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촛불민심에 놀라 국정화 강행에서 한 발을 뺐던 교육부가 현장 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고 사실상 국정교과서 발간을 공식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와 학교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교육부가 박근혜정부와 국민 사에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일신문은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학계와 교사들의 의견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교육부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제2의 교학사 교과서’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을 끝내 공개한 것이다.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국정교과서가 처음 논란이 될 때부터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하나의 역사만을 교사와 학생에게 강요하는 게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대의지도 분명했다. 시민 대다수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대여론이 찬성여론의 2-3배에 이른다. 국정교과서가 헌법과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를 위해 총대를 멘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교과서를 밀어 붙이겠단다.
교육부장관은 국민의 공복이다. 헌법 제1조에 명기된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이기는 공복은 없다. 국민이 명령하면 따라야 하는 것이 공복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교육부장관이라고 해서, 국사편찬위원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미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탄핵을 받았고 곧 불명예스럽게 쫓겨날 박근혜의 하수인으로 남기를 자청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정교과서 정체성 의심스럽다
현장검토본의 문제점은 차고 넘친다. 내가 전공한 일제강점기만 해도 이미 200건 이상의 사실오류, 왜곡·편향서술, 중복서술, 자료변조 등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는 이 책이 한국사 교과서인지 아니면 일본 학생들을 위한 일본사 교과서인지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도 여럿 있다. 국정교과서 자체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이 분석작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오류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다 합하면 사실상 채택률 0%대를 기록했던, 부실과 편향의 상징 교학사 교과서를 능가할 수도 있다. 그만큼 국정교과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교육부는 현장검토본을 공개하면서 ‘올바르고 균형 있는’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뉴라이트의 비뚤어진 역사관이 곳곳에 넘쳐난다. 여기서는 친일과 관련된 문제만 언급하겠다. 교육부는 친일에 대해 충분히 서술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친일 미화 교과서라는 악명이 붙은 교학사 교과서를 의식했는지 일제강점기를 다룬 Ⅵ단원의 3장에서 별도의 항목을 설정하고 한 쪽에 걸쳐 서술하는 등 친일파를 다루고 있기는 하다. 교학사 교과서에 비하면 면피는 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이전의 검정 교과서에 비해 친일 관련 서술은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친일파에 대한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호도하려는 악의가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친일인사나 단체’, ‘친일세력’, ‘친일파’,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서로 다른 용어가 뒤섞여 있다. 심지어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서술할 때는 ‘반민족친일행위’라는 희한한 용어까지 등장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용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친일문제를 제대로 서술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환골탈태 불가능, 폐기가 정답
친일파의 범위를 축소했다. 군인, 경찰, 관료(판사·검사 포함) 등 해방 이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친일파는 아예 빠져 있다. 누구를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짐작이 간다. 친일군인 출신 박정희 때문일 것이다. 국가기구인 반민규명위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언론인을 뺀 것도 언론권력을 의식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해방 이후의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도 왜곡했다. “(1948년) 5·10 총선거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피선거권은 제한되었다”라고 쓴 것부터가 그렇다.
뉴라이트가 2008년에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이는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진 데 반해 북한은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다는, 극우세력의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전후해 반성 없는 친일파가 대한민국의 기득권세력으로 부활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국정교과서는 뻔한 역사왜곡을 자행한 것이다. 반민특위와 관련해 “이승만정부 또한 반민특위 활동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는 식의 서술은 반민특위를 탄압한 이승만정권의 책임을 물타기하는 것이다. 반민특위는 이승만정권의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탄압 때문에 사실상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밖에도 지적할 게 많지만 국정교과서를 위한 ‘빨간펜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 언급을 자제하겠다. 현장검토본만 놓고 보면 국정교과서는 거짓으로 가득 찬,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불량식품 교과서다. 몇 가지 지적받은 오류를 수정한다고 국정교과서가 갑자기 ‘올바르고 균형 있는’ 교과서로 환골탈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국정교과서 사태의 해결책은 정해져 있다. 폐기만이 유일한 답이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2016-12-07>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