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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교사들 “‘듣보잡’ 국정교과서 당장 주문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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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복면집필’ 교육부, 내용도 안보여주고 “10일까지 주문하라”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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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협의 없이 국정교과서를 주문하라고 학교에 지시한 교육부 문서. ⓒ 교육부

국정교과서를 ‘복면집필’ 중인 교육부가 전국 중고교를 대상으로 <역사>교과서 등을 ‘오는 10일까지 선정, 주문하라’고 일제히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중고교<역사> 교사들은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잡아보지도 못한) 교과서를 당장 주문하라니, 교사들이 까막눈, 바보로 내몰린 꼴”이라면서 부글부글하고 있다.

없는 국정교과서를 ‘선정하고 주문하라’고 지시한 교육부

5일 입수한 교육부 문서 ‘2017학년도 1학기 교과용 도서 주문 안내’를 보니, 교육부는 중학<역사> ①②와 고교<한국사> 교과서 등을 선정해 “10월 10일까지 주문하라”고 전국 학교에 요구했다. 내년 3월부터 가르칠 교과서를 미리 주문해놓으라는 것이다(관련기사 : ‘없는 국정교과서를 주문?’ 대통령령 위반 논란).

교육부는 이 문서에서 검인정 교과서는 교원의견수렴 → 교과협의회 추천 → 학교운영위 심의 →학교장 결정 절차를 밟도록 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 내용을 보고 학교 실정에 맞는 교과서를 뽑는 과정을 거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고교<역사> 교과서는 도서목록만 확인한 뒤 그냥 주문토록 했다. ‘하나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협의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검정으로 나오던 중고교<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꿔치기’해 학교 구성원의 교과서 선택권을 없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문제는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 예정이었던 2015 중고교 교육과정을 <역사>교과서에 한 해 1년 앞당기면서 ‘듣보잡’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결과물을 미리 내놓지 못한 탓이다. 교육부의 ‘복면 밀실집필’도 이 같은 현상을 더 짙게 만들었다.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내용을 학교에 공개하기로 한 때는 오는 11월말쯤. 이에 따라 전국 학교는 책 내용을 살펴보지도 못한 채 깜깜이 상태에서 교과서를 당장 주문해야 하는 일정에 쫓기게 됐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전국의 역사교사들은 교과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장 주문을 해야 하는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면서 “교육부가 역사교사들을 자신들이 가르치라는 대로 가르치는 하수인쯤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현직 역사교사)도 “역사교사들은 복면집필 탓에 국정교과서를 듣도 보도 못했는데 교육부가 신청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박근혜 정부가 임기 안에 대못을 박아버리겠다는 심산으로 교육과정 적용 연도를 특별히 <역사>만 앞당겨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의 교과서 선정, 배포 담당자는 “일선 교육청과 학교의 요청에 따라 교과서 주문 일정을 오는 14일로 4일간 미뤘다”면서도 “역사교사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관계자도 “(교사들이 내용도 모른 채 교과서를 주문하는 상황에 대해) 답변할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복면집필 교육부, 국정교과서 학부모에게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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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인정으로 나온 고교<한국사> 판매 사이트. ⓒ 인터넷 갈무리

한편, 교육부가 내년 3월 선보일 중고교<역사> 국정교과서에 대해 값을 매긴 뒤 판매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관련기사 : ‘친일’ 우려 국정교과서, ‘강매’ 가능성 높다).

지난 4일 교육부 관계자는 ‘의무교육기관이 아닌 고교의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결국 판매하게 되는 것이냐’는 물음에 “곧 가격을 책정한 뒤 그렇게 할 것”이라고 판매 사실을 시인했다.

현재 의무교육 대상인 전국의 초중학생에게는 국정과 검인정 교과서를 가리지 않고 교과서를 무료로 지급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이 학부모 대신 교과서 값을 대신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는 현재 초등학교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의 가격은 2000원~3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는 상황이 바뀐다. 이때부터 중고교에서도 중학<역사>①②, 그리고 고교<한국사> 등 3개의 교과서가 국정교과서 체제로 변하는 탓이다.

중학<역사>는 가격이 책정되더라도 교과서 값을 학부모가 부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는 의무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무교육기관이 아닌 고교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고교<한국사> 교과서 값을 학부모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국정으로 나올 고교<한국사> 교과서의 가격은 4000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전국 1~3학년 고교생 수는 185만 명.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판매에 나선다면 한 개 학년 60여만 명에게 24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8개의 <한국사>교과서 경쟁체제를 없앤 교육부가 독점체제를 만든 뒤 전국 학부모에게 책을 팔게된 것이다.

<2016-10-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화난’ 교사들 “‘듣보잡’ 국정교과서 당장 주문하라니”

※관련기사

☞한겨레: 국정교과서 ‘깜깜이 주문’ 혼선..학교 “내용도 모르는데..”

☞주간교육신문: 밀실집필 국정교과서 구입 ‘황당’

☞세계일보: [이슈탐색] ‘깜깜이 집필’ 국정교과서 주문 요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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