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행동한다.
–토머스 오버베리–
토머스 오버베리(1581~1613) 영국.시인.수필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598년 런던에 있는 미들템플 법학원에 입학했다.
북해 연안의 저지대를 여행했으며 1606년 왕의 총애를 받아 서머싯 백작이 된 로버트 카의 비서 겸 가까운 조언자가 됐으며 ,1608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611년 로체스터가 에식스 백작의 아내인 프란시스 하워드와 사랑에 빠졌는데,에식스 백작 부인은 로체스터와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버베리는 로체스터가 결혼을 하면 자신이 그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 결혼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 때 시 ‘아내’의 필사본을 궁중에 돌렸는데,이 시는 에식스 백작 부인을 은근히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왕을 불쾌하게 했고,
이를 빌미로 에식스 백작 부인의 친척들이 권력을 행사하여 오버베리를 런던탑에 가두었다.
로체스터는 백작 부인과 결혼을 할 때까지만 가두어둘 것에 동의했으나 백작 부인은 그를 그 곳에서 죽일 생각을 하고 서서히 독살시켰다.
오버베리가 죽은 지 3개월 뒤에 서머싯 백작이 된 로체스터는 백작 부인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아 감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되자 수사가 이뤄졌고,암살에 가담한 자들은 재판을 받았으며,
네 명의 공범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됐고,백작과 백작 부인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왕이 사면했다.
1614년 ‘아내’가 출판됐으며 ,그가 억울하게 죽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져 1년 내내 판을 거듭했다.
이 책에서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글은 ‘사람들’이란 산문으로 ,재판에서부터 추가되어 마지막에는 82개의 산문이 되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시대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여러 유형을 재치와 풍자로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나타내 수필 장르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오버베리가 직접 쓴 것은 별로 없고,대부분은 존 웹스터,토머스 데커,존 던이 쓴 글이다.(다음백과사전)
사랑을 얻기 위해 뭐든 하려 했던 적이 있었고,한때는 그것이 통했던 적도 있었지만,그것이 삶이려니 하고 살다가 결국은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란 말도 있는데 참 헷갈렸던 것 같다.
위의 말대로라면 아래의 말은 틀린 것이 되지만,결혼의 실상은 아래의 것이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도 실상은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닐까?
진리란 어떤 경우에도 통하는 것이라 믿었었는데…
사랑,그것은 정말 어렵고도 난해한 것 같은데,그래서 고귀한 것일까?
나이가 50대 중반인데,아직도 그 정체에 대해서 이리 헷갈리게 만드는 것으로 봐선 이제 그만 초월해 버리고도 싶지만 그것에의 열정은 여전하니…쩝!
20대가 가득차도록 무작정 이성을 사랑한다고 나댔던 적이 있었고,30대에야 보다 의미있는 사랑 좀 해 보자고 결혼을 감행했으며,
40대 말에 다시 혼자가 되어 과도기적 아픔을 겪은 후 ,50대가 돼서야 자유를 만끽하게 된 데 한숨을 돌렸다가 ,
문득문득 이런 사랑타령(?)을 접하면 잠시 혼란을 겪곤 하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 걸까?
물론 지금은 사랑의 대상의 폭이 이전에 비해 확연히 넓어진 건 사실이지만,넓어졌다고 성취의 폭이나 격이 높아진 것도 아니어서 죽을 때까지 번민해야 할 것 같다.
불가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하며 ,그것은 결국 괴로움의 근간이라 가르치고 있으니…
미움도 사랑의 한 형태라 봤을 때,사랑하는 사람은 못 보면 괴롭고,미워하는 사람은 봐서 괴롭다 했다.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다면 좋을 것도 같고,수도승도 아닌 주제에 그러면 또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싶기도 하고…정체성의 혼란이다.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고 있다.
총체적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사랑해서,열강들의 손아귀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곳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기에 가족들이나 동료들 손을 잡고 나온 분들이다.
특히 광화문의 행사 등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에,제일 앞의 지도자들 몇을 빼곤 늘 낯선 사람들 뿐이지만,
비슷한 생각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기에 금세 흉허물이 없어지고 ,시위나 행진을 함에 있어서도 호흡이 척척 잘도 맞는다.
물론 그들 중엔 정치적 야망이 있어서,어떤 이익을 지키려 참가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일단 이 분위기에 뛰어들면 벗어날 수가 없다.
다같이 순수한 동기를 갖고 함께하는 동지들일 뿐인 것이다.
행사를 마치면 각자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게 되는데,그 생업이 회사일일 수도 있고 자영업일 수도 있으며 ,정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튼 그들은 SNS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하곤 자비를 들여서 도식락도 넉넉히 장만하고,행사에 쓸 피켓 등도 스스로 제작해서 갖고 나온다.
