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벨 디브 대규모 체포 사건 70주년 추모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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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민족문제연구소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11월 24일부터 12월 13일까지 서울 시민청에서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부역자들’ 전시회를 개최했다. 벨 디브 사건은 나치 강점기 프랑스의 비시정부에 의한 유대인 박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1942년 7월 16일 프랑스 경찰이 13,152명의 유대인을 대량 체포하여 벨 디브 경륜장에 감금한 사건을 말한다. 이들 대부분은 뒤에 아우슈비츠 등지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1995년 7월 16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2012년 7월 22일 올랑드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두 번째로 사죄연설을 했다. 원문은 Discours du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François Hollande à l’occasion de la 70ème commémoration de la rafle du Vél d’Hiv; http://www.elysee.fr/declarations/article/discours-du-president-de-la-republique-a-l-occasion-du-70eme-anniversaire-de-la-rafle-du-vel-d-hiv/. 파리13구의 블로그에 있는 번역문(http://egloos.zum.com/kk1234ang/v/2881137)과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실린 영문 번역문(http://www.nybooks.com/daily/2012/08/18/france-hollande-crime-vel-d-hiv/)을 참고해 전문을 번역 소개한다.

총리님, 국회 의장님, 각국 대사님들, 파리 시장님, 프랑스 유대인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님, 대 랍비님, 종교 대표자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어떤 범죄의 공포를 기억하고, 비극을 체험한 사람들의 슬픔을 드러내고, 우리 역사에서 대독협력(la collaboration)의 어두웠던 시기와 그에 따른 프랑스의 책임을 상기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쇼아(Shoah), 즉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전승하고자 합니다. 그 첫 단계로 유대인 대량체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망각에 맞선 투쟁에 앞장서고, 야만이 무엇을 저지를 수 있는지와 인간성 자체가 야만을 이기기 위한 수단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증언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70년 전, 1942년 7월 16일 이른 아침, 13,152명의 남성·여성·어린이들이 자기 집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부부와 독신자들은 드랑시(Drancy)에 수감되었습니다. 바로 그곳에 올 가을 쇼아기념관이 설립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벨 디브 동계 경륜장(Vélodrome d’Hiver)으로 끌려갔습니다. 밀집된 공간 속에서 5일 동안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 감금된 끝에 그들은 피티비에(Pithiviers)와 본 라 롤랑드(Beaune-la-Rolande)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비시 정부가 내린 지령은 분명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같은 열차를 타고 떠나서는 안된다.” 이에 따라 부모들은 이쪽 편에, 아이들은 저쪽 편으로 격리된 채로 가슴 아픈 이별 끝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로 떠났습니다. 그곳에는 드랑시에 강제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며칠 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말살되고 말았습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범죄는 바로 이곳, 우리의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들의 거리에서 앞마당에서 계단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졌습니다.

위폐

▲ 벨디브에 구금된 유대인들(1944.9) ⓒ쇼아기념관

이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검거작전들이 펼쳐졌습니다. 마르세유에서 그리고 프랑스 전역에서, 다시 말해 군사분계선 양쪽에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제이송으로 이어졌고, 특히 집시들이 끌려갔습니다.

벨 디브의 오명은 전례 없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기획의 일부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것은 쇼아, 즉 유럽 대륙에서 모든 유대인을 절멸시키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프랑스에 있던 76,000명의 유대인들이 절멸 목적의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2,500명만이 돌아왔습니다. 이 여성들, 남성들, 어린이들은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대혁명의 나라, 빛의 도시 파리가 그들의 피난처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감사한 마음에 영감을 받아 열정적으로 프랑스 공화국을 사랑했습니다. 실제로 1791년 파리의 헌법제정의회는 유럽에서 첫 번째로 유대인이 모든 점에서 시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다른 나라의 유대인들도 프랑스에서 피난지, 삶의 기회, 보호의 약속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약속과 신뢰가 바로 70년 전에 짓밟힌 것입니다.

나는 1940년 10월 추악한 내용의 유대인 법이 공포되자 프랑스의 대 랍비, 야곱 카프랑(Jacob Kaplan)이 페탱 원수에게 보낸 글을 회상하고 싶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프랑스인으로서의 명예를 해치는 조치들의 피해자들로서, 우리 유대인들은 영원한 프랑스의 정의의 정신에 대하여 깊은 신뢰를 표명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프랑스라는 대가족에 통합하는 끈이 끊을 수 없을 만큼 질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배신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비탄을 넘어, 오늘 아침 저의 참석은 사라진 어린이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무덤조차 없이 죽어간 사람들, 우리들의 기억만이 유일한 묘비인 분들을 기리고자 하는 프랑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망각 속에 묻지 않아야 한다는 프랑스 공화국의 책무가 갖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벨 디브의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70년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진실은 프랑스 경찰이 몸소 작성한 명단을 기초로 1942년 7월 16일 덫에 걸린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프랑스 헌병대가 이들을 수용소까지 호송하였습니다.

진실은 이 작전의 전 과정에서 독일군 병사가 단 한 명도 동원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이 범죄가 프랑스에서 프랑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의 큰 공로는 1995년 7월 16일 바로 여기에서 그러한 진실을 인정한 데에 있습니다.

