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 식민통치 침략전쟁 찬양
‘군국가요’ 40곡 복각, CD로 제작
일제 말 전시체제하에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동원을 독려하는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군국가요가 해방 7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CD로 복각됐다. 친일문제 전문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는 18일 〈군국가요 40선 –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를 공동으로 제작해 출시한다고 밝혔다.
군국가요란 일제가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1931년 만주사변 때부터 일본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 만들어졌다. 군국가요 제작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인 1942∼1943년 일제가 전쟁동원에 광분하던 2년간에 집중됐다.
내용은 전쟁 미화, 천황 예찬, 징병·징용·총후(후방)지원 독려, 내선일체 선전 등이 주를 이루며 ‘천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자는 파시즘 이데올로기 전파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작사·작곡·노래에는 조명암, 김억, 김해송, 손목인, 남인수, 박시춘, 백년설, 반야월 등 당대의 인기인들이 총동원되었으며, 이들 대다수는 이 시기의 친일행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군국가요의 제작·보급 과정에서 조선연예협회·조선연극문화협회 등 친일 어용단체들이 주도적으로 통제기구 역할을 맡았다.
그간 흩어져 있던 군국가요 음반들을 수집·정리하고 음질을 보정해 우선 40곡을 CD 선집으로 펴낸 민족문제연구소와 유정천리는, 자료를 보완하여 추가 복원 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제작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불의의 역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기록된다. 오늘의 부역자들에게도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또 어렵사리 복각된 군국가요 CD가 전문가들의 친일음악 연구와 방송·영화 등 문화예술계의 창작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참고자료】
해제 :
군국가요란 무엇인가?
이준희
군국가요는 1930∼4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부응하기 위한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노래 가운데 상업적인 대중가요의 생산·유통 과정을 거쳐 유포된 것을 이른다. 일각에서는 친일가요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는데, 군국가요는 친일적 내용을 담고 있는 몇 가지 노래 유형 가운데 하나이므로, 친일가요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친일적 노래들 중 군국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이미 군국가요가 등장했던 일본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야 군국가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7년 연말과 1938년 연초에 걸쳐 음반으로 발매된 최초의 군국가요들에서는 대중가요계 인물들 외에 조선문예회라는 단체 소속으로 있던 당대 문단과 악단의 명사들이 적극 참여한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또한 주요 음반회사에서 모두 소량 제작을 한 것으로 보아 할당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 강화에 따라 군국가요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식민지 조선 대중의 반응은 당연히 싸늘하게 나타났다. 때문에 1938년 연초 이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는 1941년 연말까지는 군국가요 음반 제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확인되는 유일한 예외는 1941년 여름에 발매된 <지원병의 어머니>인데, 여기는 앞서 발표된 일본 군국가요의 번안곡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과거 몇몇 논자들의 근거 없는 공격 탓에 군국가요로 오인되었던 <감격시대>(1939년)는 가사 내용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도 군국가요와는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몇 년 간 휴지기를 보낸 군국가요 발표가 다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때는 전쟁 확대로 각종 통제가 대폭 강화된 1942년이다. 이후 약 2년 동안 다수의 군국가요가 만들어졌고, 당시 역량과 인기를 인정받으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던 대중가요계 유명 작가와 가수들은 거의 모두 군국가요 생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1941년에 결성된 조선연예협회, 1942년에 결성된 조선연극문화협회 같은 관변단체를 통한 강력한 인적 통제가 있었다.
군국가요의 두 번째 시기인 1942∼43년에는 이번 선집에 수록된 것들처럼 작품 전체에 일관성이 있는 노골적인 곡 외에 가사 한두 군데 전쟁 관련 단어를 끼워 넣은 노래도 많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고육책의 결과라 짐작되므로, 군국가요의 범위를 그런 데에까지 넓히는 것은 다소 무리이다. 1944년 연초 이후로는 군국가요가 더 이상 음반으로 발표되지 않게 되는데, 이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전시경제의 침체가 심화되어 조선어 음반 생산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 군국가요의 역사는 만 6년 만에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참고할 만한 군국가요 관련 논저
박찬호, ⌈한국가요사 1⌋, 미지북스, 2009
이준희, 「일제시대 군국가요 연구」, ⌈한국문화」 46,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9
박애경, 「1940년대 군국가요에 나타난 젠더 이미지와 젠더 정치」, ⌈민족문화논총」 35,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7
인사말 :
천황제 파시즘의 나팔수, 군국가요
일제강점기 우리 대중음악계는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지울 수 없는 오욕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압제에 억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 민중들에게 ‘가요’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민족의 한과 꿈을 담은 정신적 피난처였습니다. 그러했기에 대중가요의 가수, 작곡가, 작사자들은 대중의 벗이자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랑을 받은 자들 중 일부는 일제의 나팔수로 전락하여 민족을 배신하는 용서할 수 없는 죄과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전시총동원 체제를 미화하는 선전 선동의 첨병이 되어, ‘천황’의 신민으로서 전심전력을 다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치자고 노래했습니다.
군국가요가 바로 그것입니다. 군국가요의 노래 소리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조선인들이 이역의 전장으로, 탄광으로, 공장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렇게 강제동원된 징병, 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가운데 다수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도 이국땅에서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군국가요는 우리들에게 천황제 파시즘의 광기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생자들의 피울음과 그 부모형제들의 절규로 다가옵니다.
일찍이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 선생은 “영광의 기록만이 역사는 아니다”라고 갈파했습니다. 해방 70년이 지나서야 군국가요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음반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번 군국가요 선집에는 우선 40곡을 복각하여 수록했습니다. 이외 제목이나 가사만 전해지거나 음반은 있더라도 보전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수록하지 못해 차후의 과제로 남겨둡니다. 일차적인 정리이지만 이 작업이 노래로 일제에 부역한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한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우리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기 바랄 뿐입니다.
2017년 1월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인사말 :
과거사 극복의 방안 모색을 위하여
아직도 우리 역사는 과거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측건대 이러한 불편과 부자유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과거사의 족쇄에 휘말려 고통을 받을 것인가. 과거사 정리와 그 사업의 의의는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진정어린 충정과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자들은 한국의 민족문화를 희석, 소멸시키고 한국인의 의식공간에다 일본 문화를 이식시키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이를 정책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축음기·레코드 취체(取締)규칙’이라는 식민지 악법이다. 이를 통하여 음반의 사전검열과 규제를 강화하고 이른바 ‘치안방해’, ‘풍속괴란’ 따위의 명분을 내세워 판매금지를 시켰다. 이처럼 일제 말의 경색된 분위기는 1937년부터 1943년까지 약 7년간 군국가요란 이름의 음반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엔 대개 일제의 전시체제 강화에 부응하여 직접적으로 전쟁 참여를 선동하거나 전시의 긴장된 분위기 묘사 내용을 담았다.
이제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는 지속적 사업의 일환으로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일제 말 군국가요 선집을 발간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발간의 결정과 배경에는 ‘최소의 배제를 통한 최대의 통합’이라는 사회대통합의 정신이 깔려 있다. 단지 친일이라는 논리로 이 자료들을 비판하거나 부정한다면 이는 새로운 악순환을 빚게 된다. 우리는 과거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사를 창조해가야 하는 매우 중대한 시점에 다다라 있다. 이 선집에 수록된 자료들을 두루 경험해보면서 우리는 섣부른 판단과 감정적 표출을 일단 유보해야만 한다. 기나긴 민족사 구간에서 우울했던 과거사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모색하고 그 지혜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2017년 1월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회장 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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