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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2016년 겨울 통권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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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2016년부터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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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 l 출판사: 민연 l 15,000원 ㅣ272page l 발행일: 2016.12.19. l ISSN 1228-8802 l 97712288802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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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촛불혁명과 문명의 전환

2016년 겨울, 한국사회는 대변동, 대전환의 시기로 들어섰다. 늦가을부터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촛불시위가 몇 만에서 몇 십만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몇 백만으로 계속 기록을 갱신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역과 연령, 성별과 직업, 계급과 계층을 뛰어넘어 전국민이 주말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촉발한 것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대통령이고, 국민들은 그의 탄핵을 주장하여 성사시켰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만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에 편승하여 하이에나처럼 탐욕을 채우려는 사람들! 그들이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었고, 그것을 잘 알면서도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앞장서서 노골적으로 그들을 비호하고, 비판자들을 탄압하려 한 세력은 아직도 확고부동하게 우리 사회의 일각을 점하고 있다. 재벌과 새누리당, 고위 공직자와 정치 검찰, 조중동과 종편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언론, 이들은 국민 위에서 지도층으로 군림하면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사익 추구에 제동을 거는 세력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권위와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있다. 냉전 의식에 갇혀있는 국가정보원과 어버이연합, 박사모 같은 수구 단체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면서 이들을 비호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모두 ‘국정농단 세력’이라고 부른다.

전국민 가운데 1%도 채 되지 않는 이들 국정농단 세력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면서 부정과 비리에 깊숙이 젖어 있으면서도 편법과 꼼수로 자신들의 사익 추구를 합리화하고 전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하지 않고는 99% 국민의 삶이 온전할 수 없고, 국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 우리는 압도적 다수 국민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우리의 갈 길이 멀고 험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단순히 박근혜의 퇴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비 박정희가 추구했던 ‘조국 근대화’의 허상을 폭로하였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을 극복하였다고 칭송되는 박정희식 근대화는 21세기 들어서 99%의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박정희식 수출 지향 경제가 자랑했던 성장 신화는 이제 더 이상 절대 다수 국민의 열악한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지 못한다. 정부의 지원으로 재벌들이 주도하는 수출은 늘어나서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지만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작동하지 않았다. 재벌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그것을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어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재벌들이 700조가 넘는 역대 최대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는데, 가계부채는 1300조에 이르러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국민들은 입시와 취업, 승진 등에서 평생 끝없는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고, 취업이 어려워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소위 ‘3포 세대’의 출현),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취업하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노동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여 이제 대한민국은 저주 받은 나라(‘헬조선’)가 되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치명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났다.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과시하고 있고, 최저 출산율로 인구절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다수 국민이 장시간 노동으로 삶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두 달 가까운 기간 촛불시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은 단순히 박근혜와 최순실의 부정·비리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식 경제성장 모델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올 겨울에 진행된 촛불시위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것은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가 진정한 근대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전국민이 함께 확인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민족협동전선을 추구하고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 이후 신국가 건설 노선과 관련하여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도,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도 문제가 많다고 보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선학운동’이 전개되고,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계승한 우리식 근대화 노선을 정립하였다. 일제시기 독립운동은 숱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위에서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진정한 근대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하였다는 점에서 소중한 역사였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외세에 의해 진정한 자주적 근대화를 추구한 세력은 압살되고, 남한과 북한에 미국과 소련을 모델로 하는 국가가 이식되었다. 박정희식 근대화 노선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념을 넘어서 합의하고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동의한 자주적 근대화 노선을 부정하고 외세에 의존하는 종속적 노선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21세기는 문명사의 전환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18세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서 창출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세계사를 주도해온 서구 근대 문명이 그 수명을 다한 것을 보여주는 현상들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이다. 이것은 우리가 서양 따라잡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그 해법을 더 이상 서양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문명사의 전환기 담론은 말해주고 있다.

