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동은 교수 유작…구한말부터 광복까지 항일노래 총망라
한국·만주·중국·하와이·美본토 등 산재 악보 집념 끝 복원
아들 관우씨가 마무리 작업…3월1일께 정식 발간 예정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국내외에 산재했던 항일음악 330곡을 연대별 악보로 집대성한 첫 사료가 곧 발간된다.
한국음악학학회장 및 중앙대 국악대학장 출신으로 안중근 의사의 ‘옥중가’를 처음 국내에 소개했던 고(故) 노동은 교수의 유작이다.
12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노 교수의 제자들과 아들 관우씨는 1845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음악의 악보를 복원해 연대별로 집대성한 사료인 ‘항일음악 330곡집’의 마무리 교정을 진행 중이다.
항일음악이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면서 국권 회복과 독립의 소망을 담아 불렀던 노래들을 말한다.
노 교수는 지난 1990년 중국 동북 각지의 항일노래가 담긴 가곡 선집을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을 얻어 집대성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 중국 관내, 미국 본토, 멕시코 등지에서 항일음악을 취합해 악보를 복원하다가 지난해 12월2일 별세했다.
노 교수는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작업을 이어갔고 별세를 사흘 앞두고서도 악보를 교정할 만큼 항일음악 복원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관우씨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악보들을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겨우 구하더라도 글씨가 엉망이거나 해석하기 곤란한 옛말로 적혀 있던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단순한 교정 작업에 불과하고 모든 자료 정리는 사실상 아버지께서 해두셨던 것”이라고 밝혔다.
노 교수가 정리한 항일음악 330곡은 연대별로 ▲1860∼1900년대 83곡 ▲1910년대 68곡 ▲1920년대 72곡 ▲1930년대 63곡 ▲1940년대 44곡으로 구분된다.
연대별 대표곡들로는 1900년대 이전에 불린 ‘거국행’ ‘격검가’ ‘무궁화가’ 등과 1910년대 곡인 ‘국민’ ‘국치일노래’ ‘독립가’ 등이 있다. 1920년대 노래는 ‘단심가’ ‘독립군가’ ‘3·1소년가’, 1930년대 곡으로는 ‘민족해방가’ ‘자유의 기’ 등이 꼽힌다.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가’ ‘진군가’ 등은 1940년대의 대표곡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관우씨의 마무리 교정과 최종 검수를 마친 뒤 정식 발간되는 시점을 3월1일께로 예상하고 있다.
노 교수는 연대별 항일음악의 가사와 악보 원문 및 출전, 각 노래의 유래와 불렸던 지역 등을 함께 정리했다.
한국 항일음악들은 국내 민요와 외국 유명곡 가락에 우리말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일례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해방 직후까지 애국가의 가락으로 차용됐다. 올드 랭 사인은 1900년대에는 ‘무궁화가’, 1910년대에는 ‘앞 뫼의 칡같이’, 1920년대에는 ‘신년축하가’, 1930년대에는 ‘주일학교 교가’ 등의 곡조로 지속적으로 활용됐다.
노 교수가 정리한 사료에는 항일음악을 제작했던 국내 작사가와 작곡가들의 이름도 확인된다.
항일음악 작사가들 가운데 알려진 인물들로는 도산 안창호, 학도가로 유명한 김인식, 독립운동가 이범석 등이 있다. 한국 항일노래의 가락을 직접 쓴 작곡가들로는 이성식, 이상준, 이두산, 이정호, 한유한 등이 꼽혔다.
노 교수가 복원한 ‘항일음악 330곡집’은 한국 근대음악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저변을 여는 의미 있는 사료로 평가 받는다. 구한말부터 해방기까지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던 항일음악을 망라해 악보로 남긴 최초의 국내 사료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근현대음악 전문가인 강태구 교수는 “그간 알려진 동시대 노래들과 대조하면서 당대 음악의 분화된 양상을 분석해볼 수 있는 첫 사료가 만들어지는 셈”이라며 “사회적 담론이 미진했던 항일음악 분야가 향후 근현대 음악사의 쟁점이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동준 기자 s.won@newsis.com
<2017-02-12>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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