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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와 책임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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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민족문제연구소·포럼 진실과정의 l 출판사: 민연 l 13,000원 ㅣ239page l 발행일: 2016.12.30. l ISSN 2233-9833 l 9772233983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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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최순실에서 시작된 사태가 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음이 저간의 언론보도나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마다 경악과 분노, 충격의 연속이다. 어떤 권한도 없는 사인 최순실이 국가의 주요 사안에 개입해서 대통령을 대리해서 국정을 주물렀다는 사실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거니와 대통령 또한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심지어 지시를 받아 일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나라냐’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권력의 사유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국민들 눈치는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눈치라는 단어마저 사전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상적인 정책의 입안과 집행 시스템이 박근혜-최순실 하에서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것을 넘어 권력의 일반적인 작동시스템이나 민주적인 사회 운영의 기본원리마저 부정하는 일이 너무 태연하게 벌어졌다. 비정상성의 일상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정윤회의 국정 개입을 폭로한 세계일보의 조한규 전 사장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강조하며 내뱉은 말도 바로 ‘이게 나라냐’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재벌들의 동맹체제라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꽤나 설득력 높은 해석이 있다. 그리고 이 구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관료제의 병폐(보신주의와 무책임)와 숱한 부역자들을 들 수 있겠다. 이 부역자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히만을 떠올린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독일 장교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니라 조직의 명령에 충실한 평범한 ‘정상인’이었음에 주목한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명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히만의 죄는 ‘사유하기의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아렌트의 진단을 인용해보자.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아이히만은 타인의 관점에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고, 따라서 그의 말들은 진부하고 공허할 뿐이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히틀러의 명령이 곧 독일 국가의 명령이므로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본인이 수행해야 할 책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충실히 해낸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도살자 아이히만은 결코 ‘괴물’이 아니었다.

  김기춘이나 우병우, 조윤선 등은 권력의 핵에 있으면서 불법과 비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역자가 아니라 핵심공범들에 해당할 것이다. 부역자들은 청와대와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관료들, 새누리당의 ‘친박’그룹, 언론매체의 관료들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부역자들의 명령을 따르는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편재되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의 활기차고 논쟁적이던 관료사회의 분위기는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생각하지 않고 위로부터의 명령만 따르는 기계들의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때 촉망받던 경제학 교수 안종범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각하기를 멈췄을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는 그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비례대표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였을까. 전 민정수석 김영한은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했고 사유하기를 포기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삶을 단축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소멸되어가는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작은 위안을 얻는다.

  새누리당의 전희경 국회의원이 일선 교육청을 상대로 선생님들의 시험문제 제출을 요구한 일은 박근혜 정부식으로 말하면 심각한 ‘국기 문란’ 행위이다. 선생님들의 시험문제를 검열하겠다고 덤벼드는데 그 발상부터가 매우 전체주의적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양심의 자유와 대한민국 헌법이 강조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전희경은 아이히만인가 아니면 공범자인가. 그런데 그런 반자유주의적 요구에 행정 실무를 명분으로 대응하는 서울시교육청의 태도는 뭔가 잘못 되었다. 반헌법적 요구를 한 국회의원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한국사회 또한 이상하다. 정신질환적인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어 이제 무감각해진 탓인가. 민주화를 통해 한국사회가 힘들게 이룬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적인 합의나 원리가 너무 쉽게 무너지고 경계심마저 희박해지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이번호에서는 두 개의 〈특집〉을 다뤘다. 〈특집1〉은 2016년 7월 1일, 『누구를위한화해인가-‘제국의위안부’의반역사성』(정영환지음,임경화 옮김, 푸른역사) 출판기념강연회에 이어 열린 간담회에서 나온 세 명의 발표자(박노자, 김창록, 정영환)들의 발언을 정리한 글이다. 저자인메이지가쿠인대 정영환 교수는 재일동포 3세로 한국 방문 당시 반정부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입국불허’되었다. 이날 행사는 출판을 기념하는 모임이자 한국 정부의 ‘입국불허’ 조치를 비판하는 자리였다. 정영환 교수는 화상으로 출판기념 강연회와 간담회에 참가했다. 박노자는 『제국의 위안부』를유럽과 일본의 역사수정주의가 수행한 반역사적인역할을 소개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계급론적 관점에서도 볼 것을 제안하였다. 김창록은 박유하의 위안부론이 두 가지 ‘뒤틀린 법 도그마’에 빠져있음을 지적하였다. 박유하가 범한 첫 번째 오류는 ‘동지적 애국’론으로 1910년의 강제병합 조약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한국 정부와 대법원의 공식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한국 정부와 헌법재판소, 대법원의 공식 입장을 부정한 잘못을 들었다. 정영환은 『제국의위안부』를 사료면에서 비판하는 한편, 이 책이 일본 사회에서 성공하고 있는 지적 풍토를 해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사료면에서 볼 때, 박유하는 잘못 인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 너무 많아 학문적 논의를 떠나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특집2〉는 2016년 12월 19일, 국회의원 강창일과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가 주관한 ‘구 일본군인․군속 출신 한국인 전몰자 유골조사와 봉환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두 개의 보고서를 수정한 글이다. 우에다 케이시는 수년간 일본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국의 피해자 단체와 일본의 시민단체가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와 봉환사업에 대해 협상을 벌인 경과와 함께 최근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야스다 치세는 최근 오키나와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해발굴사업에서 한국인에 관한 자료가 있음에도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사료를 통해 비판하여 일본 정부의 유해 조사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회의에서 참석자 대부분은 한국 정부가 유해조사와 봉환사업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 사실도 함께 소개해 둔다.

