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폴 틸리히–
폴 요하네스 틸리히(1886~1965) 독일.신학자.철할자.루터교회 목사.
훗날 루터교회 주교가 된 요한 오스카 틸리히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작은 시골에서 자랐으며,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1902년에는 아버지가 집전하는 견진성사를 받음으로써 정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3년 뒤 할레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09년 목사 후보생 고시에 합격,수련을 받던 중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다양한 수학 덕분에 그는 철학자의 신학자이자 ,신학자의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후 신학전문직 학위를 받으면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됐지만 독재자 히틀러가 등장하며 종교 사회주의자,틸리히의 삶도 끝이 나는 듯했다.
다행히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그를 1년 간 철학부 교수로 모시겠다는 입장을 보였는데,고난받는 동족들과 유대인들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치의 박해가 극심해지면서 1932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가야 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그의 어색한 영어발음 때문에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귀담아 듣지 못했지만,
영어 실력이 늘어난 덕분에 신학,심층심리학,문학,춤,철학 등 해박한 학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고,학생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1948년부터 1963년까지 출판 활동에 몰두하며 ‘개신교 시대’, ‘조직신학’ , ‘기독교 사상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위키백과)
남의 말은 듣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내 말을 들어줄 사람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글줄이나 읽고 쓴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든 사회에 차고 넘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체육…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 각자는 자기만 옳아서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어디서나 싸움이 벌어지고,파벌을 이루며 ,국론분열에 앞장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층과 끈을 대게 되면 아예 진을 빼버리려고 대든다.
또한 박범신 등의 문화계 인사들이 갑질성 성희롱을 해대며 지성이란 것들의 꼴값도 당연시 되고 있다가 도가 지나치니 드디어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가해자들의 입에선 이구동성으로 사랑해서…란 말이 튀어나온다.
나라를 사랑하고,후배나 제자들을 사랑하며,민중들을 사랑해서 독재를 하고자 하노라며 자기합리화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 같다.
박근헤는 사유물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칠 정도여서 소통도 하지 않고 ,혼자서 모자란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다 한다는 짓이 하나같이 반역에 다름 아니다.
최순실,차은택류의 잡것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우며 머저리 괴수의 혼을 쏘옥 빼놓곤 어마어마한 세금을 빼돌리고,
민중의 지팡이라며 자부심씩이나 갖고 생활을 시작한 경찰들은 민중 위에 군림하는 짭새들이 돼선 권력의 시녀노릇에 정신이 없다.
시민들의 심부름꾼으로 고생이 자심하니 철밥통을 차는 게 맞다며 스스로 철밥통을 법적으로 보장해 버린 관피아들은 세금 도둑질에 여념이 없다.
목숨을 걸고 국방을 위해 절치부심한다는 군피아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혹사시키며 눈먼 국방비를 생계형 비리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사이 최악이 봬 버렸다.
교육계는 식민사관 전도사들이 온통 고위층을 장악해 버렸고,문화,종교,시민단체 등은 정치깡패들이 장악해 버렸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실력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납작 엎드려서 박박 기며 지랄들을 하고 있다.
잘나고 잘나서 고시 패스하고,출세까지 했다는 정치권의 오합지졸들은 본분을 망각한 채 갑질과 도둑질,아부만 해대고 있다.
힘 좀 있고 능력 좀 있는 것들은 도둑질과 사기,갑질에만 혈안이 되는데 그것은 거의 모든 계층과 연령대에서 벌어지고 있으니,절망이다.
자기보다 나은 것들로부터 갑질의 피해를 당한 사람도,자기보다 약한 사람만 만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질을 해대는…
하지만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상대방의 방식대로 해야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고,아름답게 완성을 할 수가 있다.
사랑을 소유나 집착의 행위로 생각하고,상대방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면서 극진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사실로 밝혀지자 ,어제까지만 해도 국기문란 등의 혐의를 언급하며 탄압을 암시하던 박근헤가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진심이라곤 코딱지만큼도 보이지 않는 구두선에 불과했고,그 자리에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면서 유유히 사라짐으로써 우리 모두를 분개하게 만들었다.
여기서도 민중들을 위한 더욱 치밀한 추구를 하려다 생긴 실수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댔지만,결국은 제 무덤을 파고 말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자기 말만 하고 ,민중들의 소리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유유히 사라진 작태는 살의를 느끼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SNS 등에선 교수형 등을 언급하며 부글부글 끓는 민심이 창궐을 하고 있다.
절대로 버티지 못할텐데,이정현 등의 내시쯤이 일구월심 알랑방귀를 뀌어댈 뿐,모두가 등을 돌린 상태에서 ,비선실세까지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
불쌍하여라~! 조만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아방궁으로 생각했던 청와궁에서 들것에 실려나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석고대죄를 하게 만들어서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제 성질을 못 이겨서 분통이 터져 죽기라도 하는 날이면 사이비 보수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나 이웃들 사이에서도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비슷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
사랑한다며 자신의 주변에만 얽매두려는 사람들도 그렇고,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은 하지 않고 자신만의 어설픈 행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따위,
그리고 나약한 사람들을 보호한다며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그런데,
오죽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애쓰느라 진이 빠지는 것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사랑법이라 말한 사람도 있을까?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려거나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말과 행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취향과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알림으로써 나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도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 등의 탓에 각자 다른 사랑관을 갖고 살고 있다.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은 극진하나 사랑을 할 줄을 모르는 사람도 아주 많은 걸로 안다.
진짜 사랑한다면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떼를 써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줄 아는데,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죽어도 모른다.
상대가 실수를 거듭하는 걸 보는 게 즐거워서 계속 말은 하지 않고 알아서 기라고만 하려거든 상대방의 실수에도 얼마간의 평가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알아서 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름대론 최선이라 생각해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줬더니 ,난 지금 라면이 먹고 싶었는데,그것도 못해주느냐며 밥상을 엎어 버리면 절망과 분노가 밀물처럼…
그래서 다음에 라면을 끓여줬더니 ,넌 내가 라면이나 주야장천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느냐며 주먹질을 해댄다면?
난 그런 알아서 기는 사랑을 20년 가까이 해 오다 파경을 맞았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워서 자살이란 바보짓을 두 번이나 시도를 했고 ,거기 실패하자 운명을 저주하기까지 했더랬는데,,
‘나를 사랑하거든 어디 알아서 좀 기어 봐라!’고 하는 건 ,’내가 널 사랑하니 넌 내 거야!’라며 멋대로 구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만행이다.
연인이든,가족이든,이웃이든 사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들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표현을 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도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가 없는 것처럼,세상 어디에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기도 해야 하지만,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도록 표현도 해야 하며,
받은 것 이상으로 사랑을 베풀려는 노력을 할 때라야 그 사랑이 지속될 것이며,아름답게 꽃도 피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박근헤나 최순실처럼 얼터당토 않은 것들이 주착을 부린 끝에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걸 보면서 ,
단지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저것들처럼 뻔뻔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좋겠다.
남을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보면 상대를 향한 손가락은 하나이지만,나나 내 주변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네 개란 현상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때면 나부터 돌아보는 자세를 갖고,마음가짐을 다잡은 후 조심스럽게 지적해야 할 것이다.
나만의 ,일종의 인격수양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