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아픔을 그린 영화 <귀향>이 개봉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표를 예약하는 이들도 날로 늘어 흥행 추세는 고조될 전망이다. 개봉 전부터 상영관 확보를 돕기 위한 예매 운동이 온라인에서 벌어졌고, 학교·학원·시민단체·정치권 등 다양한 층에서 단체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귀향>의 성공은 통상적인 영화의 인기몰이와 구별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 배경에는 지난해 말 정부가 일본과 맺은 ‘12·28 합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깔려 있다.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해결’ 운운한 합의 내용은 역사의 망각을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공분을 느낀 시민들이 <귀향>을 통해 ‘기억 투쟁’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합의 이후에도 한-일 정상 간 통화 내용과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는 변호사단체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는 등 떳떳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 초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용어와 사진을 뺐다.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보급하려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에 교육부가 제동을 걸기도 했다. 정부가 이런 몰역사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저자세로 일관하는 우리 정부와 달리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거듭 부정했고 여당 정치인의 망언도 여전하다. 알량한 12·28 합의 정신마저 이미 형해화한 셈이다. 이제 정부는 이 합의가 외교적 참사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무효화 및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올해 들어 벌써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귀향>의 성공은 역사의 비극을 똑바로 기록하고 되새긴다는 차원에선 바람직할지언정, 그 바탕에 70년 넘게 풀지 못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선 슬프기만 하다. 결코 경축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3·1절이다.
<2016-02-29> 한겨레
☞기사원문: [사설] 위안부 다룬 영화 ‘귀향’의 슬픈 흥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