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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성지’ 마산서 끝나지 않는 17년 ‘이은상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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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문인 기념사업에 친독재 행적 비판 시민단체 반대

이은상 문학관·노래비 이어 최근 ‘은상이샘’ 철거 논란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민주성지’로 불리는 마산과 ‘가고파’의 문인 이은상은 공존·공생할 수 있을까.


문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친독재 행적으로 비판을 받는 마산 출신 문인 노산 이은상(1903~1982)을 둘러싼 ’17년 역사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 은상이샘 철거하라

창원시 옛 마산지역 시민단체인 열린사회 희망연대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마산합포구 노산동 3·15 기념비 바로 옆에 있는 ‘은상이 샘’ 철거를 시에 요구했다.

3·15 기념비는 1960년 3월 15일 북마산 파출소를 중심으로 발생한 마산지역 의거를 기록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당시 주변에 살던 주민 신동식 씨가 돌에 글씨를 새겨 세웠다. 이후 도시개발로 3·15 기념사업회가 1999년 현 위치로 옮겨 설치했다.


은상이 샘은 북마산 파출소 근처 이은상 생가에 있던 우물터가 북마산 도로확장 공사에 편입돼 철거되자 문인들의 요구로 1999년 마산시가 자리를 옮겨 우물 형태로 복원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3·15의거 기념물과 3·15의거를 깎아내린 인물의 기념물이 한곳에 나란히 들어선 것이다.


철거 주장에 안상수 창원시장은 직접 현장을 찾았다.


그는 지난 20일 3·15 기념비를 찾아 관리상황을 점검하면서 시청 조직에 ‘민주성지’ 담당 신설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 3.15기념비, 은상이샘 찾은 안상수 시장


창원시 관계자는 “안 시장이 민주성지 마산의 전통을 발전시키고 더 나가 관련 단체간 대립을 수습하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그러나 은상이샘 철거 요구에는 “복원당시 지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인 만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존치나 철거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진 않았다.


김영만 열린사회 희망연대 전 대표는 “민주성지 담당을 설치하겠다는 안 시장 발언은 환영한다”면서도 “민주성지 마산에서 3·15 의거를 폄하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편에 섰던 이은상은 공존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창원시가 은상이샘을 그대로 두려면 고증을 통해 철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상을 둘러싼 지역사회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마산시란 명칭은 사라졌다. 그러나 시민들이 독재에 항거한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곳으로’마산 정신’은 살아 있다.


그러나 정작 마산 안에선 민주정신 계승을 둘러싸고 20년 가까이 역사 논쟁이 되풀이됐다.


그 중심에 이은상을 기념하려는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단체간 충돌이 있다.


이은상은 마산을 노래한 가곡 ‘가고파’를 지은 시조시인으로 남다른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1960년 선거때 이승만 당선을 돕는 문인 유세단에 몸을 담아 3·15의거를 폄하했다. 이어 박정희 유신정권·전두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등 반민주 정권에 협력적이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열린사회 희망연대가 파악한 이은상 친독재 행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은상은 1960년 4월 15일 한 중앙 일간지에 ‘마산사태’를 평가하면서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표현했다.


박정희 정권때인 1972년에는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 명의로 “무질서와 비능률을 배제하여 국기를 공고히 하려는 박 대통령의 영단에 적극 찬동한다”는 유신 지지성명을 냈다.


그는 악법으로 꼽힌 ‘긴급조치 9호’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관변단체인 ‘총력안보 국민협의회’ 의장도 지냈다.


그는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이라는 글을 ‘정경문화’란 매체에 실었다.


이은상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려 마산시가 1999년부터 추진한 문학관은 지역 민주단체들 반발로 진통을 거듭하다 ‘이은상’이나 ‘가고파’, ‘노산’ 등 명칭은 속 빠진 채 마산문학관이란 이름으로 2005년에야 문을 열었다.


이후에도 마산지역에선 이은상 노래비 건립 등을 둘러싸고 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잠잠하던 이은상 논란은 지난해 초부터 다시 불이 붙었다.


문화예술특별시를 내세운 안상수 시장이 이은상을 관광·문화자원으로 활용하려 하면서 부터다.


창원시는 지난해부터 11억여원을 들여 3·15 기념비 맞은편 주택가 골목길에 이은상 등 지역 출신 예술인을 소개하는 ‘가고파 거리’를 만드는 중이다.


재경마산향우회는 안상수 시장이 참석한 시민대동제를 열어 ‘가고파’ 작사가인 이은상과 작곡가인 김동진이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당시 안 시장은 “작가의 공과(功過)를 떠나 문학적 측면에서 포용할 때가 됐다”며 거들었다.


당시 이은상·김동진 동상건립 저지 시민대책위원회는 “김동진은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인 만주국에서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활동을 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라며 “독재와 일제를 찬양한 두 사람이 다정히 손을 잡은 동상은 시민 모독이자, 웃음거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시장은 시의회 발언에선 “이은상 선생이 독재를 찬양해서 대역무도한 짓을 한 것처럼 그러는데 삼엄한 유신시기에 글 좀 쓰라고 총칼을 들이댈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은상을 옹호하기도 했다.


seaman@yna.co.kr


<2016-05-22>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주성지’ 마산서 끝나지 않는 17년 ‘이은상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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