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애국가로 발표된 동방의 용사(새로 발굴된 박시춘 작곡·편곡의 군국가요) |
고장의 유명 인물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은 지역 주민으로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바이다. 그 인물의 유명세가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거나 관광 수익을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이미 많은 지역에서 그 고장 출신 인물을 문화 상징으로 띄우거나 관광 상품으로 가공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욕심이 지나쳐 없는 일을 꾸며 만드는 경우도 있고, 남들은 저렇게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판인데 우리는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조바심을 내는 경우도 있다. 너그럽게 보자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욕심과 조바심에도 정도가 있는 법. 지나치면 그것이 도리어 화를 부르고 만다. 해당 지역이나 인물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려 부정적인 인상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 달여 동안 4회에 걸쳐 연재된 글 「박시춘을 일으키자」에서 주장한 바는 안타깝게도 바로 그런 그릇된 욕심과 조바심이 드러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박시춘을 일으키려면 우선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서 어떻게 일으킬지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주장을 펴야 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박시춘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올해로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한국 대중가요의 전반 50년은 특히 박시춘 없이는 제대로 살필 수조차 없다. 2014년 ‘한국 대중가요 고전 33선’ 전시에서 약 1/4인 여덟 곡이 그의 작품이었던 것도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박시춘이 만든 수많은 곡조들은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정말 거울과도 같이 우리 근현대 역사의 구석구석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석들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암울한 역사인 동시에 박시춘의 암울한 역사이기도 한 군국가요이다. 박시춘을 제대로 일으키려면 그의 삶과 노래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의 삶과 노래를 제대로 알려면 그가 만든 군국가요도 제대로 살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은 누군가를 매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살생부’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친일적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의 실상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았으므로 생산적인 논란에 필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최종적인 판단 이전에 우선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명부라기보다는 오히려 섣부른 단정을 경계하며 객관적인 내용을 충실히 모아 정리한 자료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박시춘에 대한 기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인지를 충분히 드러내면서 아울러 그가 만든 군국가요에 관해서도 상세히 소개를 했다. 그러나, 아마도 조바심 때문에 사전을 제대로 읽지 않아 그랬겠지만, 「박시춘을 일으키자」에서 주장한 사전의 박시춘 항목 내용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목단강 편지>를 군국가요로 수록했다 주장했으나 사전에서는 <목단강 편지>를 군국가요라 하지 않았다. 관점에 따라 군국가요로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표현의 애매함이 있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군국가요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박시춘이 만든 군국가요가 ‘겨우’ 네 곡이라 주장했으나, 사전에서는 <목단강 편지>를 제외하고도 모두 열 세 곡의 박시춘 작 군국가요를 소개했다. 당시 군국가요를 만든 작곡가들 중 확인된 작품이 가장 많은 이가 박시춘인 것이 사실이므로 ‘겨우’라는 표현이 타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9년에 정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낸 최종 보고서에 대중음악 작곡가 중 유일하게 박시춘의 이름이 오른 것도(본명 박순동으로 등재) 그러한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전 편찬 이후 6년여가 지나면서 새로운 자료가 또 많이 발굴되었으므로 박시춘이 만든 군국가요도 그만큼 더 많이 확인되어 있기도 하다.(<사진 1> 참조: 새로 발굴된 박시춘 작곡·편곡의 군국가요, ‘愛國歌로 발표된 東方의 勇士’)
「박시춘을 일으키자」에서는 박시춘을 친일로 몰기 위해 사전이 의도적으로 편파적인 해설을 한 것처럼 주장했지만, 사실 그와 달리 사전에 기술된 내용은 박시춘의 작품에 가해진 부당한 왜곡과 비난을 오히려 수용하지 않았다.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식에서 연주되어 예상치 못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박시춘의 곡 <감격시대>는 친일이나 군국가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무지한 논자들에 의해 군국가요의 대표인 양 왜곡되어 왔다. 게다가 어떤 이는 1939년에 발표된 <감격시대>와 1937년 난징 함락을 연결시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지금까지도 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전의 박시춘 항목에서는 객관성이 결여된 그러한 내용을 당연히 수용하지 않았고, <감격시대>를 그의 대표작으로 기술했다.
사실 <감격시대>를 공격하는 논리와 「박시춘을 일으키자」에서 명백한 군국가요인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혈서지원>(<사진 2> 참조) 등을 애써 변호하며 무려 독립운동 노래로까지 둔갑시킨 논리는 매우 많이 닮아 있다. 방향은 정반대이지만 방식은 꼭 그대로인 것이다. 당시 대중음악계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그리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연구도 없이, 그저 ‘이런 것 같다’,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6·25전쟁 당시 박시춘이 만든 <전선 야곡>이 사실은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노래라고 누군가 억설을 늘어놓는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나 해석을 누가 그러지 말라고 강제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공식적인 지면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상식에서 동떨어진 무리함은 알아서 걸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견해를 사실과 다르게 함부로 왜곡하는 일도 물론 없어야 할 것이다.
밀양이 진정 박시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박시춘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 일은 기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군국가요 작곡만으로 그를 ‘친일파’라 단정할 일도 아니고, 그런 군국가요를 그냥 덮거나 억지 미화할 일도 아니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박시춘의 삶과 노래 전체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일, 사실 너무나 기본적이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 1941년 조선연예협회 결성 이후 대중음악계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조직적 통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예증 발급이 대중음악가 개개인을 어떻게 구속했는지,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박시춘이 처한 입장이 어떠했기에 다수의 군국가요가 만들어졌는지 등, 제대로 밝히고 보아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옹호와 비판을 함께 아우른 홍난파 연보나 군국가요까지 한 점 가감 없이 모두 수록한 남인수 전집처럼, 박시춘과 그 음악에 관해서도 할 수 있는 작업, 해야 할 작업은 얼마든지 있다.
이와 관련해 「박시춘을 일으키자」에서도 박시춘 재조명 ‘사업’에 대해 몇 가지 언급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객관성을 이미 심각하게 상실한 상태라면, 그 ‘사업’이 과연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일 논란이 없는 대중음악가들에 관한 기존 여러 ‘사업’들에서도 그 부실함은 이미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오류로 점철된 노래비, 동상, 전시 공간을 과시적으로 건립하거나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허술한 가요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포장은 그럴싸하지만 십중팔구 내실 없는 돈 잔치로 끝나 버린 소비성 행사가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그런 ‘사업’ 대부분은 비용 충당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자금을 적지 않게 끌어 써 왔고, 또 노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업’인지를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밀양이 박시춘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우선 그의 공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엄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 사진2-혈서지원 |
이준희/성공회대학교외래교수
사과문
한국대중음악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밀양출신 박시춘이 친일의 과로 인해 그의 공마저 고향인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워, 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애향적 취지에서 「박시춘을 일으키자」는 제하의 글을 신문에 연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박시춘의 공적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친일인명사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사전의 수록 내용을 폄하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 누를 끼치게 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손정태/밀양문화원 이사
<2016-02-26> 밀양신문
☞기사원문: 밀양이 박시춘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박시춘관련 자료
[다운로드] pdf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IV-6>
※관련기사
☞밀양신문: 박시춘(朴是春)을 일으키자! (2015.12.18)
☞밀양신문: 박시춘(朴是春)을 일으키자! (2015.12.31)
☞밀양신문: 박시춘(朴是春)을 일으키자! (2016.01.13)
☞밀양신문: 박시춘(朴是春)을 일으키자! (201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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