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홍순권 동아대교수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사고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싼 수많은 의논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그 원인을 지적한 의논 중 정부가 짚어낸 ‘적폐’라는 어휘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정곡을 찌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적폐란 말 속에는 이번 참사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모순의 누적 결과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 용어의 사용자가 진정으로 이 말의 내포적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썼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번 참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해결 방안으로 정부가 제시한 ‘국가대개조’ 또한 그 참 뜻이 적어도 오늘날 국가 시스템이 지닌 적폐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원대한 구상이라고 한다면 그 신조어에서 풍기는 국가주의적 뉴앙스를 지나치게 탓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지닌 병리적 현상의 종합세트와도 같다고 일컬어지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인가 근원적인 개혁이 이루어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전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적 대사건이나 전변이 사회적 모순의 적폐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니다.올해로 120주년을 맞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도 삼정의 문란이라고 불리던 봉건사회의 적폐가 주요 원인이었다. 농민전쟁이 일어나기 전 수십년 동안 그 적폐가 쌓이면서 ‘민란’(농민봉기)이 반복되었고, 그 적폐의 미온적인 해결이 결과적으로 더 큰 적폐를 만들어 결국은 고부농민봉기에 이어 전국적인 농민전쟁을 초래했던 것이다.
적폐의 해소를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사 청산’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적폐는 사회적 모순의 축적 결과로서도 발생하지만, 그 사회적 모순을 낳은 제도가 종식된 이후에도 역사적 유제로 남아 사회발전의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사 청산’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우익 세력의 과거사 부정은 바로 이 문제에 관한 국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1993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된 이후 일본의 우익정치세력과 일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일제의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이러한 역사인식은 곧 미청산된 제국주의 유산의 적폐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한일관계를 비롯하여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고노담화 이후 그러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으로 비판하면서 그 목소리를 확대시켜 온 이른바 ‘새역모’ 등 일본 우익들은 이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왜곡 수정한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노담화의 내용 자체를 수정하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인식의 역행은 단순히 역사문제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와 맞물려 동북아 국제관계에 있어서 정치 군사적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
적폐를 해소하려면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 위에서 과거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세월호 사건이나 과거사 정리 사건이나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과거사의 적폐를 해소 혁신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기울여 왔다. 그동안 ‘특별법’에 의한 설치된 각종 위원회의 활동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이명박 정부 등장이 현저히 후퇴하였다. 과거사 문제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에4개의 과거사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그 처리는 요원하기만 하다. 또 작년 5월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이미 시행령이 제정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법에 명시된 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현 박근혜 정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책임과 의지를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역사적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이번 호의 특집은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2014년 2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1혁명 100주년기념추진위원회 결성식 및 95주년 학술심포지움’에서 발표된 4편의 논문으로 구성하였다. 이날 발표된 학술심포지움의 의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단순한 항일 민족운동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3.1혁명’의 재인식이다. (~후략)
저자소개
*저자 『역사와 책임』 간행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 정의가 주관단체가 되어 과거청산 관련 단체와 연구자, 활동가들의 뜻을 모아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간행위원회는 그동한 진행되었던 과거청산운동 전반과 제도 내에서 이루어진 과거청산 작업의 명암, 향후의 과제와 전망, 세계 속의 과거청산 등을 함께 논의하고 정리하며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일제 파시즘 잔재의 청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설립목표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와 해명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친일인명사전 등 친일문제연구총서 편찬
-통일시대 역사문화운동
목차
1. 권두언 홍순권 4
2. 논문
-송병준의 친일행적과 채산축적 l 임혜봉 86
-아르헨티나와 과테말라의 과거사정리 현황과 시사점 l 박구병 114
-박영두 사건과 삼청교육대 l 홍석률 131
3. 쟁점과 과제
-감정의 혼란과 착종,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키질 l 이재승 153
-일본정부의 자료조사와 ‘고노담화’ l 고바야시 히사토모 173
4.현장
-진실규명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 l 김도현 196
-낯선 이국 땅에서 목놓아 부른 아버지 l 우에다 케이시, 후루카와 마사키 200
5. 자료
–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의 연합 항일 기실 l 편집부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