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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받은 역사쿠데타, 국정교과서 이젠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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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에 의해 자행된 기억과 역사의 왜곡


4·13총선이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참패라는,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고 막을 내렸다. 뜻밖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박근혜정권의 역사쿠데타에 맞서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국민이 불의한 정권의 불법질주를 투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박근혜정권 3년 아니 더 길게는 이명박근혜정권 8년의 실정은 하나둘이 아니다. 잘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못한 것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따가운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은 사람들의 기억을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변조하려는 시도였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뜬금없이 건국절 제정 움직임을 보여 뉴라이트정권이라는 비판을 자초했고 박근혜정권 이후에는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 식민사관에 찌든 인물의 국사편찬위원장 임명과 국무총리 후보 지명,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엉터리 합의, 건국절 제정 움직임 재개 등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가치를 훼손하는 작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여기에 박근혜정권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세월호 기억 지우기까지 더하면 이른바 보수라고 쓰고 극우라고 읽어야 할 정권이 어느 정도로 기억과 역사의 왜곡에 매달렸는지를 잘 알 수 있다.


▲ 전국교육대학생연합 학생들이 9일 서울 시청 인근에서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폐기 및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 초등 예비교사 총궐기’ 행진을 하며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왜 보수정권은 기억과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가?


당연히 정권이 온힘을 기울여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를 조작하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친일파와 독재자에게 역사의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아니 면죄부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와 독재자야말로 반공을 기반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로서의 대한민국의 주역이므로 훈장을 주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아니라 친일과 독재의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변조하려는 기도로 이어진다. 몇 해 전에는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공사(KBS)가 친일군인 백선엽과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고 광복 70주년이던 작년에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이자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김용주를 숨은 애국자처럼 조작하는 평전이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나오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투표권을 가질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국가(사실은 정권)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국가주의 이념, 그리고 자본(의 이익)이야말로 신성하다는 자본 만능 이념을 주입시킴으로써 보수정권이 영구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박근혜정권에서 펴낸 최초의 역사 국정교과서인 2016년판 초등학교 6-1 사회 교과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야말로 아무 잘못이 없는 신성한 존재라는 식의 서술이 넘쳐난다. 그 백미는 교과서의 마지막에 “대한민국의 발전은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쓴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가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만을 가르치겠다는 것이야말로 이 정권이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하는 사람들의 역사는 감추고 지배층의 역사만 강조하는 것은 현대사 서술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기억과 심판’으로서의 4·13총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박근혜정권의 핵심 인물들에 대해 을사오적에 준하는 ‘역사오적·을미오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뜻 있는 뜻있는 국민들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세력에 대해 이미 경고할 만큼 경고한 상태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만 해도 올해 초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말보다 반대여론이 더 높아져 찬성여론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최소한의 양식이 남아 있었다면 국민이 이미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했지만 박근혜정권에는 그런 양식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 아니 국정화의 총대를 메고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도 좌경화되었다는 거짓 선동과 함께 역사교과서는 물론이고 다른 과목의 교과서도 모두 국정화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펴던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을 비례대표 9번으로 공천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박근혜정권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막장에 이르고 있었다.


4·13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운동의 일환으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에 모인 여러 시민단체가 내세운 ‘기억과 심판’이라는 구호에는 세월호를 제대로 기억하고 역사왜곡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주권자들이 표로 심판해줄 것을 호소하자는 뜻이 감겨 있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정말 세월호를 망각 속으로 묻어버리려는 무리, 대한민국의 역사시계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무리를 투표로 철저하게 응징했다.


4·13총선은 박근혜정권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역사쿠데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총선넷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투표를 통해 최고의 정책 10개와 최악의 후보 10명을 선정한 바 있었다. 최고의 정책 1위는 세월호 진상 규명이었고 2위는 국정교과서 폐기였다. 최악의 후보 10명 가운데 무려 3명이 국정화를 주도한 후보였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을동 전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장,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이 바로 그들이다. 3명은 모두 현역 의원이었다. 그런데도 황우여 의원과 김을동 의원은 낙선했다. 황우여 의원은 보궐선거까지 포함한 이전의 네 차례 선거에서 계속 보수후보가 당선되었던 인천 서구을 선거구에서 그동안 네 번씩이나 낙선한 적이 있던 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김을동 의원은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일컬어지던 서울 송파을 선거구에서 주민들로부터 재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다. 김무성 의원은 당선되기는 했지만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 반열에서 아예 탈락할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가장 큰 심판을 받은 것은 ‘역사오적’의 첫 번째로 꼽히던 박근혜대통령이다. 박근혜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사실상 국민탄핵을 받아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오죽하면 지금 시중에는 박근혜대통령이 레임덕(절름거리는 오리)이 아니라 아예 데드덕(죽은 오리)이 되었다는 말까지 돈다고 한다.


▲ 중앙선대위원회 해단식에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정의철 기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중단되어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한 국정화의 주역들이 국민의 심판을 받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조차 사설에서 썼듯이 국정교과서 추진에서 드러난 박근혜대통령의 독선과 독주가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은 중요한 원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총선이 끝나자마자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제3당인 국민의당이 일제히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꼽은 일은 바람직하다. 두 당뿐만 아니라 제4당인 정의당도 총선 공약으로 국정교과서 반대를 내걸었다. 그러니 총선의 민의를 존중한다면 당연히 국정교과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걱정이 있다. 국정교과서 반대라는 원칙에는 이견이 있지만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온도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국정교과서 폐지를 입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국회 결의로 박근혜대통령을 압박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의 박근혜식 통치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박근혜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존중할 가능성은 없다. 19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는데 국회 결의 정도야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도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국정교과서 집필 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법으로 국정교과서를 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나 대통령의 거부권을 우려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작년 국정화 고시 이전에도 박근혜대통령의 서슬이 하도 시퍼레서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도 국정교과서를 마땅치 않아 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오죽하면 국정화의 악역을 맡은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조차 국정교과서보다는 검정교과서나 자유발행 교과서가 낫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도 기존의 검정제도를 자유발행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내지 않았는가. 총선 결과 이미 레임덕이든 데드덕이든 대통령의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국민의 심판 대상이 된 국정화를 끝까지 지지할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일부 ‘진박’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8주년이자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2017년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교과서인 국정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4·13총선에서 민의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과연 제대로 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정책위원장

<2016-04-20>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이준식 칼럼] 심판받은 역사쿠데타, 국정교과서 이젠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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