목이 쉬어라고 외쳐대고 ,공감하며 ,토론도 하고,문화제도 하는 등 축제의 하나로 생각하고 나오는 사람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줄 안다.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하며 ,비바람에 괴로울 때도 있지만,밤이 깊어서 녹초가 되어 두어 시간이 걸리는 전철여행을 하고 오면 개운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정진석은 우리를 전문시위꾼이라 말한다!개자식!
전문시위꾼이란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부대,가스통 할배 등처럼 일당 2만 원을 받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며 ,
주최측에서 주는 피켓을 들고 하라는대로 따라 외치는 것들이 바로 전문시위꾼들이다.
결국 그것들을 동원하고 정경유착 공범들인 전경련 등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최순실,박근헤,우병우가 전문시위꾼 사육사들인 것이다.
그런데 누워서 가래침을 뱉어대는 줄도 모르고 ,식언을 일삼으며 오락가락하고 있는 저 친일매국노 ,파렴치한,패륜아는 몽둥이 찜질 감이다.
강남병구 국해의원 이은재의 소동에서 보듯 저것들의 공통점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자기들의 할 말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할 말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엉터리고,일반인들로 하여금 정치란 행위 자체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들이어서 ,
전문 시위꾼 운운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을 정치로부터 괴리시키려는 음모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평균 이하의 자신들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군림을 하고 갑질을 해대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흉계인 것이다.
플라톤이, 정치적 무관심은 결국 형편없는 것들의 통치를 부른다는 식의 말을 여지없이 증명시켜 주고야 말겠단 속셈일까?
결코 향상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일반 한국인들까지 끌고 퇴보를 해대려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칭 내시 이정현이 자신이 하는 것은 결코 쇼가 아니라며 하던 단식항쟁(?)이 결국 치졸한 생쇼가 되고 말았던 것은 민중을 조롱한 것 아닌가?
여와 야가 따로 없다.
야권은 여처럼 적극적으로 가담만 하지 않을 뿐,수수방관하며 방조하고 있으니 그 죄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나라를 ,이 사회를 사랑하고 ,책임있게 유지시켜 갈 사람들은 우리들 뿐이다.
저것들 친일.친미매국노들이 ‘개.돼지’라 칭하는 우리들 99퍼센트의 한국인들 말이다.
저것들에게 2만 원에 하루를 판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싸구려로 팔아대선 안 될 것이다.
있지도 않은 허상을 마치 눈 앞의 것인 양 온갖 거짓말로 사기를 쳐대고 있음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짓도 이젠 그만둬야 할 것이다.
꼭 할 수 있는 걸 약속하는 사람들을 심부름꾼으로 고용해야 할 것이며,중도에라도 시원찮으면 바꿔버릴 수도 있도록 법도 만들게 해야 한다.
지금의 법이란 법은 모두가 갑들의 이익만 보호하고 있고,일반 민중들은 안중에도 없지 않은가?
의료법이 의료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고 ,자신들의 갑질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것이 그 예이고,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고 ,세비도 멋대로 올려서 갖고 가는 식인 것이 아주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이란 이름의 관피아들이 철밥통을 차고 앉아 세금 도둑질에 여념이 없어도 평생 세금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둔 것도 최악의 실례이다.
나라야,세상이야 어떻게 되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는 우리들의 생각이 이런 생지옥을 만들었다곤 생각지 않는지?
이젠 그만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시민의식 정도가 아니라 ,주인정신으로 완전무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나의 책임이고,절대로 공짜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내가 누리는 것 이상으로 기여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나라가 공짜로 먹여살려주길 바라는 사람들로 채워진 지금이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런 공짜심리를 갖게 만들고 ,그런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사기와 다름 아닌 포퓰리즘으로 민중들의 표를 도둑질해 온 저것들 정치꾼들에 얼마나 더 속아야 알텐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법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의외로 길은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고,떳떳하고 당당하며 ,뿌듯하고 보람찬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길은 분명해질 것이다.
저 따위 어리석고 악질인 정치꾼들에게 속거나 굽신대며 살고 싶지 않을 것이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공짜로 많은 걸 누리려는 식의 거지근성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권리 주장에 앞서서 의무수행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뻔뻔한 사람이란 평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이 불법을 저지르면 게거품을 물고 난리를 피우다가,남들이 안 보면 슬쩍 불법을 저지르는 짓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떳떳할까?
거기에 재능이나 물질로 기부를 하면서 사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참 뿌듯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결론은 자존감이다.
나를 진정 사랑하고 ,내가 속한 사회를 사랑하며 ,삶 자체를 사랑한다면 자존감을 갖게 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존감을 갖추게 되면 참으로 멋진 행동들이 술술 이어지며 ,나 자신을 ‘미다스(midas)의 손’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