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가요사랑 시민모임 ‘유정천리’
민족문제연구소와 ‘40곡’ 시디 발매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일제 전쟁 광분에 동원된 대중음악
“유족들 불편해하지만 역사적 사실”
금지곡·항일음악 발굴작업도 계속
일제 군국가요 시디 만든 이준희·이용창씨
일제 말기에 조선 식민지 청년을 전쟁터로 보내는 선전도구로 활용됐던 ‘군국가요’ 40곡이 두 장의 시디에 담겨 발매됐다. 옛가요사랑모임인 ‘유정천리’와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가 함께 만든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 부르고>가 그것이다. 두 단체는 추가 발굴을 통해 군국가요 시디 선집을 계속 내놓을 계획이다. 이준희(45) 유정천리 부회장과 이용창(52) 민문연 편찬실장을 2일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민문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른바 군국가요가 일본에 등장한 시기는 1931년 민주사변 때부터다. 식민지 조선엔 37년 중일전쟁 이후 등장해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에 광분하던 42~43년에 집중 제작됐다. 이번에 군국가요로 판정된 40곡의 크레딧을 보면, 작사가 조명암·반야월, 작곡가 박시춘·손목인·김해송, 가수 남인수·백년설·이난영 등 당대 최고 대중음악인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 가운데 이난영을 빼고 모두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올랐다. 이 작업은 이준희 부회장이 지난 여름 민문연에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그는 2003년 <오마이뉴스> 연재(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군국가요 바로보기)를 통해 군국가요의 본모습을 처음으로 세밀하게 드러냈다. 민문연이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음악인편) 편찬에도 참여했다. 유정천리는 올해로 창립 8년째다. 그간 우리의 좋은 옛노래를 복원해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을 해왔다. 2012년 ‘남인수 전집’에 이어 지난해는 ‘이난영 전집’을 냈다.
이 부회장과 민문연의 인연은 그렇다하더라도, 옛노래와 가수를 좋아하는 모임인 유정천리와 친일의 역사를 밝혀내온 민문연의 공동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음반 속지를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임헌영 민문연 소장은 인사말에서 “일제에 부역한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한 이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 (시디가) 경종을 울리기 바란다”고 쓴 반면, 이동순 유정천리 회장은 시디 발매 배경에 “‘최소의 배제를 통한 최대의 통합’이라는 사회대통합의 정신이 깔려 있다”고 했다.
“군국가요 제작에 참여한 음악인의 유족들은 ‘왜 그걸 들추느냐’고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있는 사실을 덮고 갈 순 없지요. 엄정한 판단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모든 걸 모아 충실한 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이준희) 그는 이런 작업의 성과로 군국가요의 불명예를 벗은 남인수의 ‘감격시대’(1939)를 예로 들었다. “37~38년 음반사 강제할당 방식으로 군국가요가 나왔는데 39년엔 발매되지 않았다는 점을 당시 음반사 간부 좌담회를 통해 확인했어요.” 지난 2006년 민문연과 한국음악협회 경기도지회가 함께 만든 <난파 홍영후 연보>는 공동작업의 모델 사례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홍난파 연보를 만들기 위해 1년6개월이 걸렸어요. 민문연을 반대하는 쪽도 이 연보는 높이 평가합니다.”(이용창) 이 실장은 이번 작업을 두고 “일제 말에 이런 군국가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에게 알려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자는 데는 유정천리쪽과 뜻이 같았다”고 밝혔다. 유정천리는 군국가요에 이어 일제 때 민족사상과 사회주의 사상 때문에 금지곡이 된 노래도 선집으로 낼 계획이다.
시디 제작엔 87년 <한국가요사>(일본어판) 출판을 통해 해방 뒤 처음으로 군국가요의 실체를 대중에게 알린 재일 대중음악 전문가 박찬호 선생의 도움이 컸다. “박 선생이 수집한 음반들과 제가 일본에서 경매로 구입한 음반 등의 자료들이 시디에 포함됐죠.”(이준희) 남인수의 ‘강남의 나팔수’는 전집 발매 땐 포함되지 않은 곡이다.
군국가요에 식민지 조선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대중적으로 환영 받지는 않았어요. 돈이 됐으면 음반사가 신문 광고도 하고 노래책도 냈을텐데 찾기가 힘들어요.” 이 부회장은 한·일 군국가요의 차이도 설명했다. “일본은 행진곡풍이 많아요. 일제가 조선에서 밤낮으로 틀었던 ‘애국행진곡’ ‘태평양행진곡’이 그런 곡이죠. 일본 군가인 ‘노영의 노래’는 50년대 후반까지 한국사람들이 뜻도 모르고 따라불렀어요. 한국의 군국가요는 모성이 두드러지죠.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게 진정한 모성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수록곡 중 ‘지원병의 어머니’ ‘아들의 혈서’ ‘모자상봉’ ‘아들의 소식’ 등이 대표적이다. 백년설의 ‘아들의 혈서’는 해방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6·25 전쟁 때 대중가요 느낌의 이 노래를 정책적으로 활용했어요. 가사의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꿔 불렀죠.” 이 부회장은 40곡 가운데 음악적 완성도만 보면 이난영과 남인수가 함께 부른 ‘이천오백만 감격’이 잘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이 부회장은 대학 때 동양사와 중문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음악학을 전공했다. 2005년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옛노래에 어떻게 빠졌을까? “또래들과 음악적 취향이 달랐어요. 중학교 때 고모댁에 놀라갔다가 남인수·백년설의 노래를 테이프로 듣고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남인수 모창 테이프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죠. 하하.” 그는 올해 <한국가요사> 출판 30돌에 맞춰 자료·해설·도록집을 낼 계획이다. 이 실장은 “고 노동은 교수와 민문연의 공동작업으로 <항일음악 330곡> 책도 오는 3·1절을 앞두고 발매된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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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2017-02-02> 한겨레
☞기사원문: “조선청년들 전장에 내몬 선전노래…후손들도 알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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