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 위해 <귀향> 관람 운동 추진해야
스무 살 즈음이었나? 머리가 하얗게 센 낯선 웬 할머니가 아랫목에 앉아계셨다. “나주 이모다.” “니가 영주냐?”
내 손을 덥석 잡는 정겨움에도, 첫낯을 가리는 나는 쭈뼛쭈뼛 뒷걸음질을 쳤다. 주름살은 별로 없는데, 말이 어눌하고 왼쪽 눈을 찡그리듯이 깜빡거리고 왼손 끝을 바르르 떨고 계셨다.
가신 뒤에 어머니께 물었다. “닛째 이모라믄, 엄니 동생인디, 왜 그리 늙어붓땅가?”
“으응 시집가서 고생 많았쩨~! 고 놈의 나주 이숙이 어찌나 술 퍼먹고 두들겨 패고 모지란 짓꺼리만 허고 댕긴께~!”
“거~ 한아부지는 인물도 훠언하시고 글공부도 많으심서, 사우들은 왜 그 모냥들이다요~?”
“긍께 말이다. 닛째가 얼굴도 질로 이쁘고 공부도 맨나 1등만 했는디, 시상얼 잘못 만났제~! 일제 때 ‘처녀 공출’ 벗을라고 언능언능 시집을 보낸단 것이 씰 만한 머시매들은 ‘징용’에 끌래가 불고 고런 칠뜨기 놈한테 걸려갖고 평생 고생 구덕에 빠져서 바보가 되아부럿어~!”
▲ 김순덕 할머니 그림 ‘끌려가는 날’. |
그 ‘처녀 공출’ 때문에 벌어진 나주 이모의 불쌍한 인생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도 공출당한 것보다는 낫다고 그런 시집을 보냈단다.
그렇다면 그 시절 사람들이 ‘처녀 공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울 엄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적에, 107호실 순천댁 할머니가 그 시절에 만주에서 살았는데, 온 동네에 ‘처녀 공출’의 ‘집단 성폭행’ 소문이 하도 흉흉해서, 자기도 다시 고향 순천으로 되돌아왔단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쥐도 알고 새도 아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을, 일본의 아베를 비롯한 극우파는 철면피로 손사래를 치며 막아서고 있다.
이렇게 울 엄니에게서 ‘처녀 공출’이란 말은 들었어도, 그게 ‘정신대’ ‘위안부’와 같은 말이고, 그리고 그게 아우슈비츠 수용소 비슷한 시설에서 하루에 30~40여 명 남자들의 성욕을 감당하는 ‘성노예’였다는 걸 안 것은, 90년대 신문에서 만난 ‘수요집회’였다.
그 지옥 같은 잔혹함에 온 몸이 된서리를 맞은 듯이 진저리를 쳤다. 어린 여자가 성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슬픔들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일 게다.
그런데 ‘처녀 공출’은, 어느 날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수십 명에게 마구잡이로 당하는 성폭행이다.
게다가 언제 헌신짝처럼 버려지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갈 지도 모를 공포까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있으니, 그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도 열 배 백 배 잔혹한 지옥이다.
지옥은 죽어서 만나는 지옥이지만, 성노예는 살아서 만나는 지옥이다. 이보다 슬프고 이보다 잔혹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
어느 날, ‘소녀상’을 만났다. 몸과 맘을 가지런히 가다듬고, ‘소녀상’의 어깨에 앉은 작은 새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소녀상’의 앞쪽으로 다소곳이 돌아섰다.
‘소녀상’을 정면으로 마주서니, 그 소녀의 다부지게 당찬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동상의 모든 게, 한꺼번에 화~악 감동으로 밀려왔다. “아! 잘 만들었다!” 이미 사진으로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니까 그냥 잘 만든 게 아니라, 그 때 그 시절의 그 소녀를 그 시절에 만난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잘 만들었다.
그 무엇보다도 얼굴 생김새와 표정이 정말로 생생하다. 일본 대사관을 내쏘아보는 형형한 눈빛과 눈망울에서 분노와 슬픔이 함께 맺혀 보이는 건 내 마음 때문일까?
