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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국절’ 논의에 대한 역사학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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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 고려대 명예교수

평화적 통일민족국가 건설이 민족적 시대적 과제요 염원인 지금, 통일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분단국가의 하나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성립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의견이 있는 한편, 지난날 일제강점에 저항해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된 1919년 4월11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평생 우리 역사 그것도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이들 논의에 대한 의견을 말해야 할 책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을 건국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은 국가는 영토와 국민과 헌법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헌법은 있었다 해도 실제로 지배하는 국민과 국토가 없었으니 국가로 볼 수 없고, 이들 3요소를 모두 갖춘 지금의 대한민국이 성립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통일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을 부정한 분단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의 소산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세기를 넘어서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민족으로 남아 온갖 고통과 모멸을 당하고 있는 민족사회의 역사인식이 분단국가주의에 한정된다는 사실은 곧 그 고통과 모멸을 연장시키는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과 북이, 그리고 이른바 좌익과 우익 및 진보와 보수가 화합하고 단결해서 민족사회를 평화적으로 통일시켜가야 한다는 통일민족주의적 정신과 행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일 또한 중요하다.

성립 당초부터 우익 쪽 이승만 대통령과 좌익 쪽 이동휘 국무총리의 합작으로 이루어졌고, 한때 우익 중심 정부가 되었다가도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이어짐으로써 민족해방이 가깝게 전망되면 될수록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합작정부로 되어갔다.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도 그 국무위원이 되었으며, 중국 공산당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독립동맹과의 연합이 기도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은 해방 후에 남북 두개의 국가가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독립운동 전선에는 엄연히 좌익세력도 있고 우익세력도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해방에 대비해서 좌우합작정부가 되어 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할 것이다.


그 같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과 정책 때문에 우익 중의 우익이던 임시정부 주석 김구도, 그리고 기독교 장로 출신이던 부주석 김규식도 해방 후의 정국에서 이승만 세력 중심의 분단국가수립 노선에 반대하고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만난을 무릅쓰고 남북협상 길에 나섰으며, 불행히도 분단국가들이 성립된 후 김구는 유엔에 대해 하나의 국가를 수립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두개의 국가를 성립시켰다고 계속 항의하다가 결국 마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이후의 역사는 이승만의 동상이 끌어내려진 반면, 김구의 동상은 계속 높이 서서 통일민족주의의 상징처럼 되게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제 행적이 반드시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눈앞의 일시적 이익과 편의를 위해 역사의 큰길에 거스른다면 반드시 역사적 죄인이 되게 마련이다. 역사적 안목에서 보는 지금의 우리 민족사회는 누가 무어라 해도 분단국가주의적 이익을 앞세워 통일민족주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되는 시점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날 일시나마 반민족적 처지에 몸담았던 본인이나 그 후손들은 다시는 민족사적 죄과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 민족문제는 민족사회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야지 이해관계가 다른 4강 체제에 해결책을 의존할 것이 아님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일민족주의정신에 의해 남과 북 민족사회 스스로가 그 해결책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임을 강조해 마지않는 바이다.


<2016-08-21>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론] ‘건국절’ 논의에 대한 역사학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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