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권력에 부역한 역사 드러내야 민주주의 전진”

2938

우즐로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부소장

1125-10
▲ 르네니콜라 우즐로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부소장이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랑스국립기보존소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면 초청전시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부역자들>을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오는 24일부터 12월 13일까지 연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킵니다.”

해방 70주년이란 기념비적인 날에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닌, 하필이면 가장 어둡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드러내는 기획을 했냐는 질문에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의 르네니콜라 우즐로 부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교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주최하는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특별전을 위해 방한한 우즐로 부소장을 2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30여년간 프랑스 복지부와 문화부 등에서 관료로 일한 행정전문가로 2014년 국립기록보존소 부소장에 임명됐다. 이 특별전은 2014년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나치 해방 70년을 기념해 기획한 전시인데, 해외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2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자료를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의 반역행위와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나치의 지배정책을 다루고 있다. ‘콜라보라시옹’(collaboration)은 ‘협력’이라는 뜻인데 이를 대문자(La Collaboration)로 쓰면 2차 대전 독일 점령 상태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행위를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와 달리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해방 직후 나치 부역 혐의로 35만여명을 조사하고 12만여명을 법정에 세워 1500여명을 처형하고 3만8000여명을 처벌했다. 9000여명은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약식처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즐로 부소장은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부역자 청산을 지지하면서도, 나치에 부역을 했고 이후에도 나치 옹호 발언으로 법원에서 처벌 받은 전력의 장마리 르펜의 국민전선 지지율이 20%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역자는 누구이고, 부역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계속 질문해야 하는 문제”라며 “100년이 지나도 현재의 문제일 것이다. 그 질문을 멈추지 않기 위해 이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오랫동안 말하지 않은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 끊임없이 논쟁하고 요구하면서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됐다. 해방 50년이 지난 1995년에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처음으로 프랑스 정부 차원의 나치 부역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치 점령 당시 프랑스 정부의 총수였던 필리프 페탱이 서명한 유대인 추방법의 작은 문구 하나가 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처음으로 드러냈다”며 “그 바탕은 객관적 기록의 힘”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시기 혁명위원회에 의해 설치됐다. 그는 “국립기록보존소를 설치한 프랑스혁명 정신은 모든 역사적 기록물을 보존하고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과거의 권력자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역사만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립기록보존소의 행보는 흥미롭다. 우즐로 부소장은 “다음 기획전은 여성 부역자에 대한 것이다. 부역자 청산은 평등하지 않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여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고, 실제로 부역하지 않은 여성들도 단지 독일인과 관계가 있었단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다”며 “레지스땅스에 대한 기획전은 그 다음”이라고 했다.

광복 뒤 친일 부역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즐로 부소장은 “프랑스 정부 관료로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역사가들이 지금 벌어지는 일을 객관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사 청산은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이뤄졌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 있었다”며 “객관적 기록을 남기고 이를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2016-11-24> 한겨레

☞기사원문: “권력에 부역한 역사 드러내야 민주주의 전진”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한불수교130주년 기념 초청전시 –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부역자들 1940∼1945

☞민중의소리: [전시]과거사 청산, 프랑스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부역자들’

☞경향신문: 친일청산 실패한 한국에 ‘남다른 의미’

☞국민일보: 주말산책, 여기 어때요-‘…프랑스의 나치부역자들’ 展] 나치에 협력 반역사성 자료 통해 낱낱이 고발

☞뉴시스: 박원순 “친일·독재 과거 청산 없이 미래 없다”

☞뉴시스: 치에 프랑스 부역자들은 어떻게 협력했나…’라 콜라보라시옹’ 특별전

☞연합뉴스: 서울시민청서 24일부터 ‘프랑스 나치부역자’ 특별전시회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