그 눈빛에 일본 놈들 간담이 서늘하겠다 싶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통쾌했다. 야무진 입매에 굳게 쥔 주먹, 그러다가 다시 올려다보니 뭉텅뭉텅 잘라낸 단발머리마저도 그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뒤로 주춤거리다가 가슴 시리게 안타까운 맨발이 너무나 불쌍해서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분노·슬픔·통쾌·엄숙·안타까움’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섞여들면서 온 몸이 무너지며 오금이 저려왔다.
소녀상 옆 빈 의자에 내 몸을 기댔다. 그 빈 의자는, 그렇게 나에게 ‘위안과 평화’였지만, 그녀들에겐 먼저 떠나버린 친구였고, 보고 싶은 부모형제이고, 고향의 산천과 마을일 게다. 이렇게 빈 의자는 비록 텅 비어있지만, 참으로 많은 걸 담을 수 있겠다. 정말 ‘대단한 빈 의자’이다.
동상만 이토록 잘 만든 게 아니라, 놓인 자리도 일본 대사관 정문을 정면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 형형한 눈빛에 엄정하고 다부진 표정과 자세로 서릿발 치도록 꾸짖고 있다.
“네 놈들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천년만년 고발하고 저주하리라!” 이 얼마나 통쾌한가! 지난 연말에 그 더러운 10억 달러로, 그 놈들이 내민 첫째 조건이 ‘소녀상’의 철거였다니, 그 동안 일본 군국주의에 앞장선 그 마초놈들의 간담을 얼마나 서늘케 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그놈들의 철면피를 산산이 박살내고 그놈들의 돌심장마저 바짝 쫄았음이 분명하다. 그 소녀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놈들의 목구멍에 들이댄 서슬 퍼런 칼날보다도 더욱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이 그 지랄발광을 한 거다. 지난 연말 ‘박그네’의 치욕스런 협상에 분노가 하늘을 찔렀지만, 그놈들이 ‘소녀상’에 개거품을 물고 발광하는 모습에 “오냐! 느그들이 ‘소녀상’에 허벌나게 쫄긴 쫄았구나! 그래, 느그들도 저 밑바닥엔 티끌만한 양심이 있었뜨냐? 이 개XX에 XX들아!” 이 얼마나 상쾌 통쾌 상쾌한가!
이제 ‘소녀상’은 ‘친일인명사전’과 함께 우리의 최소한의 자존심이고, 올바른 민족정기를 세우는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걸 먹칠하려는 세력이 있다. ‘일베’들을 비롯한 극우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극우와 극좌는 못된 인간들 중에서도 최악이다. 이들은 ‘전쟁을 즐기는 놈’들이기에, 우리의 적일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이요, 지구의 적이다.
이제 그 빈 의자에 ‘고향의 산천 아래 옹기종기 내려앉은 초가집들, 그 마을에서 들려오던 부모형제와 이웃 친구들의 그 이야기’를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이 빈 의자에 일본의 아베와 우리의 일베가 저지른 잘못에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그러함에 그들을 향한 분노와 항의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 강일출 할머니 그림 ‘불태워지는 처녀들’. |
강일출 할머니가 그림치료로 그린 ‘불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의 참혹함에 놀란 조정래 감독이, 그 할머니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무려 14년 동안 이어온 끈질긴 노력과 7만3000명의 12억원이라는 갸륵한 정성으로 <귀향>을 만들어냈다.
초반에 상영관을 잡지 못해서 안타까웠지만, 그 갸륵한 정성을 하늘이 도와서 상영한지 2주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고 무려 3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몰리는 기적을 일구고 있다.
1000만 명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러나 1000만 명을 달성하려면, 그 어떤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한 방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다. 국민들의 정의로운 분노와 갸륵한 정성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만 보면, 대중재미가 밋밋하다. 작품성은 높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낮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 국악을 소재로 한 그의 <두레소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에서 다가오는 가장 큰 장점은 진정성이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가슴 안쪽에서는 치열한데 밖으로 드러나면서 수더분해진다. 그게 진짜 진정성인데, 그 진짜 진정성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이 극소수이다. 그 수더분한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무던히도 노력하고 노력해서 그 초라함을 벗어난다. 그래서 대중재미도 B0쯤은 갖추고 있다. 그게 <두레소리>에서 ‘국악 창법과 아카펠라 창법’의 만남이요, <귀향>에선 ‘할머니 원혼과 씻김굿의 접신’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권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싱거웠을 것이다.
