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촛불혁명을 이끄는 위대한 시민의 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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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 대전지부 박희인 회원은 대전 촛불집회의 사회자로 맹활약하였다.

 

2016년 10월 19일에 시작된 시민들의 촛불혁명이 100일을 넘겨 계속되고 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한겨울의 추위를 함께 이겨냈다. 아직 승리를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시민들의 촛불은 결국 박근혜와 최순실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김기춘과 조윤선을 구치소로 보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너무나 힘들어 했던 시민들이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든 시민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고 위안을 얻는 아름다운 경험을 나누고 있다.

우리 연구소도 매주 토요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기 위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애드벌룬으로 만든 평화의 소녀상을 앞세우고 촛불혁명의 대열에 함께 하고 있다.

전국의 회원들이 민족문제연구소 깃발 아래 함께 싸우고 있을 것이다. 대전지부 박희인 회원은 대전 촛불집회의 사회자로 맹활약을 하며 촛불혁명을 이끌고 있는 위대한 시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희인 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국 각 지역에서 촛불혁명에 함께 하고 있는 회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문 :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중심으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 현재는 대전지역 60개 단체로 구성된 남·북·해외 3자 연대 조직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과 (사)우리겨레하나되기대전충남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대전지역에서 시민사회 활동을 시작하였으니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1999년에 미군의 노근리 학살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노근리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대전충남본부 사무국장을 5년여 간 맡았고, 대전지역의 대표적인 학살지인 산내학살유족회 결성 당시에 유족회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5‧18민주유공자대전충청지부가 결성되어 간사를 맡은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매년 대전충남지역 5‧18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때 대전지역에서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대전충남통일연대’가 결성되었고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집행위원장을 맡아 일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월호참사 대전대책회의’ 상황실장 겸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노근리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6‧15남북공동선언, 세월호 참사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굵직굵직한 정치사회적 국면마다 기꺼이 중책을 맡아 뛰어드는 적극적인 활동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촛불집회의 사회를 맡게 된 계기와 촛불혁명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 : 지역에서 열심히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작년 11월 1일부터 진행된 대전촛불집회에서 명사회자로 알려졌던데요. 어떻게 사회를 맡게 되었는지요.

답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전국적으로 민심이 들끓었는데요. 대전지역에서도 사태 직후 ‘박근혜 퇴진 대전운동본부’가 결성되었습니다. 저는 ‘박근혜퇴진 대전운동본부’에서 촛불기획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촛불행동을 기획하는 역할이다 보니 연일 발언과 공연을 섭외하고 행사기획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습니다. 그런데 집회 규모가 커지고, 시민 발언이 길어지면서 남녀 두 명의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명사회자인 성서대전의 김신일 목사님께서 사회를 보았습니다. 사회자를 가깝게 보좌하는 역할이다 보니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지 제가 사회자로 추천되어 공동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행사가 끝나면 거리행진 때 방송차량에서 거리선무를 하는 역할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행진하는 동안 선무연설과 구호를 외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시간 동안 쉼없이 하는 방송차량 선무보다는 낫겠다 싶어 공동사회를 흔쾌히 받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나 긴장되고 실수할까봐 많이 떨었습니다.

문 :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가족들과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하셨던데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답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저는 넷째아이를 출산하고 100일쯤 지나 활동에 복귀했을 때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였겠지만 세월호 참사는 제게도 ‘내가 왜 운동을 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도 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생때같은 아이들이 수장되어 가는 순간을 잊을 수 없었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전지역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과 ‘세월호참사 대전대책회의’를 결성하게 되었고, 2년이 넘게 진상규명 활동을 해왔습니다.

제가 잊지 못하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분들께서 대전지역 촛불문화제에 처음 오신 날이었습니다. 누구도 세월호 유가족들과 눈조차 마주칠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러웠고, 유가족들도 선뜻 시민들에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그날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했는데, 맑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빗물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행진이 끝나자 폭우도 그쳤고, 애초에 예정에는 없었지만 대전 시민들에게 마무리 순서로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한 분 한 분 안아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던 수백 명의 시민들이 기꺼이 모두 길게 늘어서서 한 분 한 분을 안아드리고, 진실을 밝히자고 힘내자고 다짐했습니다. ‘아! 이게 바로 국민의 힘이구나! 국민 모두가 같은 고통을 겪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국정농단사태가 터지고,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주기, 2주기 때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분노의 중심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구나 하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전시국대회 때 세월호 유가족분들(단원고 2학년 1반 희생자 유가족)을 모셔서 발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고, 수만 명의 시민 앞에 선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힘겨운 시간들을 잘 벼텨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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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지부 박희원 회원은 노근리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6‧15남북공동선언, 세월호 참사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굵직굵직한 정치사회적 국면마다 기꺼이 중책을 맡아 뛰어드는 적극적인 활동가였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희인 회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몰래 눈시울이 붉어졌다. 촛불행진이 처음으로 청와대 앞까지 진출한 날, 행렬의 선두에는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망토를 두른 세월호 가족들이 있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싸움이었을까. 박근혜 탄핵을 이끈 것은 어쩌면 저 하늘에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이 아닐까. 촛불집회를 가득 채운 노란빛깔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이 손에 든 노란 촛불 하나하나가 그 아이들 하나하나의 고귀한 생명이요 그들이 마음껏 뽐냈을 아름다운 빛깔이구나 싶었다.

