 구의 시체가 가득 차있는 광산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코발트 광산 바로 옆으로는 현재 거대한 골프장이 들어서 많은 이들의 오락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은 비단 경산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처형된 장소는 아직까지도 60년 전의 처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반인륜적 상황이 대한민국 내부에서 현재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비밀의 탄생’

많은 사람들은 한국전쟁 당시에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당시 무려 백만 명의 민간인이 처형당했을 것이라고도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렇듯 학살이 진행된 이후의 상황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민간인 학살 이후 학살지와 피학살자들의 시체가 어떻게 관리되었는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1950년 당시 민간인 학살 이후, 대부분의 학살지에는 군인과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펼쳐 어떤 누구도 학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당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학살된 사람들은 죽은 이의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학살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살지를 모르거나 삼엄한 감시로 인해 학살지 근처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설령 학살 현장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여름(1950년 6월과 7월)의 높은 기온 때문에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버린 시체들만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0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피학살자 시체 수습 및 학살지 정보 유포를 극도록 차단했으며, 이러한 정보 차단 효과는 한국전쟁 이후 더욱 강화된 남한 사회의 반공주의로 인해 무려 60여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전쟁 때 만들어진 ‘비밀’이 60여 년을 계속해서 지켜진 것입니다.

▲ 단양 곡계굴 유해 매장지의 모습.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단양 곡계굴 매장추정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현재 내부에 유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유해 매장 추정지 조사,

그러나..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전국에 분포해 있는 유해 매장 추정지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60여 년 동안 비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정보를 온 세상에 밝히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위원회는 전국을 대상으로 154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를 직접 현지조사한 결과, 이 중 46개소 유해 매장지의 발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54개소 중 46개밖에 유해 발굴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매장지 내부의 유해가 손실되거나 지형이 변화하여 발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조사에서는 약 108개 유해매장지의 발굴이 지형변화 및 건물·도로 신축 등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또 다른 사실이 발견된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혀 사전에 조사되지 않았던 14개의 새로운 매장지가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60여 년 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이러한 매장지의 규모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사전 조사하였던 154개 수준이 아니라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건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 반드시 사전에 행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문화재의 존재 여부입니다. 만약 건축 예정지에 문화재가 있다면, 건축주는 반드시 문화재 발굴을 실시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한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렇듯 문화재 보존을 위한 법률의 집행마저도 엄격하게 실행되는데, 만약 발굴의 대상이 사람의 유해라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물어보더라도 동일한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종료될 시점, 민간인 학살 조사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전국의 유해 매장 추정지는 더욱 늘어났으며,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종료 직전 약 30여 곳의 추가 유해매장 추정지가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추가된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후속 조사는 계속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2010년 12월 31일, 진실화해위원회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 2009년 순천시 황전면의 제보에 의해 긴급 발굴된 유해. 2009년 순천시 황전면은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가 존재함을 진실화해위원회에 신고하였고, 이에 긴급발굴이 진행되었다. 사진은 발굴된 유해의 두개골 모습.

▲ 2009년 발굴된 충남 공주시 상왕동 유해 매장지 발굴 전경. 충남 공주시 상왕동 매장지에서는 약 5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2016년 충남 홍성군

광천면 담산리 폐광

유해 발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014년부터 매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해 매장 추정지를 발굴해 오고 있습니다. 2016년의 발굴 예정지는 충남 홍성군 광천면 담산리에 있는 폐광입니다. 이 홍성군 광천면 유해 매장지는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사전조사 대상지 154개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매장지입니다.

이처럼 전국에는 많은 유해 매장 추정지가 존재하고 있으나, 진실화해위원회 등의 공식적 활동이 중단되다 보니 체계적인 후속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유해 매장지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OECD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섰다고 하는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 중심부에 1,000구가 넘는 억울한 죽음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이 국가를 누가 제대로 정신이 박힌 국가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중요하게 여기며 ‘국격’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외면하고 있는 국가에게 요구합니다.

국가는 분단의 비극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매장 추정지에 대한 추가 조사와 발굴을 하루빨리 실시해야만 합니다.

글 | 노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