그는 ‘성노예’라는 극악스런 슬픔마저도 살풀이에 실어서 순화시켰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이나 젊은 세대에게는 그 슬픔이 극악스럽지 않아서 부담없이 분노할 수 있었고, 시골 사람들이나 할머니 세대에게는 그 때 그 시절의 지옥에서 빠지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자칫 자기 일일 뻔 했던 아슬아슬함에 아찔했을 것이다.
게다가 돈도 부족해서 모든 걸 아끼고 아껴서 만든 작품인지라, 요란한 영화들에 맛이 배인 사람들에게는 싱거울 수밖에 없다.
▲ 영화 <귀향> 포스터 |
보기 드문 ‘진짜 진정성’으로 ‘한 맺힌 할머니들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길이 빛내야 할 사명감으로 ‘<귀향>관람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그 처참한 비극은, 못난 조상들의 조선 왕조가 저지른 무능과 부패 때문이기도 하고, 잘못된 일본의 근대화가 저지른 탐욕과 교만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그게 누구의 잘못이든, 전쟁에 정의는 없다. 전쟁은 무조건 악마다! 전쟁이 그런 지옥도를 그린 것이다. <귀향>은 ‘나쁜 일본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전쟁은 악마들의 핏빛 잔치다!’라고 외치는 영화이다.
지금 우리 한반도엔, 전쟁을 부추기는 악마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그런 지옥을 다시 불러올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아~! 한 맺힌 한반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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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 김서경 부부 조각가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이들은 소녀상을 조각한 이유와 소녀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 “조형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꽃, 고무신, 빈 의자, 나비를 만들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때 아내가 ‘할머니보다 소녀상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열서너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소녀의 슬픈 사연을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가 가졌던 과거 꿈 많던 소녀시절을 돌려주자는 의미에서였다.”
2. 소녀상은 쌍꺼풀이 없고 코가 높지 않으며 얼굴이 둥글고 사랑스럽다. 머리카락은 단발인데 자세히 보면 거칠게 뜯겨진 모습이다. 원래는 댕기머리였는데 일본군이 잘랐다. 단발로 할까, 댕기머리로 할까 고민이 있었는데 강제로 끌려간 것이니 단발로 결정했다. 스님이 속세를 떠날 때 머리를 깎는 것처럼 단발은 인연이 끊김을 상징한다.
3. 제작 기간은 약 6개월이 걸렸다. 전쟁과 인권이라는 명제에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을 이입했다. 작업에 몰입하면서 많이 아팠다. 소녀가 한복을 입은 모습은 조선을 상징한다. 어린 여자이지만 다부지고 의연한 모습을 형상화시키고 깊었다.
한창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일본 측에서 조형물제작을 중단시켜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어이없고 화가 나서 원 설계엔 무릎 위에 다소곳하게 모은 손을 주먹으로 바꿨다. 소녀의 눈빛에도 신경을 썼다. 일본대사관 건물을 뚫어지게 보며 ‘너희들이 한 짓을 봐라’ 사죄를 하지 않은 데 대한 꾸짖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다.
4. 소녀상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면서 자유와 평화의 의미가 담겨있다. 뜯겨진 머리는 타의에 의해 가족과 조국을 단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표현했다.
빈 의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의자다. 수요집회 때 강제위안부 할머니가 앉는 자리다. 그러면서 우리가 앉아 공감하는 자리이고 우리와 다음세대가 풀어가야 할 자리다.
소녀의 맨발은 험난한 삶과 여정을 의미한다. 소녀는 발뒤꿈치가 들려 있다. 이는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까봐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의미한다. 강제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아직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없음이다.
뒤에 그림자는 소녀의 그림자가 아니라 할머니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 속에 하얀 나비가 있다. 하얀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아이가 뭔가 허전하다면서 그림자를 만들자고 제안해 수용했다.
김영주 영화칼럼니스트 yjkim89102@daum.net
<2016-03-12> 광주인
☞기사원문: [김영주 영화산책] <귀향>과 ‘소녀상’의 씻김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