  〈논문〉은 세 편을 실었다. 「해방 후 서대문형무소 운영과 변화」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의 박사학위논문 가운데 일부를 수정·보완한 글이다. 1908년 경성감옥이 설립된 이후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 그리고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기까지 서대문형무소의 운영현황과 감옥 기능이 종료된 1987년 이후 보존과 활용 현황을 통사적으로 조명하였다.

  조영선 변호사가 쓴 「과거사 청산의 성과와 과제」는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소된 이후 과거사법 개정 운동 과정에서 제출된 쟁점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히 이글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둔 과제들-미조사 과제와 미신청 사건들에 대한 조사, 배보상, 유해발굴, 추모·위령사업, 재단 설립 등-에 초점을 맞췄으며, 제2의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을 목표로 하는 특별법 제·개정 운동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지식인과 법: 프랑스 과거청산법과 역사가의 역할」은 앙리 루소가 쓰고, 조시현이 번역하였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구분한 두 가지 지식인론-입법자들과 해석자들-에 착안해서 앙리 루소는 현대 프랑스에서 과거청산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지식인들이 수행한 역할이 입법자가 아니라 해석자 또는 단순 기능인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포스트 모던 시대, 즉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기억에 관한 재판’에서 역사가들은 게임의 규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게임의 일부가 되는 단순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과거청산 문제를 좀더 폭넓은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하여 소개하였다.

  이번 호의 〈현장〉은 다소 풍성하다. 김승은의 「일제 강제징용 시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날의 기록」은 2015년 한일 간의 뜨거운 외교 쟁점인 메이지기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벌어진 외교전이었던만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많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베 정부가 애초 기대했던 메이지기의 산업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는 했지만, ‘역사의 전모를 밝힐 것’을 조건부로 한 등재여서 일본 외교가에서는 사실상 진 싸움이었다는 후문도 있다. 국제무대에서 유네스코 회원 국가의 관계자들을 상대로 과거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인에게 강요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의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그것이 유네스코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할 일이다.

  「전국민간인학살유족회장 채의진 선생님을 추모하며」는 시사IN의 참사보도 전문기자인 정희상이 문경민간인학살 유족회장으로서 평생을 진상규명과 피해회복 운동을 한 역사의 증언자 채의진 선생을 추모하며 쓴 글이다. 이 글은 단순한 추모사가 아니다. 피해자와 시민들이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밝히며 입법운동을 해온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에서 정리한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93 폐광 유해 발굴 보고서」는 공동조사단이 2014년(진주), 2015년(대전)에 이어 홍성에서 추진한 3차 발굴보고서이다. 3차 유해발굴에서는 지방자치단체도 적극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해 추모사업과 유해발굴 등의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일을 공동조사단의 성과로 돌리면 과한 칭찬일까.

  끝으로 강성현·정근식의 공동저작 『한국전쟁사진의역사사회학 –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에 대한홍순권교수의서평「사진의사각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을까」를 실었다. 한국전쟁 관련 사진들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공동저작에 대해 문헌 연구를 보완하는 정도로만 활용되어 왔던 사진을 역사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사진의 가치와 속성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규명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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