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사 지난해 12월 ‘육당학술상’ ‘춘원문학상’ 제정하고 시상
친일경력을 가진 문인들인 육당 최남선(1890∼1957)과 춘원 이광수(1892∼1950)를 기리는 상이 제정되어 지난해 12월12일 시상식까지 치러진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문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친일문학상도 폐지해야하는 판국에 친일지식인의 거두(巨頭)였던 두 인사를 기리는 상을 새로 제정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상을 제정한 측의 목소리도 강경해 양쪽의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출판사 동서문화사에 따르면 제1회 육당학술상은 전성곤 중국 베이화(北華)대학 교수, 제1회 춘원문학상은 원로 소설가 박순녀씨에게 돌아갔다. 상을 제정한 동서문화사는 이미 지난해 12월 시상식까지 치른 것을 일부 단체들과 문단내의 반발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21일에야 보도자료를 냈다.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대표는 “한국 학계와 문단의 대표인 육당과 춘원을 빼놓고 우리 사학과 문학을 논할 수 없다”면서 “이들은 도쿄 2‧8독립선언, 서울 3‧1독립선언 등 독립운동을 하고 옥살이도 했는데, (그들의) 내재적 독립운동을 이해 못하고 그들의 선구적 업적을 폄하해선 안 된다”면서 상 제정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이 상을 제정한 출판사나 심사위원, 수상자 모두가 대단히 치욕스럽다는 것을 언젠가 절감하게 될 것”이라면서 “친일파라면 정치인들은 후손까지도 비판받는 시대에 (정치인보다) 더 역사의식이 강해야 할 학자들이나 문화예술인이 어떻게 이런(상을 주고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인 맹문재 시인 역시 “적폐청산을 하자고 국민들이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은 말이 안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육당과 춘원은 호소력이 뛰어난 연설이나 글로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보낸 이”라면서 “비판의 대상이지 문학상을 만들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육당학술상과 춘원문학상 심사에는 박현태 전 동명대 총장, 정명숙 전 숙명여대 교수, 신상웅 중앙대 명예교수, 최공웅 전 서울고등법원장, 최박광 성균관대 교수, 김계덕 시인, 육당 최남선 연구가인 김현경 씨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육당연구학회와 춘원연구학회의 창립멤버들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 문인 42명 가운데 이미 김기진·김동인·노천명·모윤숙·서정주·이무영·조연현·채만식 등이 그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나 시비 등으로 추모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문인들은 친일문학상의 철폐가 역사적 과제라고 보고 있다. 작가회의는 다음달 25일 ‘친일기념문학상 어떻게 폐지할 것인가’를 주제로 내부토론을 가질 계획이다.
권영미 기자
<2017-02-22> 뉴스1
☞기사원문: 친일경력 육당·춘원 기리는 문학상 현실로…문인들 반발
※관련기사
☞연합뉴스: 제1회 육당학술상에 전성곤 교수, 춘원문학상에 박순녀씨
※참고자료
☞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 육당·춘원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 (2016.8.2)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
육당, 춘원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
한국 문단에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문인협회(문협)가 지난 7월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문효치 이사장이 제안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별 이의 없이 가결했다고 한다. 또 내년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무정’ 발표 100년을 기념해 심포지엄도 열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누구인가?
최남선(☞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은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서 일제의 역사왜곡과 식민사학 수립에 협력하였으며, 1938년부터 5년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친일 고위관리를 양성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시작으로 임전대책협의회 등 각종 친일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징병·징용·국방헌납 등 전쟁동원을 선전하는 시국강연과 좌담회에 단골 강사로 참석하였고 〈보람 있게 죽자〉 외 수많은 친일논설을 발표하였다. 하늘이 준 재능을 민족 반역의 길에 내다버린 안타까운 지식인인 것이다.
이광수(☞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는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내선일체와 조선문학〉 〈황민화와 조선문학〉을 쓰는 등 조선문학을 일제의 선전도구로 만드는 데 앞장섰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자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꾸고 〈창씨와 나〉를 기고하는 등 창씨제도를 적극 선전하였다.
1943년 징병제 실시가 공포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출진할 것을 권유하였고, 〈지원병장행가〉 〈징병제의 감격과 용의〉 등을 기고하여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신념으로 일제에 협력한 최고의 친일 이데올로그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일제하 행적은 이번 문협의 결정이 몰가치적이고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이들의 죄는 온 민족의 신뢰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서도 신념을 꺾고 앞잡이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 아까운 재능을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응하는 일에 남김없이 쏟았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1919년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항일의 상징적 인물이었음에도 친일 변절의 길로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설혹 ‘문학적 공로’가 있다 한들 어떻게 이들의 죄상을 가리겠는가? 더구나 민족지도자로 행세해온 지식인의 변절은 그 악영향이 일신의 부귀영화에 집착한 매국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후세가 이들에게 한층 더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기념하는 상에는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를 표상으로 삼아 본받자는 의미일 터인데, 과연 육당과 춘원이 남긴 자취가 그렇게 향기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문효치 이사장은 “육당과 춘원의 친일 부분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며,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두 분이 작품으로써 문학사 건설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인데 친일 행적 때문에 문학적 자산까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문학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형적인 ‘공과론’으로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친일파와 친일비호세력들의 변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문학적 자산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문 이사장의 핑계와 달리 최남선과 이광수에 대한 연구는 차고도 넘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최남선과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되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물론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된 특급 친일파라는 사실이다. 국가와 민간이 거듭 반민족행위자로 못박은 자들을 기념하는 상을 굳이 제정하려는 문협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공연하게 역사쿠데타를 자행하는 세력에 편승하여 무엇을 도모하려 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문 이사장은 작년 8월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증조부 문종구의 친일에 대해서 반성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그의 어려운 고백에 찬사를 보내면서 문인으로서 자존감을 살린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지금도 선대의 과오를 대속한 문 이사장의 발언이 거짓이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 때의 진정성을 잃지 말기 바란다.
시대정신은 과거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에 있다. 백번 생각해 봐도 이번 육당과 춘원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 결정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다. 한국문인협회는 반역사적이며 반문학적인 이번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문학인의 시대적 책임을 다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면 더 이상 문학이 될 수 없다. 다산은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2016. 8. 2.
민족문제연구소