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임헌영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의 정치 편향성을 거론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편가르기”라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둘러싸고 마찰음이 일고 있다. 이번에는 교육부가 배포 절차를 문제 삼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 지역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할 계획인 서울시교육청에 규정 등을 지켰는지를 오는 29일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일부 보수단체도 배포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75·사진)을 지난 1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문학평론가인 임 소장은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옥고를 겪기도 했다.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아 친일청산 등 사회 의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친일인명사전> 배포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 “도대체 어느 나라 교육부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배포를 막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라면 국가 정체성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국권이 침탈당한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국가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국가라면 공공기관·교육기관·도서관 등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도록 권고하고 구입 예산을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오히려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배포는 2014년 서울시의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한 사안이다.
하지만 일선 학교 배포를 앞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자율교육학부모연대 등 보수단체에서 ‘정치편향·국론 분열’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 문제가 남남갈등의 한 축이 된 것이다.
임 소장은 “민족반역자들을 옹호하는 것이 애국이냐”면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 애국을 내세운 단체들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애국’을 표방한 단체들은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그룹을 종북·좌빨로 규정한다”면서 “북한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상대를 방어하는 것을 국가안보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7년 전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각계 인사 4389명의 친일 행각을 담았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내부의 부끄러운 역사를 고백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대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발간 의미를 밝혔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은 광복 70년 동안 한국 인문학이 이룩한 학술적 업적”이라며 “친일파 처벌이 아닌 역사적 사실 규명의 문제이자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문제”라고 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의 유족과 보수단체들이 ‘발행 또는 게재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에도 재판부는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닌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임 소장은 “친일파 청산을 보수·진보 등 이념의 문제가 아닌 필수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안하는 것은 우리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한 것은 전쟁 후 유럽의 모든 나라가 친나치를 청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국가 주도세력이 됐지요.”
임 소장은 “성숙한 국가로 거듭나려면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와 국가관을 심어 줘야 한다”며 “교육부가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막는다면 교육 자치를 허무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자유에 대한 통제”라고 말했다.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2016-02-22>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