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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정교과서 수록 삽화, 사진 오류 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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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수록 삽화, 사진 오류 또 있어
정확한 사료검증이나 원출처 확인이 없이 교과서에 수록해 또 오류

민족문제연구소는 연구학교 지정을 또 연장하는 교육부의 꼼수에 국정교과서의 오류를 추가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오류는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 삽화와 관련된 것이다. 정확한 사료검증이나 원출처 확인 없이 인터넷 등으로 쉽게 유통되는 사진들을 마구잡이로 실은 부실함이 여기서도 드러나고 있다. 근현대사에서 사진자료는 고대사에 있어서 곧 유물과 마찬가지인데 제대로 원형도 확인하지 않고, 그 출처도 오리무중인 도굴품을 교과서에 실은 격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174쪽 갑신정변의 현장 ‘우정총국’ 건물사진 설명문에 “우정총국(복원) …… 현재 서울 종로에 복원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우정총국 건물은 갑신정변 당시의 것으로 이러한 설명은 잘못이다. 문화재청에서 설치한 안내문에도 “…… 본채를 제외한 부속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고 하여 당시의 건물이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다.

황성신문

▲ 『황성신문』1899년 5월 19일자

 

전차개통식 관련 사진(186쪽)에 대한 설명문에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최초로 전차를 가설하였다”고 적고 있으나, 전차개통구간의 서쪽 종점은 서대문이 아니라 경교(京橋, 지금의 적십자병원 앞)라고 표시해야 한다. 『황성신문』 1899년 5월 19일자(사진)에 수록된 한성전기회사의 광고문에도 전차운행구간을 경교, 종로, 동대문, 청량리 등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서대문이라는 표시는 나오지 않는다.

을사늑약의 강제성을 풍자한 ‘한일협약도(韓日脅約圖)’ 삽화(189쪽)의 경우, 원출처를 『코리안 뉴스페이퍼』라고 적고 있으나 이러한 명칭의 간행물은 현재까지 확인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다. 국정교과서에 기재된 이 삽화의 출처는 박도의 『개화기와 대한 제국』를 출판한 눈빛출판사에서 공립신보에서 편찬한 『한일관계 됴약류취』(1910)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해 주었다. 『신한민보』 1913년 8월 29일자에 실려 있으니 아마도 재인용된 것 같다. 출처 불명의 『코리아 뉴스페이퍼』는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우리 역사넷’의 잘못된 설명을 그대로 원출처 확인도 하지 않고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도의 『개화기와 대한 제국』에는 『한일관계 됴약류취』가 1919년에 발간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서지사항을 확인한 결과 양주삼이 1910년에 펴낸 책으로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광복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249쪽)을 담은 사진자료는 좌우가 뒤바뀐 채 수록되었다. 이 사진 원본의 출처는 잘 알 수 없으나 이미 해방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촬영한 장소는 서대문형무소 앞길이며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무악재이다. 그런데 무악재의 지형특성을 보면 동쪽(오른쪽)이 높고 서쪽(왼쪽)이 더 낮아야하는데, 이 사진에서는 무악재의 형상이 반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좌우가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진 속 전차의 오른쪽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원래 서대문형무소 진입로 옆에 있던 것으로 사진에서는 왼쪽에 있어야 정상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수집 사진자료』(국사편찬위원회, 2016) 0208-32

황성신문

▲ 『매일신보』1927년 2월 8일자(2면)에 수록된 서대문형무소 앞길과 무악재 지형관련 사진자료

 

92쪽에 수록되어 있는 ‘서대문형무소 항공사진(1945.9.8)을 통해 해당 건물의 존재와 위치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언론사 통합 사진DB 뉴스뱅크에는 좌우가 바뀌지 않은 정상적인 사진이 실려 있다.

특히 이 사진의 경우 해방을 맞이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수감자들과 일반 군중이 함께 해방의 감격을 누리는 장면이 묘사된 것으로 의미 깊은 사료이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전혀 누락되어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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