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와 자유실천위원회,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긴급토론회’
친일문학상이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찬양한 민족반역 행위에 대한 단죄는커녕 문학상을 만드는 것은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일청산을 염원하는 시민들도 만만치 않아 친일문학상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
한국문인협회가 지난 7월 추진하다 역사·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됐던 친일문인 육당 최남선(1890∼1957)과 춘원 이광수(1892∼1950)에 대한 학술상과 문학상을 출판사 <동서문화사>(대표 고정일)가 제정했다. 이 출판사가 12월 1일 육당학술상과 춘원문학상 시상식을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가 29일 오후 2시 대학로 함춘회관에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긴급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들 단체들은 “서정주를 기리는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과 김동인을 기리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이 언론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면서 “이제는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남선과 이광수마저 복권시키려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친일문인들이 득세하는 풍조를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또한 “한국문인협회가 거센 역풍을 맞고 사업 자체를 전면 취소한 육당과 춘원문학상에 대해 동서문화사가 12월 1일 시상식을 가지겠다고 발표했다”면서 “동서문화사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여러 권 발간하였으며 <조선일보> 이전에 ‘동인문학상’을 운영한 전력의 출판사”라고 밝혔다. 1956년 12월 창립한 동서문화사는 인문학을 비롯해 사회과학과 예술 그리고, 아동 등의 책을 출간하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을 10년간 운영한 바 있다.
임헌영 소장 “번식하는 친일파 이데올로기… 일본 파시즘에 일조한 친일문학”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 기조강연에서 “친일문학은 학도병에 지원하라는 식의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발성에 의한 확고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갖췄으며 계속 번식한다”면서 “친일파를 청산해야 될 가장 중요한 원인도 친일행위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라면서 미당 서정주의 훼절을 비판하면서 작가의 인품을 강조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글을 소개했다.
“서 아무개 같은 사람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어요. 일제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어요. 작가는 인격이나 인품이 먼저 되어야합니다. 또 문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물건은 다 버려도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품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피천득의 말을 정정호가 엮은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중에서)
임 소장은 나치 부역 문인과 언론인 등을 가차 없이 숙청한 프랑스와 유럽의 사례를 통해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소장은 “드골은 (나치 부역)문학인에 대해서는 어떤 탄원이나 구명도 외면했는데 그 이유는 문학인은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면서 “유럽 민주주의가 정착하여 사회복지를 이룩한 바탕에는 반인륜적인 나치 범죄에 대한 처리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친일청산이 좌절된 우리와 달리 유럽에선 나치 부역청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인구 10만 명당 94명, 덴마크는 10만 명당 374명, 네덜란드는 10만 명당 419명, 벨기에는 10만 명당 596명, 노르웨이는 10만 명당 633명의 나치 부역자를 처벌하면서 독일의 참회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반면 아시아에선 과거사 청산이 없었기에 일본의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으며 여기에 친일문학이 일조했다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했다.
박한용 실장 “1천명의 밀정보다 소중했던 선전선동가 지식인”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이란 제목의 발표문에서 “역대 군사정권은 사회에 영향력 있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을 막대한 상금과 포상으로 포섭해 체제 내화했다”면서 “친일, 반공, 친독재로 무장한 상당수 지식인이 여기에 참여하면서 박정희의 지지축이 되었다”면서 이들 지식인들을 체제순응형과 해바라기형 인물로 분류했다.
박 실장은 또한 “일제 입장에서 1천명의 조선인 밀정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 명의 탁월한 선전선동가 지식인이 소중했다”면서 “문화예술인(교육·언론인 포함)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이데올로기 선전에 복무했다. 이제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묻는 단계로 친일논의는 한 단계 진전하고 있다”고 문화예술인에 대한 친일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또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실태를 발표했다. 괄호 안의 연도는 문학상 제정 시기다. 언론사가 만든 친일문학상은 ▲<조선일보>의 김동인 ‘동인문학상'(1955년 사상계사→1979년 동서문화사→1987년 조선일보사) ▲<중앙일보>의 서정주 ‘미당문학상'(2001년 제정) ▲<한국일보>의 김기진 ‘팔봉비평문학상'(유족 기금 출연으로 1990년 제정)이 있다.
이 밖에도 친일문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은 ▲노천명문학상(한국시인협회 2001년) ▲모윤숙문학상(한국시연구협회 2007년) ▲유진오의 ‘현민국제법학술상'(대학국제법학회 2002년) ▲유치진의 ‘동랑희곡상'(통영시 2008년), ‘동랑유치진연극상'(동랑기념사업회 1963년) ▲이무영문학상(동양일보 2000년) ▲조연현문학상(한국문인협회 1982년) ▲채만식문학상(군산시 2002년)이 있다.
미당문학상 수상자 다수 한국작가회의 소속
숙명여대 교수 김응교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신대 교수 임동확 시인의 ‘미당시의 훼절구조’, 성균관대 교수 이규배 시인의 ‘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논리,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 한양대 교수 이도흠 문학평론가의 ‘디지털 시대에서 민족문학의 진로’라는 제목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김점용 시인, 정세훈 시인, 안재성 소설가, 김란희 문학평론가는 토론자로 참여했다.
정세훈 시인은 “미당이 생전에 누렸던 문단권력이 그의 추종세력에게 승계됐고 그들에게 미당의 매국적 친일행적과 군부독재에 아부 아첨한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면서 “(미당문학상) 심사와 수상 대열에 합류한 이들이 미당 문학의 뛰어남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문단권력의 달콤한 맛에 길들여지면서 내세운 자기합리화”라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작가들을 비판했다.
전태일문학상 운영위원장인 안재성 소설가는 “자발적으로 일제 편에 선 이광수, 서정주, 김동인 등 친일부역자이자 극우파시트들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주고받는 것은 문화적 치욕”이라면서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 나아가 이광수 문학상은 철폐되어야 한다”며 친일문학상 폐지를 촉구했다.
노혜경 시인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 박몽구 시인은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토론회와 함께 실천적 방안이 있었으면 한다면서 친일문학상 반대운동을 요구했다. 임성용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미당문학상 심사위원과 수상자로 참여한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이 친일문학상을 계속 반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회피해 온 한국작가회의에 대해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작가회의가 아닌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맹문재) 차원에서 진행됐다.
<2016-11-3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박정희 미화 책 펴낸 출판사, 이광수마저 복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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