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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신적자’들이 떨었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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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배포저지 대소동


▲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포하려 하자 교육부가 12일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나섰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대한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나서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014년 말 서울시 의회는 2015년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기로 하고 예산 1억8천만 원을 책정했다. 이미 사전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를 제외한 583개 중.고교가 배포 대상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까지 동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예산이 1년 넘게 집행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세력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해를 넘겨 예산이 불용처리될 지경에 이르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일 어렵사리 구입 예산 교부에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 알려지자 먼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 학부모단체들이 ‘정치 사전’ 운운하며 배포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 수구언론들이 일제히 강제배포라고 부당성을 지적하며 거들었다. 11일에는 급기야 자율교육학부모연대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단체가 서울행정법원에 예산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정해진 수순이었을까? 교육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12일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절차를 문제 삼으며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있다.


배포를 반대하는 논리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친일인명사전』의 정치적 편향성이다. 둘째,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다. 셋째,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시각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친일인명사전』이야말로 객관성과 엄정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친일인명사전』은 철저하게 전거에 입각해 서술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박정희 장지연 장우성 엄상섭 홍순일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한결같이 원고패소로 판결한 것도 『친일인명사전』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객관성과 엄밀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친일인명사전』에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밀접한 이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로 『친일인명사전』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 임문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스승 백철을 비롯해 다수 지도위원 운영위원들의 선대와 스승들이 등재되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의심하는 자체가 터무니없는 시비에 지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연구소를 종북좌경으로 음해하는 자들의 주장과 달리 월북인사를 포함한 북한 정권의 고위급도 다수 이름이 올랐다. 야권의 정치인들에게 관대했다는 비난도 억설일 뿐이다. 신기남 의원의 선친 신상묵, 홍영표 의원의 조부 홍종철 등이 이를 반증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야권의 정치인들은 선대를 대신해 과오를 깊이 반성한 데 비해, 여권의 정치인들은 친일행적에 대한 부정을 넘어 애국자로 둔갑시킨다는 점이다.


『친일인명사전』보유편과 개정판에는 초판에서 자료의 한계로 인해 일시적으로 보류하였던 지방과 해외의 반민족행위자가 다수 추가될 예정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오랜 논의를 거쳐 확정한 선정기준에 부합한다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친일인명사전』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사례와 증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 2009년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왼쪽부터)이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했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 발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공신력이 없는 일개 민간단체라는 폄하도 설득력이 없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각 분야의 근현대사 전공교수와 전문가 180여명이 참여한 학계를 망라한 조직이며, 이를 뒷받침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최대의 근대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권위있는 연구기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신력은 정부부처나 사법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심지어 검찰조차 연구소에 인물정보 조회를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사업 재검증, 국가보훈처의 서훈 심사대상자에 대한 친일행적 조회, 문화관광부의 ‘이달의 문화인물’ 검증, 여성가족부의 ‘한국 최초의 여성인물’ 검증 등 그 예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거꾸로 말하자면 정부는 수천 건에 이르는 인물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조회했다는 것이 아닌가. 국가보훈처가 2011년 4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한 엄청난 결정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친일인명사전』 배포가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교육부의 주장도 가소롭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각급학교에 대한 도서 배포 등 여러 차례 특정 이익단체를 지원한 전례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무한 배려를 생각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 또 각종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는 모양인데 교육부가 언제부터 현장의 자율권을 그다지도 존중했는지 되묻고 싶다. 그렇게 자율권을 존중한다면 자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제나 걷어치우기 바란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창립25주년기념 특별좌담회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의 의의를 이렇게 비유했다.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했다(맹자 등문공 하)는 말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고 나니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친일청산’을 한사코 반대하며 난신적자의 길을 굳이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역사란 불편한 진실도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필자소개>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를 진행했다. 친일문제와 한일관계 등 근현대 과거사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법정에 선 역사정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 「74년 조직(세칭 ‘인혁재건위’)사건의 운동사적 의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의 의미와 쟁점」 등의 글이 있고, 『일제협력단체사전』,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 경희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2016-02-16> 통일뉴스

☞기사원문: ‘난신적자’들이 떨었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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