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와 역사교사 절대다수, 그리고 국민 3명 중 2명꼴로 반대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권이 고시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1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코앞에 다가온 것부터가 그렇다. 박근혜 정권의 야심작인 국정교과서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정권의 현재 지지율은 5%다. 역대 최악의 지지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와 작년 11월 국정교과서 강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과서 문제로 가시화된 역사쿠데타를 통해 친일독재 미화정권, 불통정권의 실상이 드러났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를 겪은 뒤 펴낸 총선백서에도 국정교과서 강행이 민심의 이반을 초래했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박근혜 정권의 역사쿠데타에 대한 심판은 매서웠다.
박근혜 정권은 이제 식물정권이다. 온갖 잘못된 정책의 배후에는 사교 냄새가 풍기는 최태민 일가의 농간이 있었다. 역사교육을 정체 모를 ‘혼’이나 ‘기운’ 수준에서 이해한 것도 최순실의 영향임이 틀림없다. 거센 박근혜 퇴진 요구 앞에 정부정책은 대부분 중단되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박근혜 정권 최악의 정책인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겠단다. 최근 교육부 장관은 “지금 교과서가 발간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부터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집필자도, 집필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작업을 해놓고는, 이제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교육부로서는 그동안 내뱉은 말이 있으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권의 몰락이야말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에서 발을 뺄 마지막 기회다. 국민의 뜻을 내세워 국정교과서 작업을 중단하면 된다.
다행히 대안도 있다. 작년에 확정된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는 2018년부터 쓰일 예정이었다. 그런데 교육부가 꼼수를 부려 역사교과서만 2017년부터 쓰는 것으로 수정고시했다. 박정희 출생 100년인 2017년에 반드시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가 나와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 교육부가 2018년부터 새 교과서를 쓴다고 다시 수정고시하면 된다. 한번 수정고시했는데 다시 못할 이유가 없다. 국정교과서 작업을 중단해도 내년에는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쓰면 된다.
지난 5일 서울의 촛불집회에 모인 20만명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퇴진과 국정교과서 폐기를 외쳤다. 오는 12일 열릴 예정인 민중총궐기에는 1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의한 정권을 끝내겠다는 의지로 모인 수많은 사람이 다시 박근혜 퇴진과 국정화 폐지를 외칠 것이다. 4·13총선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야 3당은 ‘최순실 교과서’라는 새 별명을 얻은 국정교과서 금지법 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법안에 반대할 명분이나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막상 교과서가 공개되면 시비하기 애매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그 말이 맞는지는 웹 전시본 공개가 예정된 오는 28일에 밝혀질 것이다. 공개된 국정교과서에 단 하나의 사실오류나 편향서술,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표현만 있어도 그날로 폐기처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답은 나와 있다.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이 수립된 날 곧 ‘건국절’로 썼다는 게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건국절 주장도 폐기될 것이다. 그런데도 건국절 주장이 담긴 교과서가 나온다면 우리는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에 헌법을 부정한 역사쿠데타의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2016-11-0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론]‘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국정교과서의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