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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이것이 문제’다]② 좌우 힘 합쳐 항일 투쟁한 사실 애써 외면…독립정신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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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ㆍ전문가 릴레이 기고 ②독립운동사·제헌헌법

치안유지법

▲ 치안유지법을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시행하기로 한 일본 내각의 1925년 4월30일 결정문서. 출처 | 일본 국립공문서관

 

국정교과서 최종본이 공개됐다. 우려했던 대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독립운동사의 왜곡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독립을 위해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어 손을 잡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주독립, 민주공화제, 평등이라는 큰 원칙에 합의를 이루어나가던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정신을 모독하는 서술마저 눈에 띈다.

역사교과서의 기본은 사실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는 사실관계에서부터 오류투성이다.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현행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치안유지법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 악용됐다. 치안유지법에 의해 체포된 피의자만 2만명을 넘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던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일본과 한국에서 1925년 5월12일부터 동시에 시행했다. 법 적용에서 일본과 식민지를 차별하고 있던 일제로서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215쪽에 “일본에서 시행된 치안유지법을 한국에도 적용하여 민족운동을 탄압하였다”라고 서술한 것은 오류이다. 일본에서 먼저 시행한 뒤 나중에 한국에 적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에도 동시에 적용할 것을 전제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용어도 혼란스럽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6단원의 2장2절 제목은 ‘민족실력양성운동의 전개’이다. 그 안의 작은 항목의 제목도 ‘민족실력양성운동의 대두’로 되어 있다. ‘민족실력양성운동’이란 말 자체가 낯설다. 이 용어는 학계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검정 8종 교과서 중 단 하나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2013)에서 똑같은 용어를 쓴 바 있다. 국정교과서 집필자들이 뉴라이트 역사관에 입각한 교학사 교과서를 베끼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작 2015 교육과정이나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은 ‘실력양성운동’으로 되어 있다. 본문과 찾아보기에서도 다시 ‘실력양성운동’으로 썼다. 한 교과서에 두 용어가 동시에 쓰인 것이다. 역사교과서로서는 자격미달의 오류이다.

독립운동사 서술에서만 이런 식의 사실 오류, 용어 혼란, 자료 변조 등이 100개를 넘는다. 그나마 이런 오류는 수정이라도 가능하다. 교육부로서는 수정할 의지가 없는 오류, 처음부터 의도된 편향 서술도 곳곳에 넘쳐난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준식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역사학계에서는 1920년대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국내 대중운동을 포함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게 서훈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운동도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사회주의계열도 독립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또 이를 위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주의계열과 연대를 이룬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독립운동사에서는 좌우를 뛰어넘어 합작을 이루는 일이 빈번했다. 국내에서는 신간회와 근우회가 대표적이다. 1919년 9월에 출범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2년 말부터 다시 좌우를 아우르는 합작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독립을 위한 연대야말로 독립운동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교과서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짧게 또는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독립운동사를 반토막으로 만든 것이다. 농민·노동운동에 관한 서술은 다 합해도 한 쪽이 되지 않는다. 청년운동은 아예 빼버렸다. 반면에 1920년대 초에만 활기를 띠었던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에 대해서는 각각 한 쪽에 걸쳐 길게 서술했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사회주의계열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국정교과서는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사회주의계열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교과서는 사실대로 써야 한다. 사회주의계열은 “이념과 노선의 차이로 대립”(221쪽)을 초래한 데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쓰고 심지어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한 통일전선운동, 좌우합작운동을 사회주의혁명의 일환이었다고 매도하는 것은 국정교과서의 수준이 맹목적인 반공만을 강요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후퇴했음을 드러낸 데 지나지 않는다.

<2017-02-09> 경향신문

☞기사원문: [국정 역사교과서 ‘이것이 문제’다]②좌우 힘 합쳐 항일 투쟁한 사실 애써 외면…독립정신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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