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보는 연구소 소사·17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이름은커녕 역사에 흔적조차 찾기 힘든 인물들과 사건들이 무수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잊혀져가는 역사적 현장과 인물을 기억하기 위해 연구소가 직접 세운 표석과 조형물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표석입니다. 반민특위가 해산당한 지 꼭 50년만인 1999년 9월 20일 당시 국민은행 명동 본점 건물 옆 출입구에 처음 세워진 이 표석은 건물 외부 리모델링 과정에서 두차례나 옮겨진 끝에 지금은 지하주차장 입구에까지 밀려난 상태입니다. “이 곳은 민족말살에 앞장섰던 친일파들을 조사, 처벌하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가 있던 곳임”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이 표석은 연구소 회원들의 성금으로 제작되었지만 표석이 들어선 곳은 사유지로 국민은행 측을 어렵게 설득한 끝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부슬비가 오는 와중에 치러진 당시 제막식에는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을 비롯해 반민특위 총무과장 이원용 선생(2002년 별세),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아드님인 김정육 선생을 비롯해 은행 측을 설득해 힘을 보태준 당시 장영달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표석은 큰길가 반민특위 본부 정문 위치가 아닌, 체포된 반민족행위자를 가두던 유치장 자리에 세워졌음을 이원용 선생은 늘 아쉬워 했습니다. 역사정의가 바로 서는 날, 반민특위 표석도 제 자리를 찾게 되겠지요.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2010년 8월 29일에는 역시 회원들의 성금으로 서울 남산에 ‘통감관저 터’ 표석을 세웠습니다.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이 표석 역시 당시 서울시(시장 오세훈)의 소극적 태도로 건립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이곳이 경술국치의 현장이기 앞서 조선 말의 ‘녹천정’터라는 어불성설로 표석 설치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연구소 실무자와 서울시 담당 국장이 각서까지 써가면서 어렵사리 제막식을 열게 되었습니다. 제막식 당일 억수같이 비가 내렸지만 시민들과 일본에서 온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 수백 명이 우산을 쓰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서울시와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막상 표석 제작 시간이 촉박했지만 석재업에 종사하는 대전 김용철 회원 그리고 직접 의정부에 위치한 석재공장까지 함께 방문해 준 의정부 김영준, 장이근 회원의 도움으로 다행히 기한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통감관저 터’ 표석 주변은 지난 8월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억의 터’가 들어서면서 더욱 뜻 깊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5년 7월 24일에는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인공이며 연구소 2대 이사장을 역임한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 동상이 모교인 화성매송초등학교에서 세워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참석해 조문기 선생의 독립정신과 친일청산의 의지를 이어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조문기 선생 동상은 광복회 화성시지회(당시 지회장 신창우)의 노력으로 화성시와 보훈처 수원지청이 사업비를 지원했고 나머지는 시민과 회원들의 성금으로 충당했습니다.
2016년 8월 15일에는 유정호 군의 제안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와 ‘웃긴대학’에서 모금해준 3천여 만원으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내에 ‘독립민주기념비’를 제막했습니다. 올해 11월 12일에는 임종국 선생의 기일을 맞아 천안에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 조형물’이 건립될 예정입니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 형태로, 오프라인에서는 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와 연구소 천안지회(지회장 전훈진)를 중심으로 각각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민특위 터와 통감관저 터 표석 그리고 조문기 선생 동상 글씨는 모두 고 신영복 선생께서 직접 써 주신 것이며 조문기 선생 동상과 독립민주기념비 그리고 임종국 선생 조형물은 모두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의 작품입니다.
표석과 조형물이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져 간 인물들과 역사를 기억하는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까지나 표석과 조형물만으로는 대신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연구소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방학진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