촛불혁명은 전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자주적 근대화 노선을 복원하고 완성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세기의 낡은 수출 주도 불균형 성장 전략을 탈피하여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고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내수를 확대하고 고용을 창출하여 새로운 경제 선순환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시간을 줄여서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즉각 재가동하여 남북간 경협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만주와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중국·러시아 등과 협력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이 출현한다면 오늘날 침체된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정책 변경만으로도 우리 국민 대다수의 삶이 현저하게 향상될 수 있다고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이처럼 전국민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극소수 특권층의 부정과 비리를 쓸어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남한과 북한 사이에 화해와 협력을 통해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이 합의하고,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지지했던 신국가 건설 노선을 계승한 진정한 근대화를 통해서 문명사의 전환기에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창출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촛불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기획된 이번호 『내일을 여는 역사』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정세의 변동을 문명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전지구적 차원, 동북아시아 지역 차원, 국가 차원, 그리고 대중들의 이해와 욕구 차원에서 점검하는 ‘특집’을 마련하였다. 김준형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21세기에 몰아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양상을 진단하는 ‘뉴 노멀(new nomal)’ 담론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위기와 기회를 모두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재봉은 동북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정리하고, 그 걸림돌에 맞서 이 지역의 평화를 정착시기 위한 한국의 적극적이고도 주도적인 역할을 주문한다. 김민웅은 국가 차원에서 근대 국가주의의 기능과 성격을 살피고,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이제는 국가 자체의 설계를 전환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서영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몸과 기억의 떨림’으로 경험하는 ‘정상적’인 체제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터와 이웃사회, 학교와 시장, 거리와 광장 모두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연대로 나가는 참여와 체험의 정치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탐구는 결국 올 겨울 촛불혁명을 문명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점검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려는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시론’이나 ‘통일에세이’, ‘역사확대경’ 코너 등도 이러한 시각과 연관되어 있다. ‘시론’에서 천용길은 성주지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운동을 정리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했던 ‘보수의 성지’ 성주에서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이 6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는 것은 촛불혁명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역사 기행’ 코너에서 정요근은 성주읍의 역사 유적지를 답사하여 이 지역 주민들의 유서 깊은 삶의 자취를 살폈다. 그는 성주 읍내 주민들의 여건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결코 성산 포대에 사드 기지를 배치할 계획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서 현재의 문제를 조망하는 우리 잡지의 특장이 잘 드러난 코너들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통일에세이’에서는 개성공단 문제를 다루었다.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 김서진 상무는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의 개입으로 공단이 폐쇄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개성공단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 패쇄 이전의 현황을 정리하고, 입주 기업 관련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억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효과를 넘어서 그 존재 자체가 평화의 실체이자 상징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안보 장사꾼들에게 놀아나서 민족의 미래를 망치는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역사확대경’ 코너에서는 최근에 일어난 터키 군부쿠데타를 계기로 터기 현대사에서 군부 쿠데타의 위치와 성격을 조명하였다. 김대성은 1923년 터키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세 차례나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여 정권을 교체시켰지만, 올해는 국민들의 거부감으로 실패로 끝났다고 보았다. 터키 군부쿠데타 역시 크게 보면 문명사의 전환기에 나타난 민주정치의 동요 현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예술과 현실의 소통’ 코너에서는 최근의 한국영화와 비엔날레를 살폈다. 강성률은 올 한 해 상영된 영화들의 내용과 흥행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암살>과 <밀정>처럼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를 친일파 관련 과거 청산이 미흡한 현실에서 찾았다. 정준모는 광주 비엔날레 행사를 중심으로 비엔날레라는 예술 행사에서 드러난 정치성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제는 비엔날레라는 제도 자체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마당’, ‘예인 열전’, ‘조선 사상가 열전’ 등의 코너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재 관련 학계의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역사마당’ 코너에서 김삼웅은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이 소금을 어떻게 조달하였는지를 살펴서 독립운동을 ‘먹고 입고 자는’ 삶의 구체성 속에서 생동감 있게 인식할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예인 열전’을 연재하는 최열은 지난 호로 추사 김정희 연재를 마치고, 이번 호에서는 안중식(安中植)을 조명하였다. 최열은 안중식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사정을 살펴본 뒤, 그가 ‘시대정신을 비추는 신고전의 세계를 이룩한 거장’이고, ‘미술계의 스승으로 군림한 예원의 총수’였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의 사상가 열전’ 코너에서 김용흠은 조선후기 숙종대 조정에서 처음으로 탕평론을 제출한 박세채(朴世采)를 소개하였다. 박세채가 보수적 주자학자였다는 기존의 통념에 맞서, 그가 송시열 못지않은 주자주의자였지만 유학의 본령이 ‘경국제세(經國濟世)’에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주자학 정치론과는 다른 탕평론을 제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2016년 촛불혁명은 위대하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일상을 제치고 주말마다 찬바람을 맞으며 시위에 나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서 기능이 정지되었지만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시민 개개인의 삶이 향상되기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아마도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중국과 미주를 떠돌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더욱 뼈 저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역정이었을 것이다. 그 고통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후손인 우리에게 분명 한줄기 빛이 되어 주리라고 믿는다.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진정한 자주적 근대화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통령 탄핵으로 최고 권력이 공백 상태가 된 헌정의 단절도 문제지만 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진정한 자주적 근대화의 단절이 보다 근원적이고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내일을 여는 역사』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해법이 과거 속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를 탐구해서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려 한다. 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질정을 기다린다.

2016년 12월
편집위원장 김용흠


목 차

<여는글> 2016년 촛불혁명과 문명의 전환 / 김용흠

<시론> 성주 주민은 사드 배치 반대운동을 어떻게 전개했나? / 천용길

<통일에세이> 아! 개성공단 / 김서진

<특집> : 21세기 정세변동과 문명의 전환
세계 정치질서 지형의 변화 : 후퇴하는 민주주의, 휘청하는 자본주의 / 김준형
동북아공동체와 평화를 위하여 / 이재봉
한국의 국가주의와 국가의 역할 / 김민웅
상품화된 일상과 붕괴된 연대, 하지만 희망을 ‘상상’해야 한다 / 서영표

<역사확대경> 터키공화국 현대사와 쿠데타 / 김대성

<예술과 현실의 소통>
지금 한국영화계는 민족주의 자장 안으로 / 강성률
비엔날레의 정치학 : 광주비엔날레를 되돌아보며 / 정준모

<역사마당>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과 소금 / 김삼웅

<전시 지상중계> ‘콜라보라시옹: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특별전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예인열전> 안중식, 20세기 예원의 총수 / 최열

<조선의 사상가 열전> 주자학자 박세채가 탕평론을 제출한 사연 / 김용흠

<역사기행> 낙동강 중류 지역의 전통 중심지, 성주읍의 역사 유적 / 정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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