그는 “빛과 인권의 나라이자 피난과 망명의 땅인 프랑스가 바로 그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벨 디브의 범죄가 프랑스에 반하여, 프랑스의 가치들과 원칙들과 이상을 거슬러서 저질러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명예가 지켜진 것은 의로운 사람들, 야만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사람들, 한쪽에선 이웃을 숨겨주고 다른 쪽에선 또 다른 이웃들을 도운 익명의 영웅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이 모든 프랑스 사람들 덕분에 프랑스에 있던 유대인의 3/4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명예는 드골 장군에 의해 구현되었습니다. 그는 1940년 6월 18일 전투를 계속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프랑스의 명예는 레지스탕스에 의해 지켜졌습니다. 이 그림자 군단은 치욕과 패배 속에서도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전쟁터에서 우리의 깃발을 들고 싸웠던 자유 프랑스의 병사들에 의해 대표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유대인 단체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동구호사업과 같이 5,0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비밀리에 구제하고 해방이 된 다음에는 고아들을 맞아들였습니다.

진실은 분열시키지 않습니다. 진실은 함께 모이게 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프랑수아 미테랑은 오늘을 기념일로 만들었고, 리오넬 조스팽 정부 시절 쇼아기념재단이 창립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배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유대주의 약탈 피해자 배상위원회를 설치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우리의 집합적인 역사(histoire collective)의 사슬 속에서 기억, 진실과 희망을 위한 공동 작업을 계속해나가야만 합니다. 이 일은 기억의 전승으로 시작됩니다. 일탈은 많은 경우 무지 속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청년 3명 중 2명이 벨 디브 대규모 체포사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현실로 인해 체념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프랑스공화국의 학교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고 싶습니다. 학교는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있어서 과거사의 모든 측면들을 가르치고 교육하고 깨우치는 일입니다. 쇼아는 초등학교 최고 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교과과정에서 교육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단 한 곳이라도 쇼아가 가르쳐지지 않는 곳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기관일지라도 이 역사가 충분하게 이해되고, 존중되며, 숙고되지 않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안됩니다. 공화국을 위해서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이란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이 문제에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건은 쉼없이 모든 형태의 역사 왜곡에 대해 맞서 싸우는 데에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가하고 있는 모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상대주의의 유혹과도 투쟁하여야 합니다. 쇼아의 역사를 전승하는 것은 결국 그 가공할 만한 역사의 독특함에 대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범죄는 그 성격, 규모, 방법, 끔찍하리만큼 정확한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심연과도 같은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특이점은 끊임없이 상기되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기억을 전승하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교훈들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같은 치욕스러운 행동이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과거에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쇼아는 무에서 생겨난 것도,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히 인종주의적 망상이 완고했다는 점과 산업주의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전대미문의 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또한 수세기에 걸친 맹목, 아둔함, 거짓말, 증오에 의하여 가능했던 것입니다. 대학살 이전에도 다양한 전조들이 있었지만 양심을 깨우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나라도 어떤 사회도 어떤 개인도 악으로부터 면역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박해자들에 대하여 프리모 레비(Primo Levi)가 내린 판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끔찍한 것이 되돌아오는 것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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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디브 추모비에 헌화하는 올랑드 대통령(2012.7.22)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 몇몇 분들이 말씀하시는 두려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답해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의식하면서 공화국은 아주 단호하게 모든 반유대주의 행위들을 추적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의 나라임에도 불안감을 느끼게 할 수있는 발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힘까지 다하여 이 모든 것들과 싸우겠습니다. 반유대주의 앞에서 침묵하고, 이를 은폐하고, 이를 변명하는 것은 이미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프랑스 유대인의 안전은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프랑스인의 문제입니다. 저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나 어떤 곳에서도 이들의 안전이 보장될 것을 희망합니다.

네 달 전 툴루즈에서 어린이들이 벨 디브 사건과 똑같은 이유로 죽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반유대주의는 하나의 신조라고 할 수조차 없는 비열한 것일 따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반유대주의는 있는 그대로 호명되고 인식되어야 합니다. 반유대주의가 어느 곳에서 전개될지라도 그 책임자의 정체를 밝히고 처벌할 것입니다.

모든 배제의 이데올로기, 모든 형태의 불관용, 모든 광신주의, 모든 외국인 혐오는 증오의 논리를 확장시키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공화국을 덮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프랑스의 모든 유대인 회당에서 프랑스 유대인들은 예배의 끝 무렵에, 그들이 사랑하고 봉사하기를 원하는 조국의 안녕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복되고, 번영하게 하소서. 통일과 화합을 통해 강하고 위대하게 하소서.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고, 나라들 가운데 고귀한 정신을 유지하게 하소서.”

이러한 고귀한 정신은 프랑스 전체에 합당한 것입니다. 역사적 진실을 쉼없이 가르치고, 공화국의 가치들이 존중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며, 우리가 채택한 정교분리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종교적 관용의 요구를 끊임없이 환기하고,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원칙에 대해 결코 양보하지 않으며, 평등과 해방의 약속을 전진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함께 스스로에게 부과해야만 하는 조치들입니다.

피워보지도 못하고 마감한 생명들, 미래를 빼앗긴 아이들, 너무도 일찍 스러져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요구하는 것들을 더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관심, 부주의, 자기만족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더욱 강력하게 뭉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역사를 통찰한다면 화합과 통합의 정신에 힘입어 이곳과 온 세계에서 자신의 가치들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

∷ 번역 조시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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