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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짐 지고 관조? 문학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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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강조했다. “자기 생명이 있는 한, 몸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위해서 포효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지난 2월 <한겨레21>은 물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짚었다. “농민은 병실에 누워 있고, 노동자는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오른다.”(제1098호) 이후 넉 달.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잔인한 비언어의 시대에 문학의 가치와 교훈을 탐사하기 위해 시작한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이 지난 5월 16회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하는 글] 기획연재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연재] 1화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연재] 2화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연재] 3화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연재] 4화 무시무시한 시절의 위고

[연재] 5화 늙어서 오히려 진보한 위고

[연재] 6화 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연재] 7화 “나는 침묵할 수 없다!” 인도주의 상징 톨스토이

[연재] 8화 지복을 누린 괴테 바이마르 권세에 취하다

[연재] 9화 정치는 우리의 운명 스탕달

[연재] 10화 실러의 위대한 투쟁

[연재] 11화 ‘감옥의 벽’ 허물려 한 자유의 투사 횔덜린

[연재] 12화 ‘오리새끼’에서 ‘혁명가 친구’ 된 푸시킨

[연재] 13화 유언비어 용의자 1호 러시아의 푸시킨

[연재] 14화 천재 연애대장 바이런

[연재] 15화 양심의 이름으로, 헤세

[연재] 16화 이런 ‘반공주의자’ 펄 벅

일본의 도쿠토미 형제 문인이 정반대로 걸어간 길에서 시작한 연재는 용인할 만한 반공주의자 펄 벅에서 끝맺었다. 연재에서 다룬 작가들은 자유, 평화, 인도주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문학비평가)을 5월의 마지막 날 만났다. 서울 서초구 임 소장의 자택. 2만 권에 이르는 장서가 방마다 빼곡했다. <한겨레21> 연재분을 바탕으로 글을 깁고 보태어 임 소장은 단행본 출간을 할 참이다. 연재 지면이 넉넉지 못했던 탓에 과하게 덜고 압축했던 부분을 생생히 복원하고, 미처 담지 못한 작가들도 채워넣겠다고 했다.

연재를 마친 소회는.

“변변찮은 글을 다뤄준 <한겨레21>과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연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는 글로 책을 낼 생각이다.”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문학인들의 인간적인 면 등 생애 전반을 다뤘으면 훨씬 재밌고 윤기가 났을 거다. 이번 연재는 부득이 지면상 정치 쪽에 국한했다. 스탕달( 관련 연재기사)의 유명한 말이 있다. ‘문학에서 정치란 음악회 중 쏘아대는 총소리와 같다.’ 차이콥스키의 <1812년 대서곡>에는 대포 소리조차 음악으로 승화돼 있다. 모든 것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게 현대다. 문학인들이 얼마나 당대 현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느껴졌으면 했다. 사회문제나 정치·역사 문제를 다루면 순수문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 연재에서 다룬 문인들 중 헤르만 헤세가 누구보다 순수한 문인이었다. 순수한 문학이지만 그것이 가장 정치적이었다. 바로 반전 평화다. 헤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조국도 버리고 스위스에서 살았다. 모든 문학은 정치학의 부교재라고 할 만큼 역사와 밀착해 있다. 문학 논쟁은 곧 정치 논쟁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순수한 헤세 문학, 가장 정치적

늙을수록 더 과격해진 빅토르 위고( 관련 연재기사) 편도 인상적이었다.

“늙어서 관용을 베풀거나 너그러워진 거장들은 한 명도 없다. 평화·자유·진리를 위해서 두려움 없는 삶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선 이름을 좀 날리면 점잖아지고 사회활동에서 몸을 빼는 게 대가인 것처럼 착각한다. ‘나쁜 노인’들이 설치는데 올바른 노인들은 가만있는다. 자기 생명이 있는 한, 몸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위해서 포효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일생 평화를 위해 싸워도 이뤄질까 말까 하다. 뒷짐 지고 앉아서 세상을 관조하면 안 된다.”

연재에서 자유·평화·인도주의를 줄곧 강조했다.

“이 셋이 없으면 문화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나 가수도 그렇다. 예술혼이 있어야 한다. 진실성이 없으면 사람들한테 감동을 못 준다.”

임 소장의 연재글이 천편일률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툭 던져진 위트와 유머가 글맛을 더해주기도 했다. 가령 이런 대목. “제임스 조이스도 애인 노라 바너클과 첫 사랑을 나눈 날(1904년 6월16일)을 <율리시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삼았다니 작가의 아내들은 남편의 작품을 세심하게 읽어볼 일이다.”( ▶관련 연재기사)

작가들의 연애사가 종종 연재글에 소개됐다.

“아쉬웠다. 성생활 같은 것은 별도로 다뤄도 될 만큼 엄청난 얘기가 많다. 톨스토이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여든 넘어서도 고민했다. 이 사람이 위대한 것은 그런 것까지도 모두 기록해놨다. 성욕이 넘칠 때면 냉수마찰을 하거나 말 타고 하면서 견뎠다는 것. 자기 극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자기를 드러내는 데 얼마나 용감한지 참 감동적이었다.”

연재에 담지 못한 게 더 있을 것 같다.

“미국의 노예해방론자 존 브라운(1800~59)이 있다. 무력투쟁을 하다 붙잡혔다. 빅토르 위고 또한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있었는데 존 브라운을 구명해야 한다는 항의 서한을 썼다. 서한 내용이 너무나 명문이다.(서한의 한 부분. ‘미국인들이 이것을 숙고했으면 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로, 그것은 바로 워싱턴이 스파르타쿠스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도쿠토미 소호·로카 형제는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 당시 일본인들 가운데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이상주의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견디며 싸워줬던가 하는 연구가 거의 없다. 우리가 연구해야 한다.”

