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정‘ 스틸컷(이하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700만 관객 고지를 넘보는 송강호, 공유 주연의 화제작 ‘밀정'(감독 김지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영화 ‘밀정’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항일 독립운동 세력이 커다란 위기를 맞았던 1920년대 말, 일제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 회유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이미 알려졌듯이 ‘황옥 경부 폭탄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독립운동사 자료집’에 따르면, 1923년 경성에서 일제 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일대 동요가 일어난다. 조선 민중들은 신출귀몰하게 일제의 추적을 따돌리던 김상옥 의사의 도주를 응원했다.
김상옥 의사가 사망한 직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은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거점 시설을 파괴할 2차 거사를 계획한다. 국내에서는 파괴력이 뛰어난 폭탄을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헝가리 혁명가인 폭탄 제조 전문가와 손잡고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해 경성으로 들어오려 한 것이다.
그런데 안둥과 신의주를 거쳐 폭탄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한때 독립운동진영에 속했으나, 변절한 뒤 일제 경찰의 경부로 일하고 있던 황옥이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인 김시현과 함께 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 ‘밀정’은 실존인물인 김시현을 바탕으로, 극중 고미술상을 운영하며 미술품을 들여오는 명분으로 경성과 상해를 오가며 의열단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김우진(공유)을 탄생시켰다.
또한 황옥에 모티브를 두고는, 의열단의 친구가 돼 핵심 정보를 빼내라는 특명을 받고 김우진에게 접근하지만 그와 가까워질수록 내면의 갈등을 겪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을 빚어낸 것이다.
◇ “역사 속 황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황옥에 대해서는 ‘의열단의 2차 거사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심은 밀정이었다’는 설과 ‘일본 경찰을 가장한 의열단원이었다’는 설이 맞선다.
역사학계에서조차 황옥은 여전히 뚜렷하게 규정할 수 없는 의문의 인물로 남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황옥은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독립운동가라고 규정할 수 없고 밀정이라고 볼 수도 없는,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라고 전했다.
“해방 뒤 의열단장 김원봉이 황옥을 의열단원이라고 증명했다는 것 역시 사료를 통해 입증된 이야기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인지라 확인이 힘들다. 황옥은 실제로 폭탄 밀반입으로 재판을 받았고 형을 언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감옥에서) 일찍 나온 것으로 안다. 밀정이라면 아예 재판을 안 받아야 하는데 재판을 받았고, 재판 결과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사료를 통해 봤을 때는 그가 의열단원인지, 밀정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같은 연구소의 김민철 책임연구원 역시 “황옥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 학계에서도 조심스럽다”며 “(독립운동 세력이 어려움을 겪던) 1920년대 상황이었기에 정말 변심을 한 것인지, 의열단 쪽에서 황옥이라는 인물을 활용하기 위해 약점이든 다른 무엇을 잡은 건지 알 수 없다. 자신 있게 이야기 못하겠다”고 말했다.
“일제 경찰 조직에서 조선인이 최고로 올라간 계급이 경시다. 경시는 지금으로 치면 경찰서장 정도일 텐데, 몇 명 되지도 않고 조선인은 대개 경부로 끝났다. 경부로서 황옥이 의열단을 도운 데는 여러 동기가 있을 텐데, 학계 안에서도 이 인물을 규정할 수 있는 남겨진 사료가 없다. 본인이 뭔가를 남긴 것도 아니어서 (뚜렷한 행적을) 추적할 수 없다.”
작가이자 역사강사인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도 “황옥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본적으로 황옥은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년간 일본 경찰로 활동을 했기에 친일행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해방 이후 기념사업회를 했다고 하지만, 박흥식 같은 친일 기업인 1호도 살아남기 위해 이승만, 김구의 집을 얻어주고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역사는 개인의 편견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가 친일 행적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폭탄을 옮기는 과정에 대해서는 현재 자료로 해석이 불가능하다. 행적의 작은 애매함을 두고 이 사람이 위장 친일파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 “영화 속 이정출 통해 ‘친일’이란 주제 현실화”
결국 영화 ‘밀정’의 주인공인 이정출을 실존인물인 황옥 그 자체로 여기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이 역사 속 황옥을 소환하는 데는, 영화의 메시지에 공명해 현실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려는 의지의 발로가 엿보인다.
김지운 감독은 다음과 같은 연출의 변을 통해 영화와 현실을 접목시키려 애쓴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친일 또는 항일의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어느 한쪽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 그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들이 흥미로웠고 그 인물들의 박진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대가 사람들을 어떻게 압박했는지, 어디로 몰고 가는지 시대의 가속을 받는 인물들의 감정적 과정과 어두운 내면의 행로를 시대적인 공기와 함께 다루려고 노력했다.”
영화 ‘밀정’을 본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극중 이정출은 실존인물 황옥 경부를 모티브로 잡았다. 이때 전제 돼야 할 것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경부까지 올라갈 정도면 일제에 대단한 충성을 했어야 가능하다는 점인데, 영화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잘 깔리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일제 강점기를 다룬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나오고, 약간의 고민까지 보태 문제적 인물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심용환 소장은 “사실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칭송하고 친일파를 욕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영화 속 이정출처럼 선택의 양면성이 있지 않을까”라며 “어느 정도 탄탄한 고증에 바탕을 둔 ‘밀정’은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통해 ‘친일’이라는 주제를 현실화 시키면서 관객들에게도 각성과 변화, 행동을 요청하는 것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특정 영화가 흥행하면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을 좋게 보려는 경향이 강한데, 최근 영화로 소개된 덕혜옹주도, 이번 황옥도 그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며 “역사 속 황옥보다는 영화 속 이정출의 고뇌와 변화하는 행동의 과정에 집중하면서, 우리네 현실 문제와 연결시켜 도전하고 실천하는 역사의식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라고 강조했다.
<2016-09-22> 노컷뉴스
☞기사원문: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영화 ‘밀정’ 그리고 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