문 : 민족문제연구소와의 만남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회원이 되셨는지요?

답 : 민족문제연구소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가 매년 대전현충원에서 김창룡의 묘를 이전해야 한다는 규탄대회와 캠페인을 할 때마다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전쟁시기 민간인학살 가운데 하나인 산내학살의 주범이 김창룡이었기에 산내유족회분들을 모시고 함께 참가하기도 했고, 5‧18학살의 주범들이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기에 5‧18민주유공자 동지분들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민족통일은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극우의 역사왜곡이 노골화되면서 연구소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순옥 지부장이 저에게 회원 가입을 권유하셨고, 연구소 회원분들도 통일사업에 물심양면 함께 해주고 계십니다. 민문연 회원이 된 후 달라진 점은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 : 지난 회원수련회에 가족과 함께 참가하셨지요. 대전지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대전지부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대전지부 자랑 좀 해주세요.

답 : 지난해 수련회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 설명도 해주었고, 광주지부에서 선물해준 티셔츠를 아이들이 학교에 입고 가면서 선생님에게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능하면 매년 수련회에 아이들과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수련회에서 회원분들의 진가를 제대로 보았습니다. 모두 유쾌하고 자긍심 넘치는 분위기에 한 가족이 되어 참 좋았습니다. 저는 통일운동단체의 활동가이다 보니 대전지부에서는 회원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전지부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저희 단체 사무실에 자리를 마련해 드렸죠. 그야말로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 같습니다. 대전지부의 자랑은 훌륭한 회원분들입니다. 지부장님을 비롯해 회원들 한 분 한 분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꼭 역사적인 사안이 아니더라도 가장 어려운 현장이 있다면 늘 대전지부가 함께 합니다. 해고노동자들 곁에도, 대전시 수도민영화를 막는 현장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문화제에도, 그리고 박근혜 퇴진 대전시국대회 현장에도 대전지부 깃발이 휘날립니다. 이름만 연구소지 지역에서 가장 활동력이 왕성한 단체입니다.

문 : 연구소의 활동 혹은 대전지부의 활동에 참여하며 인상 깊었던 경험을 들려주십시오.

답 : 대전지역 통일운동의 원로인 정효순 선생께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고문인데 아흔을 넘긴 고령이어서 잦은 외출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늘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만나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기에 회원들이 매번 월례회 때 모시기가 귀찮을 수도 있는데, 늘 직접 정효순 고문을 모시고 챙겨드립니다. 거기에서 한평생 통일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삶을 존중하고 따르고자 하는 참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젊은 회원들에게도 참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바로 가짜 독립운동가 김태원의 행적을 밝혀내고, 그 서훈을 취소시킨 사건입니다. 가짜 독립운동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혀를 내두를 만한집요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순옥 지부장과 홍경표 사무국장, 김영진 회원께서 수시로 만나 협의하고, 김씨 족보를 뒤지고, 또 신문기사를 검색하여 교차 검증하고… 정말 대단한 투지였다고 봅니다. 역사를 바로세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렇게 큰일을 해내시는 걸 보며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문 : 앞으로 연구소나 회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답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은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던 적폐 중의 적폐는 바로 친일과 독재 그리고 분단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연구소와 같은 단체가 어려운 시기부터 꾸준한 활동을 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는 길에 연구소 회원분들이 함께 힘을 모으는 한편 자주와 통일의 길도 함께 열어나갔으면 합니다. 회원분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꼭 빠지지 않고 하는 건배사가 바로 “친일청산! 민족통일!”입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평화와 번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친일청산, 민족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와 회원들이 늘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파수꾼으로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문 : 촛불집회에 대한 감상과 이 집회를 통해 바라는 희망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답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분노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해 준 권력을 사유화하고, 금수저 은수저가 판을 치고, 권력과 돈 앞에 굴종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사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되새겨보면 박정희, 최태민의 실체가 박근혜, 최순실의 민낯이 그리고 왜곡된 대한민국사가 지금이라도 파헤치게 된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이 많이 성숙되었으리라 기대합니다. 1,000만 촛불이 보여준 힘은 국민은 위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국회에 탄핵되어 직무가 정지되긴 했지만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고, 특검은 말장사와 주사아주머니도 드나드는 청와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헌재의 탄핵 인용이 2월도 넘겨 부결될 수도 있다는 걱정마저 드는 상황입니다. 국정교과서는 애초대로 추진되고 있고, 사드배치도 강행할 태세입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도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이 10억 엔에 농락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확인하였고, 승리하고 있지만 아직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탄핵도 되지 않았는데, 대선레이스를 향해 성급히 달리고 있는 정치권입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국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갖고 무엇을 하고 있냐고?

여느 정치평론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이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민심이 바로 이것이다. 박희인 회원의 말처럼 촛불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촛불혁명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대전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손에 마이크를 굳게 움켜쥔 박희인 회원의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겨울을 따뜻한 촛불의 온기로 함께 버텨온 우리들에게도 어김없이 이제 곧 봄이 찾아올 것이다. 따뜻한 봄날을 희망으로 맞이할 위대한 시민들의 힘을 믿으며 오늘도 우리는 광장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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