시대의 절박함 그려야 명작

미처 다루지 못한 작가도 있을 텐데.

“마크 트웨인(1835~1910)이다. 연재를 마치고 미국에 다녀왔다. 어릴 때 소년소설로만 보았던 <톰 소여의 모험> 등을 이번에 다시 보았다. 인간의 깊이랄까, 미국적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트웨인은 돈이 떨어지면 기행을 갔다와 강연해서 돈을 벌었다. 그의 기행문은 완전히 제국주의 비판이다. 자기 나라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전쟁할 때도 다 비판했다.”


요즘은 문학이 죽었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영향력으로 볼 때 문학의 시대는 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은 사회변혁의 기관차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서서히 무너지고 2010년대 들어 문학인들이 포기해버렸다. 문학인들 책임이다. 이렇게 각박하고 말도 안 되는 정권이 들어섰는데 ‘현대의 태백산맥’ 같은 소설을 왜 쓰지 않나. 잘됐다는 시를 보면 평론가인 나도 모르겠다. 그걸 몇 사람이나 알까. 문학하는 사람들끼리만 보도록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

최근 소설가 한강 열풍이 불고 있다.

“큰 의미에서는 잘된 거다.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큰 역할을 한 거다. 문제는 한 시대의 절박감이 얼마나 배어 있느냐다. 모든 시대의 명작은 그 시대의 절박함을 그린 거다.”


지금 작가들이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대통령부터 모든 분야가 다 문제다. 언론 내부 문제나 재벌 문제를 샅샅이 파헤친 시·소설·수필·르포가 있나. 그런 엄청난 이야기들을 다 놔두고 있다. 매달 문예지에 나오는 시·소설을 보면 속을 풀어주기는커녕 갑갑하다. 그것이 과연 문학일까. 과연 인류 문학사가 그렇게 형성됐을까. 대가들의 활동을 통해 느껴주기를 이번 세계문학기행 연재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진보세력, 역사 후퇴 막아야


▲ 임헌영 소장이 추천한 책들. 네 권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사’다.

임 소장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외국인들이 본 한국을 말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F. 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 당시 조선인들은 대단히 영리하고 문화적이었지만, 관료·지도층의 부패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이 지금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국민은 정치가보다 똑똑하다.” 임 소장의 현실 비판은 여전히 서릿발 같다.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외형적으론 야당 승리인데 외형과 내용이 일치하느냐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정말 야당을 믿어도 되는가. 정말 저 야당들이 야당스러운가. 오히려 19대 때보다 ‘투사’들이 줄어든 건 아닌가. 야당의 본분은 싸우는 것이다. 원칙 없는 여당과는 투쟁밖에 없다. 싸워서 얻는 방법 외엔 없는 게 오늘날 한국 현실이다. 싸우면 국민이 식상해한다는 발상은 참 이상하다. 김종인, 안철수는 ‘야당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도 야당의 반성을 강조했는데.


“야당 의원들이 국회의원 해먹으려고만 하지 진정 정권 교체에 관심 있는가. 우리나라 야당은 4·19 이후 국민이 권력을 쥐여줬지만 뺏겼다. 1987년 대선 때도 그랬다. 진보정당도 반성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상이 있어도 집권 못하면 소용없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제일 먼저 반성하고, 야당이 반성 안 할 수 없도록 비판해야 한다. 박근혜에게는 반성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할 필요도 없다. 진보세력은 1보 전진을 위해 2보 후퇴한다는 정신으로 뭉쳐야 한다. 자승자박하지 말고 각자 자기 거울로 냉철히 반성하고 더 이상 역사가 후퇴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에서 혁명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고 단정해서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중진국 정도 되는 나라 가운데서 한국이 혁명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 집권세력들의 무모함·무원칙을 고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시대가 변했다. 다만 퍼센트(확률)가 높은 건 저들이 너무나 비상식·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선 할 수 없는 정치다. 그러면 (민중의) 분노가 잠재된다. 혁명을 막는 세력은 야당이다. 정권 교체를 하려고 하기보다 국회의원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건 어떤 탄압에도 없어지거나 바뀌지 않는 민주노총·전교조 같은 시민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역사관 건립에 관심을

임 소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올해 가장 큰 사업으로 시민역사관 건립을 꼽았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올바른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다. 지금까지 모인 시민 모금액만큼인 30억원 정도가 더 필요한 형편이다. “늦어도 내년까지는 시민역사관을 열고 싶다”는 게 임 소장의 바람이다.

1987년 6·10 항쟁을 두고 그는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런데 항쟁 끝 대선에서 야당이 단일화를 못했다. 김영삼·김대중이 갈라져서 지금껏 민주화가 연기됐다. 아들인 김현철·김홍걸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흩어졌던 야권이 반성하고 마지막으로 제자리를 찾아오는 기회가 내년 대선이 돼야 한다.”


끝으로 임 소장에게 시민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해달라 부탁했다. 그는 주저 없이 꼽았다.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 님 웨일스가 쓴 혁명가 김산의 삶 <아리랑>, 임 소장이 ‘사상의 은사’ 리영희(1929~2010)와 나눈 대담집 <대화>, 그리고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2016-06-11> 한겨레21

☞기사원문: 뒷짐 지고 관조? 문학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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