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강좌’ 엮어 책 낸 한상권 교수
국정화 막으려 두달여 ‘거리 강의’
헌법 기본정신 등 시민들에 알려
“역사학자들 저항 기록 작업이었죠”
▲ 12일 오후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한상권 교수(사학과)가 최근 펴낸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를 보여주고 있다. 한 교수는 “식민교육이 아닌 시민교육으로 시민의 권리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투표는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총선 전날, 20대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려달라고 하자 한상권(63)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덕성여대 설립자인 여성독립운동가 차미리사(1879-1955) 선생의 후예들이 씩씩하게 캠퍼스를 누비고 있었다. 한 교수는 <차미리사 평전>(2008)을 쓴 역사학자. 최근 몇달 동안 정신 없이 바빴다. 그는 4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한국사 국정화 저지를 위한 네트워크’(이하 국정화저지넷)의 상임대표로서 지난해 11월21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옆에서 연 ‘시민·학생과 함께하는 거리 역사 강좌’를 기획했다. 최근 이 강좌를 모은 책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민족문제연구소 펴냄)도 펴냈다.
“역사학자들의 저항을 사학적으로 남기는 작업이었죠. 영하 20도에 이르는 추운 날씨에 길거리 계단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끝까지 경청해주신 시민들의 성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200명에 이르는 20~30대 시민들,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들도 많이 참석했다. ‘거리 강단’에는 그를 비롯해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등 역사학계 원로와 중진 교수들이 강사로 나섰다.
작년 9월13일, 새누리당은 “좌파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10월17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라고 했다. 11월3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직접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담화문을 발표했다. 황 총리는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99.9%의 교과서가 편향성 논란이 있다고 매도했다.
“어떻게 0.1%가 옳을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국민이 틀렸다는 얘기 아닌가요. 이는 민주주의적 소양이 없는 전체주의적 사고입니다. 그 말을 듣고 헌법정신을 국민들에게 더 자세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한 교수는 제헌헌법을 계승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을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 사회복지와 사회정의”에서 찾았다. 거리 역사 강좌에서도 한 교수는 ‘헌법이 증언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제헌헌법은 독립운동정신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계승했습니다. 헌법전문의 ‘균등’이란 말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전통적 유교, 실학정신에 나온 것입니다.”
한 교수는 논어의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모자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균등하지 않은 것을 근심한다)이란 말을 예로 들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균등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개혁군주 정조도 ‘손상익하(損上益下)’라고 했다. 위를 덜어서 아래에 보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삼균주의’(三均主義)에 바탕을 둔 평등주의를 추구했다.
“균등 이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이었고, 일제강점에 맞선 독립운동이 공화주의와 평등주의 이념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를 계승한 것이 제헌헌법입니다. 이념갈등이 많지만, 정치인들도 우리가 합의한 헌법정신에 따라 사회를 이끌면 됩니다.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식민교육’이 아니라 ‘시민교육’으로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되살려야 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6-04-14>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건 식민교육일 뿐”
▲ 저자 이만열 한상권 이준식 조광 한철호 안병우 이동기 이이화 김육훈 l 출판사: 민연 l 13,000원 ㅣ272page l 발행일: 2016.3.1. l ISBN l 9788993741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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