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잔재는 (현대)의학일까? 한(漢)의학일까?

1931년 교토제국대학 화학과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이태규는 한국이 자랑하는 과학자다. 그가 과학자를 꿈꾸며 겪었던 고난은 순교자의 삶처럼 거룩하다. 조선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첫날, 이태규는 물리선생님이 칠판에 쓴 영어를 알아볼 수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introduction’이라고 필기체로 쓴 글자인데 그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조선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 4년, 사범과 1년의 중등교육을 받으면서 그날 처음으로 알파벳 필기체를 구경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총독부에서는 식민지하의 조선 학생들에게 일부러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영어를 해득하게 되면 건방진 생각을 갖게 되고, 독립 및 자주 의식이 싹튼다는 이유에서였다. 총독부에서는 면서기 같은 식민지 관리로만 만족하게끔 조선인 학생들의 의식을 묶어놓고 있었다. 실업교육 위주였으니 학과의 수준도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어를 배울 때만 교과서가 공급되고 나머지 과목은 프린트로 된 교재로 가르쳤다. 영어는 상과 지망생에 한해서만 일주일에 2시간씩 가르쳤다. 수학도 대수의 경우 2차 방정식을 푸는 공식조차 가르치지 않았고, 기하도 원을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대한화학회  편저, [나는 과학자이다-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박사 이태규 선생의 삶과 과학]. 양문. 2008. 45-47쪽,    -돌배개 출판, 정인경 저, [뉴턴의 무정한 세계]에서 재인용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과학기술을 강제로 이식당한 덕에 조선시대보다는 먹고살기가 좋아지고, 민주주의 또한 후불제로 강제로 들어오는 덕에 여성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런 어디까지 식민지의 이등국민으로서 일제의 효율적 수탈이 교육의 목적이었던… 우리 민족의 슬픈 … 일제의 잔재는 (현대)의학일까? 한(漢)의학일까?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