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13일 전주 견훤로 기린봉 입구에서 친일파 이두황 단죄비 제막식을 가졌다./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제공 |
명성황후 암살을 주도한 친일파 이두황이 100년만에 단죄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13일 전북 전주시 견훤로 기린봉 초입에서 이두황 단죄비를 세웠다. 가로 1m, 세로 2m의 크기로 세워진 단죄비에는‘백 년 만의 단죄,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이라는 제목 아래 이두황의 친일행적이 적혔다.
이두황은 동학혁명 농민군을 학살했으며 37세에 명성황후의 암살을 주도했다. 그는 친일 공로로 1910년부터 사망한 1916년까지 전라북도의 도장관(현 도지사)의 요직을 지냈다.
이두황의 묘는 전주시 완산구 기린봉 중턱에 있다. 크기부터 위세를 가진 묘는 비석 높이만 2m에 달하며 제단이 일본식으로 꾸며져 있다. 친일파들의 명단은 모두 지워져 있다. 그의 묘가 전북 전주에 세워진 것은 태생은 서울이었으나 전북에서 도장관을 지냈고 임종도 전북서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묘는 이두황에게 살해당한 동학혁명군 차치구 접주의 손자인 차길진씨가 1951년 찾아낸 것이다. 차씨는 이두황을 부관참시를 하려 했으나 일본 불교신자였던 탓에 화장을 해 버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친일파 이두황의 묘를 지난 11일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과 고영현 사무국장이 둘러보고 있다./전북일보 제공 |
이두황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훈련대 1대대장으로 암살을 이끌었다. 1908년에는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이른바 일본의 ‘남한대토벌’로 불리던 호남지역 의병운동을 초토화하는데 앞장섰다. 6년 동안 전라북도 도장관으로 재직중에는 일제의 토지 수탈에 협력했다.
단죄비 제막식을 마친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이두황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민족 반역자였지만 명실상부하게 단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면서 “이두황이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난 시점에 단죄비를 설립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역사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자기반성의 계기도 된다”고 말했다.
단죄비를 이두황의 묘와 365m 떨어진 등산로 초입에 세운 것은 묘지 옆에 세울 경우 후손들에 의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김 지부장은 “매국한 대가로 이두황의 후손들이 취득한 땅에 단죄비를 세우면 사유지 침탈이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면서 “때늦었지만 단죄비를 세우게 돼 후련하며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2016-08-14> 경향신문
☞기사원문: 민족 반역자 이두황 100년만에 단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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